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바지. 지음 l《슈뢰딩거의 고양희》l 출판사 김영사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질문을 통해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SF 단편 만화집이에요. 평행우주, 시간여행, 인공지능과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놓치지 않지요. 이렇듯 이 책에 실린 단편 만화들은 단순히 과학 이론이나 SF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의 삶과 연결된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내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같은 철학적 고민이 작품 속 이야기와 캐릭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요.
이 책의 제목은 동명의 단편 만화에서 따왔습니다만 그 뿌리에는 에르빈 슈뢰딩거의 상상 실험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희>의 내용 전체가 이 실험에 기반해 있고, 실험명에서 등장 캐릭터 ‘고양희’의 이름도 따왔지요. 양자역학이라는 복잡한 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은 어떻게 보면 이상하고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학적으로 가능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어디까지나 상상 실험이니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를 넣고, 거기에 방사성 물질과 독이 든 병, 그리고 방사선 감지 장치를 함께 넣는다고 치는 겁니다. 방사성 물질은 일정한 시간 안에 반응(붕괴)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만약 방사성 물질이 반응하면 감지 장치가 이를 알아차리고 독이 든 병을 깨트려요. 그러면 고양이는 죽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방사성 물질이 반응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자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슈뢰딩거는 이 상태를 ‘중첩’이라고 불렀습니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상자를 열어 고양이를 확인하는 순간, 그 중첩된 상태가 사라지고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로 확정됩니다.
이 실험은 단순히 고양이를 넣고 실험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슈뢰딩거는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기 전까지, 세상의 상태는 정말로 정해져 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보는 세상이 고정된 게 아니라,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그 상태가 확정된다면,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하고 신비로운 곳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한마디로, 세상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거예요.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처럼 아주 간단해 보이는 질문에도 생각해 보면 답을 내기가 쉽지 않죠.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단순한 과학 실험을 넘어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고(思考) 실험이랍니다.
<슈뢰딩거의 고양희> 속 주인공은 물리학 교사인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아픈 딸 ‘고양희’를 치료하기 위해 급속 냉동 치료를 선택합니다. 냉동고에 아픈 딸을 넣고 방사선을 쬐는 치료죠. 문제는, 딸을 아프게 하는 ‘기묘입자’를 파괴하는 한 줄기 한 줄기의 방사선이 ‘좋은’ 상태와 ‘해로운’ 상태의 ‘중첩’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르빈 슈뢰딩거가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말한 바로 그 개념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슈뢰딩거의 고양희>는 ‘평행우주’ 개념을 끌고 옵니다. 아버지는 고양희가 죽어 있는 모습과 맞닥뜨릴 수 있지만 고양희의 의식만은 시술을 받고 눈을 뜨면 반드시 치료가 성공해 있는 ‘우주’로 가 있게 됩니다. 고양희의 입장에선 치료가 실패한 ‘우주’에선 아예 눈을 뜰 수가 없으니까요. “모든 가능한 결과가 서로 닿지 않는 중첩 상태, 그러니까 서로 갈라진 ‘평행우주’들에 나타날 것이란 말”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희>는 복잡한 물리학 개념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탐구하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과연 챔버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는 살아 있는 고양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슈뢰딩거의 고양희>에서 엿볼 수 있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은 휴 에버렛 3세가 제창했습니다. 그는 세계가 양자역학적으로 허용되는 모든 경우로 갈라질 경우, 개개인의 관측자는 자신이 죽어서 없어지는 경우의 세계를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양자 불멸’을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결코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므로 타인들에게만 의미 있을 자신의 유해를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죠. 그래서 에버렛의 아내는 그의 유언대로 애버렛의 유골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의 딸 역시 14년 뒤 유서에 “아빠와 같은 평행우주에 이를 수 있도록” 자신의 유골도 쓰레기와 함께 버려 달라고 했다죠.
이 책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평행우주와 양자역학의 모순은 이처럼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슈뢰딩거의 고양희>가 상자 속 고양이의 생사 모순 개념에서 출발해 인간의 정체성, 선택의 무게, 그리고 생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것처럼요. 결국 이 책에 실린 단편 만화들은 과학을 통해 삶을 묻고, 삶을 통해 과학을 이해하는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읽고 나면 과학적 호기심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하게 될 거예요. 상상력과 사고의 깊이를 확장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여러분이 과연 어떤 평행우주에서 이 책을 집어들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5년 1월 6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1/06/2025010600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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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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