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집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뭉치 Dec 18. 2022

느릴 순 있어도 늦은 건 없다

- 《위로의 미술관》

1. 오늘 소개할 책은?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의《위로의 미술관》이다. ‘위로’의 관점에서 화가와 작품들을 큐레이션했는데, 모든 좌절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25명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책 속엔 약 130점의 명화가 담겨 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미술관에서 도슨트(전시 작품에 대한 해설을 통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사람)의 설명을 듣듯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위로의 그림들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될 거다.


2.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로, 누가 봐도 늦은 나이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고, 무엇보다 다른 이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리지 않았던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뤘다. 가난, 가족의 죽음, 조롱과 비아냥, 그에 더해 백내장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고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클로드 모네를 포함해 앙리 마티스, 폴 세잔 등의 그림을 보다 보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한계 짓고, 지레 안 될 거라 여기지만 않는다면 늦은 시점이라는 것은 결코 없음을 깨닫게 된다. 2장은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로, 타고난 결핍, 정신적·육체적 고통, 폭력적인 시대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산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뒤틀린 손가락에 붓을 묶고 그림을 그린 오귀스트 르누아르, 시련을 자양분 삼아 더 단단하게 성장했던 귀스타브 쿠르베,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3장은 ‘외로운 날의 그림들’로, 홀로,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서 오히려 새로움을 창조해낸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부족한 환경, 치명적인 육체적 결함 같은 결핍을 오히려 재능으로 꽃 피운 툴루즈 로트레크, 알폰스 무하, 프리다 칼로, 조르주 쇠라 등이 그들이다. 마지막으로 4장은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로, 일상의 쉼과 행복이 되어주는 존재들을 다룬 작품과 그 자체가 위로와 치유가 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피터르 몬드리안 등의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3.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여정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믿으며 옳다고 생각한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을까?

화가들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갔다. 모네는 절망했기에 모든 것을 위로할 수 있었다. 모네는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수련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안식의 시간을 선사하고 싶어 <수련>을 그렸다고 한다. 그 자신도 오랜 세월 수많은 실패와 수모, 절망을 겪었기 때문에 이 모든 감정을 위로하는 작품을 남기려 한 것이다. 폴 고갱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굳건한 태도로 인생을 살았고, 앙리 마티스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칼(刀, knife)인 ‘붓’을 들고 굴(石花, oyster)을 까듯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세상과 다른 사람을 원망할 시간에 그저 오늘 할 일에 충실했던 알폰스 무하도 있다. 칼 라르손 같은 화가는 불운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늘 현재와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라울 뒤피의 경우, 삶은 그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으면서 밝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4. 삶의 태도에 이어 '일의 태도'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책 속에 소개된 화가들이 극도의 절망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르누아르의 예를 들고 싶다. 성공의 길만 걷던 르누아르에게 화가로서 커다란 시련이 닥친 것이 그의 나이 50세 때였다. 40세 때 자전거에서 떨어져 오른팔이 부러졌을 때도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강한 의지를 보였던 그에게 이번에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찾아온 것이다. 뼈나 관절이 단단하게 굳고 통증이 생기는 이 병은 매일 붓을 쥐고 팔을 써야 하는 화가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해가 거듭되자 그는 결국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했고, 50대 후반에는 오른팔에 마비가 온다. 그리고 70대가 되어서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고, 결국 손가락이 모두 뒤틀린다. 그러나 60년의 화가 생활 동안 약 6000점의 작품을 남긴 그는 하루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말년에 손가락이 뒤틀려 붓을 쥐는 것이 어려웠을 때도 손에 붕대를 감고 그림을 그렸다고. 그런 르누아르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질문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텐데 왜 계속 그림을 그리냐고. 그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에 그림을 그린다”라고 답한다.

앙리 마티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했고, 실제 몸이 좋지 않은 친구의 집에 자신의 그림을 걸어주며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그림 작업에 임했기에 절망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 반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한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시련과 절망이 그를 키웠다고, 쉽게 쉽게 인생이 흘렀다면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거다. 귀스타브 쿠르베 역시 비슷하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을 정도이니.  

    

5. 특별히 이 책을 겨울에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고?

사실 이 책은 올여름에 출간됐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시린 이 겨울, 혹 지금 ‘긴 겨울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가 있다면 그에게 책 속에 있는 앙리 마티스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 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될 때,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깊은 어둠 속에 머물 때에도 기나긴 겨울은 끝나고 곧 꽃이 피어날 거다. 이처럼 이 책 속 작품들은 지친 하루의 끝 가만히 책장을 열 당신을 위해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오롯이 품고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책 속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거다. 반 고흐는 자신의 이름을 물려받은 조카에게 자기같이 굴곡진 삶이 아닌 희망을 캔버스에 담아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책을 소개하는 이 시간이 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세상에 희망을 알리려 오는 고흐의 <아몬드 꽃>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12월 둘째 주 겨울에 소개했다.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2년 12월 8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온라인서점 외에도 쿠팡, 위메프 등 각종 커머스 사이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알라딘 http://asq.kr/XE1p

인터파크 http://asq.kr/PH2QwV

예스24 http://asq.kr/tU8tzB


                 

매거진의 이전글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