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by 김뭉치

그 애들이 찾아온 건 어느 눈 내리는 밤이었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푹푹 나리고 있었다. 백석의 시처럼. 나는 방금 꿈을 꾸고 난 뒤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검은 말이 피를 철철 흘리는 꿈이었다. 미역처럼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들러붙은 엄마가 나를 찾아왔다. 엄마는 서울에서 세 시간 반 떨어진 곳에서부터 신발들을 그러모아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어서 내 집 현관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내가 무서워서 문을 열지 않자 엄마는 역시 조용히 기다렸다.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가 유난히 커서 나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엄마는 창백한 낯빛이었고 슬픈 표정이었다. 엄마는 이내 가지고 온 신발 전부를 내게 주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름 모를 사막에 서 있었다. 꿈의 색채는 온통 누런빛이었다. 검은 말이 누워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총이 심장을 관통한 듯 검은 말은 헐떡이고 있었다. 검은 말은 어쩐지 엄마 같았다. 엄마가 피를 철철 흘리는 것 같았다. 엄마일지도 모르는 검은 말이 간신히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나는 놀라 눈을 떴다. 그랬더니 그 애들이 와 있었다.


그 애들은 침대 맡에 앉아 번갈아 가며 내 이마를 짚었다.


이 사람은 곧 죽어.

아니, 이 사람은 이미 죽었어.


어떤 쪽이든 간에 썩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나는 걱정스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애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우릴 바라보고 있네.

아니, 이 사람은 우릴 볼 수 없어.


나는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이 사람이 눈을 두 번 깜박였어. 이 사람은 우릴 바라보고 있어!

아니, 이 사람은 우릴 볼 수 없대도.


그 애들은 서로 같은 꽃에서 맺어진 열매처럼, 아니 하나의 열매처럼 똑같았다. 구불구불한 노란 머리칼을 양 갈래로 묶었고 파란 리본을 달았다. 소매가 풍선처럼 부푼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밀랍인형처럼 하얀 피부와 어우러져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주었다.


저기.


목구멍에서 둘로 갈라진 나뭇가지 같은 소리가 기어 나왔다.


그 애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늘 먼저 말하는 아이가 소리쳤다.


이 사람이 말했어.

아니, 이 사람의 무의식적 발화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긴 내 집인데.


이 사람 좀 봐. 자기 집이라고 큰소리네.

아니, 자기 집인 건 맞지.


너희들은 누구니?


이 사람이 우리가 누구인지 물었어.

아니, 이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온 거야?


그게 중요해?

그게 중요해?


둘이 일제히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꿈인가.


그게 중요해?

그게 중요해?


그 애들이 떠드는 통에 골이 울렸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저기, 조용히 좀 해줄래.


당신이 말을 시켰어.

아무렴, 당신이 말을 시켰고말고.


아, 그래, 미안. 말 안 시킬 테니 쉿.


당신은 아파.

당신은 아파?


너희들은 잠시라도 조용히 있을 수가 없나 보구나. 너희 엄마 어디 있어?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온 거야?


당신은 앵무새.

아무렴, 앵무새는 당신.


뭐?


당신이 물어보는 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물어보는 건 들어왔냐, 들어왔냐, 들어왔냐.


야. 너희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애들은 놀라 내 곁에서 물러났다.


이 사람이 일어났어.

아니, 이 사람은 화를 내고 있어.


나는 그저 기가 찼다. 너네 마음대로 해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장고에 다가가 페트병째 물을 마셨다. 으, 시원하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물맛도 좋다던데 어찌 이리 달고 맛있을꼬. 나는 흐르는 물을 손등으로 훔쳐 입가를 닦고 노트북을 켰다.

어제 써둔 소설 파일을 끄집어내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그 애들은 어느새 내 곁에 바짝 다가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워, 워. 저리 가라.


소설을 쓰고 있네.

아니, 지금 소설 쓰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가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것은 동네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웃고 떠들고 즐거웠다. 좀 피곤하긴 했고 이따금 흐르는 침묵이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과하진 않았다. 그래서 괜찮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친구가 예약한 중식당은 비싸기로 소문난 곳답게 음식은 소량만 접시에 올려져 나왔다. 그래도 그곳의 유린기는 그가 살아온 삼십 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맛있었다. 겉에는 매콤한 양념이 잘 배어 있었고 속은 촉촉했다. 이것이 진짜 유린기의 맛이로구나. 그는 그동안 진짜 유린기의 맛을 보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그것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친구는 다른 친구들보다 유독 그에게만 수회에 걸쳐 음식을 나눠 주었기에 그는 원하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원하는 양만큼 먹을 수 있었다.

