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by 김뭉치

그 애는 정민의 뒤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카페 천장으로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치듯 내려오기도 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카페 유리창에 가 부딪혔다가 다시 카운터의 직원들이 커피를 내리는 곳까지 휙휙 날아다니는 그 애를,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봤다.


아, 미안. 내가 너무 심각한 얘기만 줄줄 늘어놨지?


정민은 아무래도 내가 자기 때문에 인상을 쓰고 있는지 알았나 보다.


야, 야. 표정 좀 풀어라. 사실 그렇게 심각한 얘기 아니잖아. 누구나 이런 누추한 스토리 하나쯤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거 아냐?


그러면서 정민은 자, 이렇게, 라고 말하며 엄지와 검지를 벌려 내 미간을 쫙 펴는 시늉을 했다.


봐, 인상 안 쓰니 얼마나 예뻐. 아이, 예쁘다, 우리 도도.


나는 그런 정민을 향해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 나도 모르게 인상 쓰고 있었나 보네. 맘 아픈 얘기 하게 한 거, 괜히 미안하다.


야. 괜찮아, 괜찮아. 내가 보기보다 좀 단단한 놈이거든? 하하.


정민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 번 두드리고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였다. 바로 그때 그 애가 V자 사이로 휙, 하고 들어가더니 어느 새 내 뒤로 다가와 귓가에 기분 나쁜 숨결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누나, 저 형이랑 무슨 사이인 건데?



非行

정민을 처음 만난 건 지난 일요일, 시내에서였다. 소희와 새로 생긴 스포츠매장에서 러닝화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등을 툭, 하고 치는 거였다.


어이, 도도.


놀라서 돌아보니 정우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소희도 있었네?


정우가 소희 쪽으로 몸을 돌려 빙글 인사했다.


오, 윤소희?


그때 정우의 곁에 있던 정민을 처음 봤다. 알고 보니 나를 제외한 세 명은 모두 고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우리 넷은 사실 그렇게 반가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도 으쌰으쌰하며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묘하게도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감자탕을 시키고 소주 몇 병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거나하게 흥이 올랐다.


도도야. 요즘 누구 만나는 사람 없어?


정우가 그렇게 물은 건 이미 각 1병씩 소주를 마신 뒤였다. 없는데, 라고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기도 전에 소희가 선수를 쳤다.


정우야. 우리 도도 남자 좀 소개시켜주라.


뭐? 야. 윤소희.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도도 남자를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안 되지.


왜?


소희가 진짜 모르겠다는 듯 큰 눈을 굴렸다.


아, 그게…


내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내 어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그 애가 내 입을 막아버렸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인가…. 그치, 도도야? 우리 10년 됐지?


대신 정우가 말문을 열었다.


도도랑 나랑 10년 전에 사귀었던 사이잖아. 도도 얘가 하도 부끄럼을 타서 비밀리에 사귀어 아무도 몰랐지만. 한 20일 사귀었나. 도도가 어찌나 나를 좋아했는지 야자 하다 말고 나 보고 싶다고 택시를 30분이나 타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니깐. 그치, 도도야? 고3이 그러기도 힘들지. 참, 어떻게 된 게 너는 여태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못 만나고 있냐. 이 오빠가 그렇게 가슴에 사무쳤니?


귓가에서 그 애가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팔을 들어 기지개를 펴는 척하면서 그 애를 꼬집으려고 했지만 그 애는 이미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가 반대편 창틀에 앉은 뒤였다.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정우에게 됐거든요, 하고 쏘아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애가 지쳤는지 내 어깨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휘휘 돌아보고는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게. 작작 좀 마셔야지. 아빠 닮아가냐. 바람 빠진 풍선마냥 비틀거리면서 날아다닐 때부터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 애는 힘없이 고개를 젓고는 끝내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야. 이제부터 너 술 마시지 마. 너 때문에 내가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알아? 앞길 창창한 20대가 오십견 온 듯 어깨가 무거운 게 말이 되냐고. 네가 맨날 내 어깨가 무슨 바이킹인 듯 타고 있으니 짐스러워 죽겠다, 진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애는 내 어깨 위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야. 너도 숙취란 게 있냐?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적 없더니 왜 이래? 진짜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그리고 너, 제발 좀 내 어깨에서 사라져달랬지?


