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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Aug 27. 2023

과학적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방법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l 정지인 옮김 l 출판사 곰출판 l 가격 1만7000원

   


‘여름’ 하면 ‘바다’, ‘바다’ 하면 ‘물고기’지요. 그런데 이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멀쩡히 존재하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대체 이 책의 저자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이 책은 자연과학서입니다. 과학 전문 기자가 썼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자연과학서는 아니에요. 에세이와 전기(傳記), 과학서와 철학서, 회고록이 섞여 있어요. 그래서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초반부에서 ‘대체 이게 무슨 책이야?’ 하고 더 이상 책장 넘기는 걸 포기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책의 경우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어야만 해요. 초반부나 중반부까지만 읽으면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책의 초반부, 저자는 일곱 살 때의 일화를 이야기해요. 생화학자인 아버지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는 거예요(일곱 살 때 벌써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니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의 표본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아주 놀라운 답을 해요. 의미는 없다는 거죠. 과학자의 시선에서는 자기 딸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이 대답을 듣고 저자는 충격에 휩싸여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왜 사는지 몰라서요. 그래서 어둠의 유년기를 보내게 돼요.


그러다 우연히 스탠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이야기를 듣게 돼요. 조던이 발견해서 직접 이름 붙인 물고기의 수가 당시 인류에 알려진 어류 중 거의 5분의 1에 달했는데요. 인생에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인생은 혼돈뿐이라고 한 아버지와는 달리 조던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저자는 그에게 푹 빠지게 돼요.


저자가 특히 주목했던 건 삶에 대한 조던의 태도입니다. 1000여 개에 달하는 조던의 표본들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다 불타게 돼요. 그럼에도 조던은 굴복하지 않고 하나하나 물고기의 잔해를 집어 들고 그 몸에 직접 바늘로 꿰매가며 이름을 새겼어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나서는 그를 롤모델로 삼아 저자는 다시 의욕적으로 살아가게 돼요.


하지만 조던에게 집착할수록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살인을 했을 가능성도 있고 우생학을 신봉한 걸 알게 된 거죠.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아버지로 삼았던 조던마저 저자를 혼돈에 빠뜨린 거예요. 이러한 혼돈은 장르를 넘나드는 이 책의 구성 방식에 잘 드러나 있어요. 특히,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면 이 책의 주제라 할 만한 반전이 다시 한번 등장해요. 저자가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지, 책 속 마지막 반전은 대체 무엇인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세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7월 24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7/23/20230723013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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