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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Nov 26. 2022

문장에서 느끼는 자유

- 아니 에르노, 《한 여자》

1. 오늘 소개할 책은?

지난주 목요일인 2022년 10월 6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자전소설 《한 여자》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로 시작되는 《한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시작된 아니 에르노의 소설 아닌 소설이다. 자전가족서사를 소설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과 무드가 잘 드러난 문장들을 소개한다. 먼저 69쪽이다. “사람들은 내가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살아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다음은 100쪽의 문장들이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2. ‘자전가족서사’라니, 흥미롭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프랑스의 유명 잡지 <텔레라마>에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인 ‘나’의 집단적인 가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작가라고. 자기 자신을 밝힘으로써, 타인들 스스로 자신을 더 잘 바라보고 깨닫게 하는 거울을 만드는 작가이자, 자신의 주체성을 ‘타인들 속에서 사유하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작가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독자들의 삶과 겹쳐지는 자전’을 쓰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왜, 우리가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 이런 얘길 많이 듣지 않나.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 정도는 나올 거야!”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지만 그 이야기는 확장되어 독자의 곁에 가 닿고 읽는 사람도 아니 에르노와 그의 어머니에 자신의 삶을 겹쳐 가며 읽을 수 있게 된 거다. 사실 아니 에르노가 자전서사를 처음 선보였을 때 과연 그의 작품을 ‘문학’으로 부를 수 있냐는 비판부터 ‘노출증’이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에르노는 자전서사를 멈추지 않았고 이는 결국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청취차들도 공감과 연대감을 불러일으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 보라.   

  

3. 요즘 이처럼 개인서사를 담은 책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요즘 출판계 안팎에서 조명을 받는 이야기도 ‘개인서사의 역사화’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조명받지 못한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와 세계의 맥락을 살펴보는 거다. 일례로 드라마화가 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이민진의 《파친코》가 있다. 시대의 비극을 어떻게든 감내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장편소설이다.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파친코》의 맥락을 잇는 또 다른 책이 지난달에 출간된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이다. 작가는 “백범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한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란 것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다양한 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아니 에르노 (지은이),정혜용 (옮긴이), 열린책들, 2012-05-25, 원제 : Une Femme (1987년), 13800원

     

4.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부터 시작해 최근의 한국 작가들까지 계보를 타고 내려왔다. 아니 에르노는 이러한 자전서사의 역량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건가?

그렇다. 스웨덴 한림원은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속박을 폭로한 용기와 냉정한 예리함”을 수상 이유로 내놓았다. 《한 여자》 외에도 이미 국내에 아니 에르노의 책들이 20여 권 가까이 나와 있다. 대개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를 파헤친 작품들이다. 한편으로는 아니 에르노가 페미니즘, 성 문제, 젠더와 계급에 대한 억압을 파헤치는 데 천착해온 작가라는 점도 수상에 한몫했을 거다. 출판계에서는 아니 에르노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편집자들은 집요하게 사랑하고, 작가들은 자주 좋아하며, 독자들은 어쩌다 빠져드는 작가"라고 말하곤 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유명한데 200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됐고, 2011년에는 그의 작품들을 삶의 연대기 순으로 한데 엮은 전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로 출간되는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일부 마니아층이 있는 작가인데, 지금까지는 아는 사람들은 덮어놓고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모르는 그런 작가였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더 널리 알려질 것 같다.


5. 아니 에르노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가?

미국 비평가 애덤 고프닉이 이런 말을 했다. “에르노의 작품은 일단 읽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노골적인 또는 암묵적인 정치적 관심사 속에, 아니 더 중요하게는 문장의 형태와 주술적 속삭임 속에 한 시대의 중요한 무언가를 포착하고 있다.” 아니 에르노는 작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출신의 딸이라는 계급의식을 짊어지고 학창 시절에는 자신의 계급을 수치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대학교수 자격시험을 통과하며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지만 작가가 된 뒤 더 위로 올라가기보다는 이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를 직시하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에르노의 이런 삶이 그의 문장들에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때론 아프지만 더할 나위 없는 자유로움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2년 10월 6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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