그 애는 머릿속이 어지러우니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휴대전화를 보니 정민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다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정민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젠 잘 들어갔냐, 는 이야기로 포문을 연 첫날에 이어 다다음 날엔 출근 잘했니, 로 그다다음 날엔 지각을 하고 말았다며 왜 자신을 깨우지 않았냐고 잔소리를 퍼부어대기까지 했다. 참 레퍼토리도 다양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3일째 정민과 종일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설마 이 녀석이 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괜히 의심스러웠다. 그 사이 정민은 매일 보고 싶다고 말했고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고 밥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런 그의 메시지에 나는 왜, 라고 답했고 차는 나도 있는데, 라고 말했고 싫은데, 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그래도 정민은 굴하지 않고 내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 메시지를 보냈고, 자신의 페이스북에는 우리가 함께 감자탕을 먹으며 깔깔댔던 한가로운 오후의 사진을 올렸다. 어깨 위에 태평스럽게 앉아 있던 그 애가 팔목에 매달려선 댓글을 훔쳐보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정민의 사촌인 정우와는 고작 20일을 사귀었지만, 같이 모텔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손만 잡고 자긴 했지만.


자기 사촌과 잘 뻔한 사이였다는 걸 과연 정민은 알고 있을까. 혹시 정민이 나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자 봄날의 비밀을 핥듯 달큰한 찝찝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정황을 전해들은 언니의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때 20일 사귄 게 사귄 거냐고 그까짓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지만, 그건 그 오빠가 정우와 잘 뻔하기까지 했던 20일 동안의 내 연애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한편으론 정민이 싫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론 나에 대한 정민의 감정이 이성적인 호감이 아니길 바랐다. 정민은 나와 같은 종류의 상처를 안고 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내 몸을 타고 기어 올라와 삐비비빅, 경고음을 울려댔기 때문이다.


정민과 두 번째 만났을 때 우리는 푸른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여름의 초입, 지방의 나무들은 저마다 여보란 듯 싱그러운 내음을 뿜어대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더운데 왜 뜨거운 차를 시켜?


메뉴를 고를 때 정민이 그렇게 물어서 나는 비로소 웃음을 터뜨렸다.


뜨거운 여름날에 마찬가지로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 마시면서 코끝까지 차가운 서늘한 겨울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더라구. 뭐랄까. 한여름에 에어컨을 터보로 빵빵하게 틀고 포근한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 책 읽을 때 그 기분! 알아? 묘하게 간질거리는 그 느낌.


초록의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게 보였다. 정민은 내 얘기를 듣더니 자신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사이 카페에서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제 본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더랬다.


노래를 들으며 나는 하릴없이 감상에 젖었다. 내게는 때때로, 어떤 노래를 들으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별 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이라는 첫 소절을 듣자마자 희미하게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 남자는 토요일 오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내게 이 노래를 불러줬더랬다. 눈을 꼭 감고. 그 떨리듯 담담한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때의 나는 휴대전화를 켜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우리 둘은 녹음된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낄낄거리고는 길고 긴 섹스를 했다.


그와의 만남은 늘 그런 식이었다. 만난다, 섹스를 한다, 잔다, 일어난다, 그가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듣는다, 또 섹스를 한다,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다시 섹스를 한다, 차를 마신다, 헤어진다… 이 반복되는 패턴이 싫어 나는 그를 떠났다.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위성처럼 팽팽 돌아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 연인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될 건 가리지 않고 했지만 정작 나의 깊은 우물을 그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매일매일 내 온몸을 뒤흔드는 설렘을 느끼면서도 진짜 나는 뿌옇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방황 아닌 방황을 시작했다. 그에게선 어떤 안정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서로 일차원적인 본능만 충족시킬 뿐 그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과 키스를 하고 맘에 드는 사람과는 자기도 했다. 세상에 남자는 참 많았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단 한 사람이 없었다. 그게 서글펐다. 만남 뒤에 남는 건 지독한 공허함 뿐이었다. 그도 이런 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웬일인지 그는 이런 내 모습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게 더 끔찍했다.