촉촉하고 매콤한 유린기 외에도 그는 흑마늘 탕수육과 게살스프, 팔보라조와 홍소삼겹살찜을 먹었고 2+1 행사 중인 아사히 생맥주와 짜장면 반 그릇을 먹었다. 비싼 중식당이라 아무래도 그중 가장 저렴한 짜장면을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은데 의외로 짜장면은 맛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중식당을 예약한 친구가 오늘 애인을 만나느냐고 물어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보러 갈 수 있는 거리에 애인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가장 친한 친구가 청첩장을 주는 날이다. 그의 여러 친구들 중 결혼한 친구는 둘이었는데, 그 둘이 예비남편을 데려와 청첩장을 줬을 때 그는 늘 이중약속을 잡은 채였다. 그래서 첫 번째 청첩장 증정식에선 딤섬 하나 물고 사라졌고 두 번째 청첩장 증정식에선 밥만 먹고 사라졌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친한 친구의 청첩장 증정식이니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았다.

만나기로 하진 않았는데 이따 보고 싶으면 내가 가지 뭐. 그는 쿨하게 대답했다. 다른 친구 한 명은 15분 정도 늦으며 애인과 함께 온다고 한다. 그는 재빨리 휴대전화를 켜 애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D의 애인도 함께 참석. 생각보다 일찍 파할 수도. 끝나고 그리로 갈까?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키는데 애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쉬고 내일 봐도 될까? 나 책 읽을 게 좀 있어서. 그는 탕수육을 꾹꾹 씹으며 애인에게 응응, 그래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음식을 배불리 먹은 뒤 친구 커플과 그를 비롯한 총 여섯 명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이 카페, 저 카페 모두 사람들로 그득했다. 무려 세 곳의 카페를 돌고도 이 한 몸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그들은 겨우겨우 프랜차이즈 카페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평소엔 유독 사람이 없는 삼층짜리 카페인 그곳엔 토요일 오후 세 시의 사람들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대세인 가운데 그는 평소 마시고 싶었던 프랜차이즈 카페의 신메뉴를 선택했다. ‘90초 기다림이 선사하는 깊고 진한 여운’이라는 슬로건을 얼핏 어디선가 본 듯했다. 콜드브루 커피에 바닐라크림을 얹어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함이 어우러진다고 들었는데 막상 맛을 보니 다방커피 같았다. 아마 그 자신의 돈을 지불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다시는 사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신메뉴를 맛본 처음이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자애로워질 수 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빨리 커피를 마셨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있으므로 그들의 대화는 줄곧 결혼과 임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실 그의 친구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줄곧 그렇게 말해왔다. 친구의 애인은 3년 전부터 친구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친구가 줄곧 취직 이후로 미뤄왔기에 그들은 5년을 만나는 동안 결혼을 하지 못했다. 제가 사정해서 결혼하잖아요. 친구의 애인은 그렇게 얘기했다. 아이 셋을 낳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출산에 관해서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은 친구가 ‘나의 아이’가 주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 아이는 달라. 길거리 지나다니는 예쁜 아기들? 걔네 보고 절로 미소 짓게 되는 거? 내 아이는 그냥 차원이 다르다고 보면 돼. 밥을 먹어도 예쁘고 똥을 싸도 예뻐. 내년 초에 결혼 예정인 D도 거들었다. 나는 결혼하고 두 달 뒤에 바로 애 가질 거야. 엽산도 챙겨 먹고. 그가 끼어들었다. 나도 팟캐스트에서 그 얘기 들었어! 정자가 생성되는 기간이 90일이라서 건강한 정자를 만들기 위해선 임신하고픈 달 3개월 전부터 꼭 먹어야 된대. D가 끄덕거리며 말했다. 건강 챙겨야지. 우리 나이가 이제 서른이잖아. 나 내년에 결혼해서 애 가져도 후년에 태어나는데 그럼 그때 내 나이가 몇이야? 서른둘이잖아. 하루하루 내가 늙어간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나이란 말야, 그 나이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야 돼, 애라는 건.

올 초에 결혼을 했고 결혼하자마자 임신해 지금은 임신 2개월 차인 친구가 말했다. 그래, 이왕 낳을 거면 빨리 낳는 게 좋은 것 같아. 나도 1년 뒤에 임신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나쁘지 않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 나도 덜 힘들고 애도 덜 힘들지. 듣고 있던 예비신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술 마시고 깨는 것도 요즘은 남다르더라. 전 같지 않아. 그러면서 그의 눈을 쳐다본다. 그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요즘은 예전에 없던 숙취까지 생겼다니까 하며 웃었다.

