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박자

민트색 장갑의 기쁨과 슬픔

by 김뭉치

출근길에 장갑을 잃어버렸다. 한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해 멍한 상태였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손이 시린 걸 극도로 싫어한다. 장갑이 없으면 겨울에 외출조차 못하는 나다. 그런데 장갑이 사라졌다. 아마도 나의 질 스튜어트 장갑이 머물고 있을 장소는 망원역이거나 아니면 망원으로 향하던 6호선 지하철일 것 같다. 퇴근 후엔 바로 시사회 일정이 있어서 제대로 장갑을 찾지 못했다. 우울했다. 장갑을 잃어버려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장갑은 내가 지니고 있던 장갑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장갑을 샀다. 새 장갑을 살 수 있어서 기뻤고 그 기쁨이 내가 소비사회의 노예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우울한 거였다.


사실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사고 싶었던 장갑이 있었다. 누브아의 민트색 장갑으로 내가 좋아하는 컬러에 내가 좋아하는 재질이다.


ⓒ 누브아


남편이 사 준다고 했는데 이미 세 종류의 장갑이 있던 나는 거절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나는 스스로를 ‘소비사회의 호더’로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런데 질 스튜어트 장갑을 잃어버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운명이라는 듯 누브아 장갑을 사 버렸다. 까만 코트에 민트색 장갑으로 멋 부릴 생각하면 행복한데, 그래도 한편으론 끊임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장갑이란 무엇인가, 소비란 무엇인가. 미니멀하게 살 거라는 나의 새해 계획은 지켜질 것인가! 소비요정의 단꿈은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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