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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Aug 28. 2023

나만의 단어를 수집하는 법

《마음 단어 수집》김민지 지음 l 출판사 사람IN l 가격 15000원


지난주 수요일은 ‘더위를 처분한다'라는 뜻의 처서였어요. 처서가 지나면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이 오지요. 이 책은 다가오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작은 이야기 모음집’이에요. 시인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본 단어들을 골라 정리했지요. 노란 책 표지가 가을날 황홀하게 춤을 추며 떨어지는 은행잎을 닮았어요. 

책장을 팔락팔락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시나브로 가을이 번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총 4장 구성이에요. 요즘 같은 계절엔 2장 ‘여름, 선명한 마음으로’부터 읽기 시작해 차분하게 여름을 떠나보내고 3장 ‘가을, 열리는 마음으로’를 이어 읽으며 시인의 말마따나 열린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해도 좋지요. 


내친김에 3장에 수록된 단어들을 살펴볼까요? ‘가을’ 하면 역시 수확의 계절이지요. 자연스레 ‘열매’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요. 시인은 ‘열매’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열매를 헤아려”봐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열매라고 생각하면 존재 자체가 이미 큰 성취” 아니겠냐고요. 그러니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질 거라는 믿음의 씨앗이 내 안에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고 말해요. “나는 열매이고,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오직 내가 열매라고 믿는 일뿐이라는 듯” 말이지요.  


또 ‘가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가을이면 “무르익은 감만큼 아름답게 물든 감나무 잎”도 볼 수 있고, “지천이 무르익고 물드는 풍경”이라 “그 풍경을 따라 깊고 짙어져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떠오르는 과일로 ‘감’이 있지요. 시인은 감에 대해서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어요. “단감도 될 수 있고, 곶감도 될 수 있고, 홍시도 될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가능성을 지닌 채 주렁주렁 열려 있는 ‘감’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전하지요. 몇몇 가능성은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배려까지 아끼지 않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가능성을 조금씩 세상과 나누는 시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이 책에는 이외에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시인이 직접 고른 110개의 단어가 있어요. 각 단어들에 대한 시인의 생각은 마치 시처럼 스며들어 깊은 여운을 전하지요. 그동안 “꿈, 사랑, 평화, 희망” 같은 관념어가 어렵게 느껴졌다면, 단어들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데 막상 설명하려고 할 때는 그저 어렴풋하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펼쳐보세요.


 다 읽고 나선 각자 마음속에 좋아하는 단어가 있는지 떠올려봐요. 그리고는 “마음에 드는 단어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고, 스스로 생각하는 단어의 본모습을 적어” 보세요. 하나의 단어를 깊이 이해하고 나면 세계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진답니다.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3년 8월 28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3/08/28/QNZHRT7A7JF53EBPJEDNIDAC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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