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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Feb 09. 2024

설 연휴 추천도서

- feat. 가족 같은 소리(by 버지니아 울프)

1. 오늘 소개할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인 글들을 모은 산문집 《존재의 순간들》입니다. 이 책에는 울프의 유년시절, 가족, 친구, 여행, 자연, 예술 등에 대한 에세이들이 수록되어 있어 울프의 사유와 감성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이밖에도 여성의 권리, 전쟁과 평화 등에 대해 쓴 울프의 에세이들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눈을 키워줍니다. 특히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섬세한 표현력, 명확한 논리가 돋보이는 울프의 에세이들을 통해 글쓰기의 모범을 배우실 수 있을 겁니다.




2. 버지니아 울프 하면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죠?

네, 맞습니다. 20세기 영국 하면 자동으로 버지니아 울프가 떠오르는데요. 세기가 바뀌었어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은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울프는 뛰어난 작가이자 사상가였지만, 울프의 사유와 감성은 소설 속에서는 종종 가려지기도 하는데요. 아무래도 소설은 줄거리가 중요하다 보니까요. 하지만 이 책 속 에세이들을 통해서는 울프의 섬세한 관찰력과 시적 감각,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는 것이 특히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편 레너드 울프에 따르면, 생전에는 울프의 소설보다도 에세이가 더 폭넓게 읽혔다는데요. 소설과는 또 다른, 당차고 명징하며, 쾌활하고 위트가 넘치는 울프의 다양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3. 이 책에 많은 에세이들이 수록되어 있을 텐데 특히 추천하고 싶은 글이 있으시다면요?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울프가 자신의 성장과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 글인데요. 아버지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었습니다. 당시 여자는 교육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인식과는 반대로 아버지는 울프에게 자신의 서재를 개방하고 울프가 마음껏 책을 읽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책들을 울프에게 읽게 해 준 울프의 아버지 덕에 지금 저희가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이렇게 읽고 있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울프는 이런 아버지를 매우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4.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죠. 어떤 상처를 받은 건가요?

맞습니다. 울프의 아버지 역시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지식인인 동시에 강압적이고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울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그런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는데요. 울프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에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이해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쓴 글을 읽으며 아버지에 더 깊이 알아가려고 노력한 건데요.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이런 울프의 복잡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산문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울프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5. 인상적입니다. 울프가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네, 77족에 이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그를 깨우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했고, 자기감옥의 벽들을 통해 이따금 깨달음의 순간들을 얻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즉, 자기 본위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해치지 못하며, 어떤 것도 어쩔 수 없이 거기 맞닥뜨린 사람들을 그토록 심하게 상처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무렵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즉, 아버지와 우리의 나이차 때문에 가로놓여 있던 심연 말이다. 하이드 파크게이트의 응접실에는 서로 다른 두 시대, 즉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내일부터 이어질 설 연휴에도 온 가족이 모이게 되면 서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그때 한번 서로 간의 세대와 시대 사이의 심연을 생각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닌지 가늠해 보시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6. 말씀을 듣고 보니 설 연휴를 맞아 읽기에 참 좋은 책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일상적인 경험에서부터 고차원적인 사유로 가는 힘이 참 좋습니다. 내밀한 가족사 외에도 겨울의 런던이나 자연에 대한 에세이도 있으니까요. 취향껏 골라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활발한 아이였던 울프가 산과 숲에서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신비한 자연의 생명력을 어떻게 지켜봤는지는 <나비와 나방: 9월의 곤충들>이라는 산문에서 엿볼 수 있는데요. 울프는 런던 한복판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매년 여름 온 가족이 세인트아이브스의 탤런드 하우스로 가 서너 달씩 머물곤 했거든요. 그때 작은주홍부전나비, 먹그늘나비 등 많은 나비들을 보았다고 해요. 나이가 들면서 호랑나비나 흰마리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더 이상 수집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눈에 잘 뜨이지도 않게 된 것” 아닐까 추측해요. 잃어버린 동심에 대한 에세이였습니다. 이번 설 연휴에는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해 가며 읽으실 수 있는 <존재의 순간들>과 함께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2월 8일(목) KBS 라디오 <생방송 오늘 원주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산책' 코너 진행 원고입니다

생방송오늘 원주입니다 | 디지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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