결국 그는 만일 그대 내 곁을 떠난다면 끝까지 따르리 저 끝까지 따르리 내 사랑, 이라던 그날의 노래가사만을 남기고 가사와는 달리 내 곁에서 증발해버렸다. 이별의 순간, 그는 몇 번이나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그의 말 속에서 껍데기만 남은 진심을 느낄 뿐이었고, 결국 우리는 이별 후에도 한 번 더 무의미한 사랑을 나눈 뒤 정말로 헤어져 버렸다. 지금에 와서 슬픈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그를 떠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를 다시 만나고픈 생각도 없다.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이미 무너진 신뢰와 벌어져 있는 간극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더욱이 나는 깨진 신뢰의 조각을 다시 이어붙이는 데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벌어진 간극을 좁히는 것에는 더더욱. 그럼에도 문득 몇몇 노래와 갑작스레 부딪힐 때는 나도 모르게 그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흑백의 무성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서서히 이미지로 떠오르고 한동안 가슴에 스미었다 가라앉는다. 그러면 나는 며칠은 그와 그의 노래와 그 이미지 속에 잠겨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 안에 고인 어둠이 아니었다면 그와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떤 일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가장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사람이다. 늘 겁에 질린 채 바닥을 볼까 봐 한사코 오들오들 떠는 그런 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여전히 그와 나의 사이를 부유하는 먼지 같은 노래, 노래들, 그 속에서 어쩐지 길을 잃은 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나와 헤어지고 난 몇 달 뒤 결혼을 했다는 소식은 소희로부터 전해들었다. 소희는 이 동네의 마당발답게 떠도는 말들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나와 헤어진 뒤 얼마 안 돼 다른 여자를 소개받고, 그 여자와 3개월 가량 만난 뒤 신부 배 속에 있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결혼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와 만날 때 그와의 결혼을 상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늘 저만치 한 뼘 떨어진 자리에 있는 안개꽃 같은 것이어서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때때로 그가 나에게 결혼을 종용할 때면, 그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나 자신 때문에 멀미가 났다. 아직 나 자신의 삶조차 지탱하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삶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이미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그 애의 존재만으로도 내 삶은 평범을 꿈꿀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과연 타인의 상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정민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생각들을 훑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내가 집에 빨리 들어오는 걸 안 좋아해. 그러면 밥을 차려야 되잖아.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집에 기어들어가기보다는 밖에서 밥을 사먹고 가지. 나름의 효도랄까? 안 그래도 엄마는 여기저기 놀러다니기 바쁘기도 하고. 우리 엄만 나더러 빨리 독립하라고 난리라니깐.


그런데 엄마가 집 자주 비우시면 아빠가 싫어하시지 않니?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지만, 한순간 정민의 얼굴이 땅바닥에 버려진 조약돌처럼 딱딱해지는 걸 놓치긴 어려웠다.


나 아빠 없다.


...


우리 아빠 죽었어. 내가 열다섯 살 때. 배운 게 없어서 몸 쓰는 일 했거든, 우리 아빠가. 그때 아빠는 빗물펌프장에서 일했는데 천장 조명을 교체하고 있었다나봐. 나는 어릴 때였으니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도 몰랐고. 그냥 어른들이 노가다, 라고 하길래 우리 아빠는 노가다 하나 보다 한 거였거든. 근데 그날 이후 아빠가 무슨 일을 했는지 똑똑히 알았지. 사람 운명이 참 얄궂다. 하필 우리 아빠가 크레인에 타고 있던 그날, 웬일인지 크레인이 흔들렸고 우리 아빠는 10m 아래로 추락했거든. 목이… 부러졌지, 완전히. 아빠랑 같이 작업하던 다른 아저씨는 떨어지면서 난간이라도 붙잡은 모양인데, 우리 아빠는 살고 싶지 않았는지 그대로 낙하. 그렇게 뚝.


많이 무서웠겠다. 어린 나이에.


처음엔 아빠가 나와 우리 가족을 버린 것 같단 생각에 힘들었어. 분명 같은 환경에서도 산 사람이 있었고, 우리 아빤 죽어버렸으니까. 아빠는 살 수 있는데, 그걸 알았는데 일부러 아무것도 잡지 않은 건 아닐까. 떨어지는 그 순간에, 아아. 잘 됐다. 이제 무거운 짐 같은 건 다 놓아버리고 고통 없는 세상으로 가겠구나, 하고 은근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추락한 건 아닐까. 형이랑 엄마는 비교적 아빠의 죽음을 잘 받아들였는데, 나는 달랐어. 많이 방황했지.


