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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Feb 05. 2024

코뿔소였다가 도도새였다가  에조늑대였던 코쿠모 이야기

《적색목록》백영욱 지음 l 출판사 책공장더불어 l 가격 1만8000원




동물에 대한 야만을 멈추라는 소리를 담은 그래픽노블이에요. 읽는 이를 압도하는 강렬한 흑백 대비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진실을 일깨워주지요.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 뿔이 잘린 코뿔소 ‘코쿠모’의 눈물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코쿠모를 정성껏 돌봐준 보호소 소장이 지어준 이름이었지요. 그러나 보호소에 누군가 침입했고 침입자들은 인정사정없이 코쿠모의 뿔을 잘랐습니다.


코뿔소는 죽음 직전 자신 곁에 찾아온 까마귀에게 전생에 대해 이야기해요. 배들랜즈큰뿔야생양이었던 전생에도 고작 장식용으로 쓰이기 위해 머리의 뿔이 잘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지요. 비극적인 코쿠모의 이야기를 듣던 까마귀 ‘치크’는 코쿠모를 쪼아 먹길 포기해요.


코쿠모도 이제 그만 반복하고 싶은, 매번 더 지독해지고 더 비참했던 자신의 저주받은 전생들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인간을 만나기 전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이별’이었지만 도도새였을 때 자신이 살던 섬에 찾아온 인간들을 만난 이후 목이 뽑히고 배가 갈라지는 ‘죽음’을 알게 되었지요.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로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인간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에요.


“날카로운 발톱과 강력한 이빨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호랑이였을 때도, 에조늑대로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늑대가 사라지니 멧돼지가 급증했고, 사람들은 멧돼지의 공격에 죽임을 당했지요. 단 몇 푼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는 일부 인간들에게 공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는 노인도 있었지만 그뿐이었어요.


베가스표범개구리로 살 때는 계곡의 물을 모조리 끌어다 쓴 인간들 때문에 목말라 죽었고, 큰바다쇠오리로 태어났을 땐 기름이 많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지요. 스탤러바다소로 태어났을 때는 인간을 만나고 27년 만에 지구에서 아예 사라지게 됐고요. 치크는 궁금해합니다. 인간들도 아픔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왜 아픔을 주는 일에 망설임이 없는지. 코쿠모가 여행비둘기, 사슴, 기린, 사자, 상어, 나그네알바트로스, 보르네오오랑우탄으로 태어났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동물들과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반자입니다. 동물들의 삶을 파괴하는 행위는 우리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과 같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진실을 쉬이 잊곤 해요. 이 책은 우리가 동물들의 삶을 보호하고, 그들과 함께 건강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려줘요. 절멸(絶滅)을 맞이하지 않으려면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2월 5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2/05/2024020500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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