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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 알려드림

-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by 김뭉치
결혼을 할지 말지와 자녀를 가질지 말지가 대표적인 '답이 없는 문제들'이란다. 대한민국이 초저출산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심오한 철학적 배경이 있었다. "내 선택이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말하자면 인생의 갈림길 같은" 중차대한 문제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기껏 돈 몇 푼 더 던져 주는 걸로 풀려 한다.

- pp. 7-8,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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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의 추천사를 쓴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일찍이 1838년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던 사람이 있었단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 아닐까 고민하던 찰스 다윈 얘기다. 서른 살 생일이 다가오던 무렵, 그는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번에는 결정을 볼 참이었다." 그는 결혼의 장단점을 목록으로 작성하기 시작한다(이걸 보면 다윈의 MBTI 끝자리는 아마도 J였을 것 같다).


다윈이 생각한 결혼의 장점은 총 7개였다.

1. 노년에 나를 돌봐줄 자녀
2. 나에게 관심을 가질 동반자가 생김
3. 사랑받고 함께 놀 대상으로서 강아지보다는 나음
4. 가정, 집을 돌볼 사람
5. 음악이 주는 매력
6. 여성과의 수다
7. 아내 덕분에 너무 강박적으로 일하지 않을 수 있다면 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음


그렇다면 결혼의 단점은? 장점보다 3개 많은 10개였다.

1. 런던을 떠나야 할 수도 있음
2. 내 뜻대로 살 수 없음
3. 사교 클럽에서 남자들과의 재치 있는 대화 불가능
4. 아내의 친척들을 즐겁게 해 주느라 시간 낭비
5. 억지로 아내의 친척들을 방문하느라 시간 낭비
6. 자녀로 인한 양육 비용
7. 자녀에 대한 걱정, 아마도 다툼, 시간 손실, 자녀가 많아져서 입이 늘어날 경우에 발생하는 걱정
8. 가족을 책임지는 데 따르는 일반적 걱정
9. 저녁에 독서 불가
10.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돈이 되는 직업을 가져야 할 수도 있음


다윈은 이 목록 상단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써 놓았다고 한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의 저자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노벨상을 수상한 러셀 로버츠는 "이는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경제학자들이 '기대 효용(미래에 기대되는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다윈은 결혼을 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다윈이 직접 작성한 저 목록에 따르면 결혼의 단점이 장점보다 많으므로 그는 결혼하지 않았어야 이성적인 판단을 한 셈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윈은 '결혼한다' 칸의 제일 아래에 이렇게 써 놓았다.


결혼한다 - 결혼한다 - 결혼한다. 증명 끝(Q. E. D)


다윈은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 예측한 데이터는 무시하고 자신의 직감을 따르기로 한다. 결혼을 한 것이다!

왜?


(추측건대) 1. 다윈은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일상, 특히 좋은 부분을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기대 비용이 기대 혜택보다 큰지 어떤지 평가할 수 없다.
2. 다윈이 그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해도 뱀파이어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일단 결혼을 해서 자녀가 생기면 그 비용과 혜택에 대한 느낌이 바뀐다.
3. 마지막으로, 남편과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는 단순히 삶의 일상적 경험을 넘어서는 측면, 이 책에서 '인간적 성장'이라고 부르는 측면이 있다. 다윈은 인간적 성장을 어떤 식으로 고려해야 할까?




자, 그렇다면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한 프란츠 카프카의 목록은 어떠했을까? ()는 러셀 로버츠의 해설이다.


1. 나는 혼자서는 내 삶의 공격을 견뎌 내지 못한다. (그러니 결혼해라!)
2. (결혼에 관해) 생각만 해도 나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흠, 너무 빨리 하지는 말고.)
3.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내가 성취한 것들은 모두 혼자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결혼하지 말아야 할 듯.)
4. 문학과 무관한 것은 죄다 혐오스럽다. 대화는 따분하다(심지어 문학과 관련된 대화조차 따분하다). 사람들을 방문하는 일은 따분하다. 친척들의 경조사는 극도로 따분하다. 대화는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의 중요성, 심각성, 진실성을 앗아 간다. (거의 확실히 결혼하지 말아야 할 듯.)
5. 인연에 대한 두려움. 상대의 일부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러면 다시는 혼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상동)
6. 과거에 여동생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겁 없고, 힘 있고, 놀랍고, 감동할 때는 오직 집필할 때뿐이다. 아내의 중재를 통해서 내가 모든 사람 앞에서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저술 활동이 희생되지 않을까? 그건 안 되지. 그건 안 되지. (어떤 면에서는 아내가 나의 인간적 성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술 활동 없이 내가 어떻게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7. 혼자라면 언젠가는 정말로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한다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결혼하면 내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작가는 결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결혼하지 마라 - 결혼하지 마라 - 결혼하지 마라. 증명 끝)


카프카의 목록을 정리해 보면 결혼의 장점은

1. 나는 혼자서는 내 삶의 공격을 견뎌 내지 못한다.

이것 하나뿐이다.

나머지 6개의 목록이 결혼하지 말라고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카프카는 결혼을 했을까? 다윈처럼 목록을 따르지 않고 직감을 따라서?




카프카는 결혼하지 않았다. 러셀 로버츠에 따르면 "카프카와 같은 사람들에게 인간적 성장이란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기혼자의 입장에서 마찬가지로 결혼 전 장단점 목록을 만들어 본 사람으로서 다윈과 카프카의 이야기를 깔깔거리며 읽었다. 결혼이란 긁지 않은 복권과도 같아서 결혼이란 걸 해보기 전에는 로또일지 꽝일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다윈과 카프카의 숙고가 그만큼 이해되기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국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권이 있다면 확실히 유리하지만 남들한테 좋은 게 당신에게도 좋을 거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의사 결정 중에 일부는 우리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셀 로버츠에 따르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내가 바랐던 것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그게 실수는 아니다. 그건 그냥 나의 바람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하나의 선택이다. 이런 것을 실수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로버츠가 말하길 실수란 안초비를 실험하면서 안초비가 들어간 피자를 계속해서 주문하는 것, 파렴치한 인간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가지고 자책해서는 안 된다. 당신 자신을 용서하라. 답이 없는 문제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해도 그게 내 실수는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모험이라고 불러야 한다. 모험에는 우여곡절이 따르고 기복이 있다." "기꺼이 모험을 해 보라". "결과가 나쁘면 빨리 중단하라! 결과가 좋으면 파도를 즐기라. 어차피 별로 정확하지도 않을 텐데 어느 모험이 최선일지 미리 알아내려고 낑낑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낫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계획은 세워 두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라. 중요한 건 "최선의 경로만 따지고 있을 게 아니라 애초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릴케가 말한 대로 문제들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답이 없는 문제들로 가득한 인생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이다.




본 포스팅의 경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았으나 작가 본인이 생각한 방향대로 직접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과 저자 러셀 로버츠에 대해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참고하셔도 좋아요 :)

https://www.youtube.com/watch?v=nz43iRjgCb4&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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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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