예를 들어 어떤?


일단 죽으면 다 끝인데 뭐 때문에 살아야 하나 싶더라? 세상만사 다 귀찮고. 그러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는데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후배 한 놈이 친구랑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아빠가 자꾸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짜증난다고. 우리 아빠지만 죽여버리고 싶다고.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정민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갑자기 참을 수가 없더라고. 그때까지 잘 참아왔던 내 안의 뭔가가 때를 만나 쾅, 하고 폭발해버리는 기분? 우리 아빤 정말 죽었는데, 죽어서 지금 내 곁에 없는데, 그깟 아빠 잔소리 때문에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


정민의 말이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죽여버리고 싶다, 는 문장이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卑行


죽여버리고 싶어.


언젠가 언니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눈망울 가득 걱정을 담아 바보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죽여버리고 싶다고.


도도야, 아빠는 지금 아프잖아. 우리가 이해해야지.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해해야 되는데? 이만큼 우리가 이해해줬으면 이제 아빠도 우리를 이해할 때가 됐잖아. 왜 우리만 이해해야 돼? 왜 우리만 받는 것 없이 계속 줘야 하냐고!


언니가 내 손을 잡으려는 걸 뿌리치면서 나는 온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식탁 위의 냄비를 집어던졌고 -안에 있던 청국장이 사방으로 튀어 냉장고와 방바닥, 흰 벽에 묻었다- 후라이팬을 들고 바닥이 우그러질 정도로 식탁을 두 번 내리쳤고 -그 바람에 겁 많은 언니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집을 나갔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올라갈 수 없는 우물 바닥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어릴 적 나는 아빠한테 노상 맞았다. 그의 분노는 늘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졸지에 몸무게가 30kg밖에 되지 않던 나에게로 달려왔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두 손을 비비며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라고 힘없이 말하며 주저앉는 것뿐이었다. 엄마도 언니도 나를 지켜줄 수 없었다. 늘 장난기 넘치던 그 애조차도 아빠의 분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 애는 그저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벌벌 떨 뿐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조차도 느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그들은 너무 약했다. 그들 스스로를 지키는 것도 버거웠다. 그 깨지기 쉬운 연약함에 매달려봤자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부터 내 자신은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섭리를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아빠처럼 폭력을 휘두를 때 적어도 그동안만큼은 그는 내 앞에서 조용해졌다.


가족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다.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미웠다. 모두들 지독한 이기주의자들 같았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환갑이 다 되도록 철이 안 드는 아빠와 지난날의 상처가 너무 깊어 그 생채기만 끌어안고 사는 엄마와 제 멋에 겨워 자기 인생을 살면서도 가족 따위와는 거리를 두고 그저 무서워할 뿐인 언니. 도대체 왜 저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나고 자라 가족이라는 걸 이루는 걸까.


차라리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없기에 가족보다 깊은 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집 근처 놀이터에서 나는 헤어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밤마다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고, 나는 의식적으로 그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날만은 기댈 곳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빠를 죽여버릴지도 모를 테니. 그네에 앉아 그의 번호를 누르는 나를 그 애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생활은 어때? 좋아? 살이 좀 오른 것 같은데.


그는 한달음에 내 곁으로 와 주었다.


응. 나쁘지 않아. 어쩌다 한 결혼 치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놀이터의 모래를 발로 쓸어 모았다 다시 판판하게 펴기를 반복했다. 대답을 기다리던 그도 하릴없이 옆 그네에 앉아 천천히 그네를 탔다.


… 죽여버릴 것 같아서. 그 집에 계속 있다간 죽여버리고 말 것 같아서 나왔어.


… 누굴? 아버님?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너희 집에 무슨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었어. 가끔 데이트하다 말고 전활 받으면 집에 가 봐야 한다면서 부리나케 갈 때 있었잖아. 그때 네 눈동자, 길 잃은 짐승처럼 흔들렸었지. 너처럼 엄마, 언니랑 애틋한 애가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연히 아버님이겠지? 소거법. 간단한 거야, 꼬맹아.


안 놀라?


왜 놀라?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 놀랍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빠한테 이런 험한 말을 한다는 게….


다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놀이터 너머 아파트 단지를 바라봤다.


우리 아빠, 많이 아파. 마음이, 많이 아픈가 봐. 매일 술을 마셔. 가족들이 못 마시게 하니까 이젠 숨겨두고 마셔. 서랍장 속, 옷장 안, 소화전 안에 소주병이 굴러다녀. 어떤 날은 슈퍼에서 소주를 사자마자 바로 한 병을 털어넣고 집으로 와. 그리고는 분노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술 마시고 분노, 술 마시고 분노의 반복이야.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해. 처음엔 아는 척했다가 마주하게 될 아빠의 분노가 무서워서 모른 척했는데 이젠 정말 모르고 싶어서 모른 척해. 아빠는 세상에서 자기 혼자 불행한 줄 알아. 내가 보기엔 가장 근본적으로 그 불행을 덩어리로 뭉쳐놓은 건 아빠인데도, 아빠는 그 불행이 우리 가족을 다 갉아먹어서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파일 몸도 없다는 걸 몰라. 오늘도 아빠가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더라. 경찰에 신고했더니 집으로 온 경찰 앞에서 자긴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단 냥 연기를 하는데 그 꼴이 참, 우스웠어. 그동안은 아빠가 너무 무서웠는데 그 순간엔 참 우습더라. 꼭 희극을 연기하는 비극 배우 같았거든. 그 우스움을 참을 수가 없었어.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어. 나도 28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본 기분. 내가 하는 생각이 나도 무서워서 놀랐다가 이내 그럴 수 없는 내 자신을 알고 좌절했어.


도도야. 너는 나를 철없고 다른 사람 아픔 따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는 인간으로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진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됐잖아. 이런 얘기, 가슴속에 꾹꾹 묻어두고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풀어볼 얘기, 나한테 자주 해. 나는 요즘 너랑 하고 싶었던 것들, 다 다른 사람이랑 하고 있어서 그런지 네 생각이 많이 나.


그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온 우주의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갔다. 그의 양손이 내 볼을 감쌌을 때 나는 조용히 그를 밀쳐냈다.


그때.


그네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내게 그가 말했다.


우리가 만나던 그때, 도도 네 얘기를 더 많이 들어줬다면, 지금 우리, 달라졌을까?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뒤돌아서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예전의 우리가 아니라, 네가 이제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내가 아닌 다른 한 여자의 남편이어서,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나와는 별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지금 우리가 서로 대화라는 걸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이제 우리 만나면 안 될 것 같다. 내 생각에 넌 아직도 내 얘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 것 같진 않거든. 적어도 너는, 너만큼은 네 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를 놀이터에 두고 걸으면서 불현듯 어릴 적 내가 생각했던 스물여덟의 내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더없이 단단할 줄 알았다. 더없이 행복할 줄 알았다. 세상 모든 기쁨은 내가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지금처럼 이미 결혼한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만나 구구절절 집안 사정을 털어놓을 줄은 몰랐다. 불행유발자가 된 아빠를 지척에서 힘없이 바라만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언제까지고 내 곁에서 그 애가 떨어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이건 악몽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밤의 융단폭격이었다. 끔찍했다.


어깨가, 무거웠다.



飛行

그래서 딱 한 대를 쳤는데 걔 코가 주저앉더라고. 걔네 엄마는 당장 학교에 찾아와서 나 쫓아내라고 악다구니를 쓰는데, 우리 엄마는 없었어.


엄마는 어디에 계셨어?


엄마는… 엄마는 시장에 있었어. 남편 먼저 보내고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주부가 시장에 좌판 깐 거지. 젓갈이며 김치 내다 팔면서.


그럼… 어떻게 됐어? 학교….


자퇴했어. 학교에서도 나 같은 애 귀찮아하는 것 같고.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도 안쓰러워서 나도 한 푼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었거든. 대학 같은 거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


그럼 그 뒤로 바로 일 시작?


자퇴하고 1년 동안 이 일 저 일 되는 대로 하면서 돈 벌었는데, 형이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고등학교 학비는 자기가 대주겠다면서. 돈 벌면서 어른들이랑만 놀다 보니 또래들이랑 같이 생활해보고 싶기도 했어. 그래서 상고에 갔고. 졸업하면 바로 취직할 수 있을 테니까.


윤리책에 나오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네.


응. 그런 거지. 질풍노도. 그래도 그런 시간을 통과하면서 결이 다른 인간이 됐달까. 좀 더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면서 정민은 시선을 돌려 멋쩍게 웃었다.


도도 너랑 있으면, 이상하게, 아직 너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가 혼자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도도 너한테 있는 어떤 존재감이 나한테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그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마치 정민이 그 애를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좀 피곤하네. 슬슬 들어가자.


정민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보였을 때, 내가 나도 모르게 거리두기를 했던 것은 그와 만날 때와는 정반대의 이유에서였다. 나와 같은 종류의 속살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가까이 하는 것은 묘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 인생은 그 애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달팠다. 한편으로는 그 애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세상 천지에 그 애라고는 없는 것처럼, 혹여라도 그 애의 존재 자체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 나 자신의 모순이 극도로 혐오스러웠다. 들깨가루 팍팍 넣은 뜨끈한 추어탕을 목구멍으로 씹어 삼키면서 좁은 수조 속에서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미꾸라지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볼 때처럼.



세 번째 만나는 날, 정민과 근처 공원에서 그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공원의 햇살은 부드럽게 부풀어올라 분진처럼 구석구석까지 내려앉았다. 초여름의 저녁은 그렇게 뭉근했고 녹음은 석양 사이로 조용히 녹아들고 있었다. 그는 손수 만들었다는 주먹밥과 제육볶음을 조심스럽게 내어놓았다. 동글동글한 주먹밥은 갓 만들어졌는지 따뜻했다. 그 애도 잠시 내 어깨에서 내려와 감식을 하듯 정민이 만든 도시락을 꼼꼼히 살폈다.


동생이, 하나 있었어.


그 애를 쳐다보며 혼잣말 같은 말을 내뱉었다.


동생?


정민이 주먹밥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응.


나는 정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밥알이 묻어 있었다.


이건 아껴뒀다 이따 먹으려구?


내가 밥알을 가리키며 말하자 정민이 눈을 크게 떴다.

밥알이 묻은 왼쪽 입가는 그대로 두고 오른쪽 입가만 손가락으로 훑는 그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여기!


이거, 민망하네. 그나저나 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도시락을 다 감상한 그 애가 얼른 내 쪽을 뒤돌아봤다. 역시 넌 양반은 못 되겠다.


내 동생, 거의 여기 있어.


내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정민이 어깨 너머를 살핀다.


대체 그게 무슨…


...


혹시, 동생이 죽었어? 그래서 네 마음속에 산다는 뜻이야?


뭐, 대충 그거랑 비슷해.


동생이 왜 죽었는데?


정민의 낯빛이 금세 비 맞은 장판처럼 눅눅해졌다.


우리 엄마가 아빠한테 많이 맞았어. 아빠는 술도 많이 마시고 도박도 하고. 주위에 여자도 많았다더라. 그러니까 엄마는 아빠 같은 아들을 낳는 게 너무 두려웠더래. 그래서 내 동생은 분명 엄마 배 속에 있었는데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렸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이런 얘기를 듣기 전부터 그 애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어. 어느 밤 엄마랑 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엄마가 흐느끼며 얘기했을 때, 그제서야 난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게 그 애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우리 가족에게서 태어난 그 애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 훨훨 날아오르지 못했던 거야.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거야. 그 애는 태어났어야 했을까? 태어나고 싶었을까? 태어나는 게 나았을까, 그렇게 배 속에서 죽어버리는 게 나았을까? 난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그냥 그 애가 너무 가여워. 아무도 책임져줄 수 없는 그 애, 모두의 연약함이 낳은 그 애. 그래서 부서지기 쉽고 그래서 떨어지지 않는 그 애.


정민이 나를 끌어안았다. 예상보다 정민의 품은 따뜻했다.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도 내치기보다 오히려 안아주는 사람. 배 속에서 주먹밥의 온기가 슬그머니 퍼져가는 것 같았다. 이내 우리 둘 사이로 그 애가 와서 안기는 게 느껴졌다. 그게 꼭 우리 둘의 구멍을 그 애가 막아주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언젠가 그 애가 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올까. 그때 나는 후련할까. 아니면 아쉬울까. 정민의 어깨 너머로 미처 못 다한 말들이 침묵으로 뭉쳐져 애드벌룬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보랏빛 하늘 위로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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