친구의 애인은 이 모임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매달 친구를 내보내겠다고 했다. 이 모임에 참석해서 친구가 조금이라도 임신과 출산에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는 어쩐지 친구의 애인이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만 만나고 오면 친구가 물든다고 친구의 애인이 얘기했던 것이다. 친구가 유독 그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했다. 그는 결혼도 임신도 원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그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는 고통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 결혼도 임신도 그에게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은 고통의 축적일 뿐이다.

얼마 있자 D의 애인이 D를 데리러 왔다. 모임을 주최한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결혼 전 결제 거리가 많아 대형마트에 간다고 했다. 결혼한 친구들은 남편들이 데리러 왔다. D가 말했다. “너희 결혼은 어떻게 되어 가? 진짜 결혼하긴 하는 거야? 구체적으로 얘기한 거 없지?” 그는 D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느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변호하는 투가 될 것 같아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결국, 이라 하면 이상하지만 결국 그는 D와 D의 애인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D와 D의 애인은 그가 있건 말건 상관없이 투닥거렸다. 그는 돌연 관객이 되어 그들의 다툼을 지켜보았다. 말다툼은 다양한 주제로 수차례 거듭되었는데 그때마다 화가 난 D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순둥이처럼 보였던 D의 애인도 이따금씩은 D의 말에 반격한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들의 대화가 흥미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내렸고 그는 재빨리 애인에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D 커플과 있는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터라 그는 애인이 그리웠다. 그들이 내린 지 10분쯤 지나 그도 자신이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 그가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것은 동네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웃고 떠들고 즐거웠다. 좀 피곤하긴 했고 이따금 흐르는 침묵이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과하진 않았다. 그래서 괜찮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도 서걱거린다. 그는 동네의 다양한 가게들에 차례로 들렀다. 옷가게도 갔고 생활용품을 파는 곳에도 갔다. 운동화 편집숍에도 갔고 드럭스토어에도 갔다. 서걱거린다, 여전히.

그는 하릴없이 집으로 갔다. 그는 갑자기 몹시 지치고 피곤했다. 그는 겨우겨우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고 손발도 씻지 않은 채 침대에 털썩, 드러누워 버렸다. 그는 침대에 누워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생각했다. 계속 생각하다가 그는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어느 샌가 저녁이 내려앉아 있었고 그는 자신이 배가 고픈지에 대해 생각했다. 배가 고픈 것도 같고 고프지 않은 것도 같아서 그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전화를 보니 아까 애인에게서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이 와 있었다. 그는 만사 귀찮았고 이상하게 애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치밀었다.

애인은 왜 그를 데리러 오지 않은 걸까.

그는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주말이고 주말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날이고 게다가 오늘은 날씨까지 좋아서 데이트를 하기엔 완벽한 주말인데 어째서. 애인은 책을 읽겠다고 했다. 애인은 만약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자기는 그때에도 계속 책을 읽을 거라고 했다. 그동안 못 읽어본 책들을 한 권 한 권 들춰보면서 지구의 종말을 맞을 거라고 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됐다. 그였다면 애인을 포함,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지 않을까. 취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지구 종말은 그런 것 아닌가.

그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채로 또 여전히 서걱거리는 채로 저녁을 보냈다. 애인과 그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 같았다. 그는 문득 애인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애인과의 결혼에 대해 돌아봤다. 한 친구가 말한 대로 다른 친구들이 모두 결혼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애인이 그와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사람인지 생각했다. 그는 애인과 자신이 다르다는 데에 주목했다. 그는 혼자 살고 있는 지금이 참으로 편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여기서 벌거벗은 채 지낼 수도 있고 집을 온통 쓰레기장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그가 원하는 때에 들어가고 원하는 때에 나올 수 있다. 뭣하러 이 행복을 스스로 방류한단 말인가.

그는 그렇게 애인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채로 저녁을 흘려보냈다. 다음 날 애인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서걱거렸다. 서걱거리는 마음이라는 건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조종되는 것 같았다. 그는 애써 애인 앞에서 아무 일 없는 듯 밝은 척 웃어 보였지만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원래 오늘 애인과 영화를 볼 계획이었지만 도저히 볼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애인은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애인의 어깨 통증은 무엇 때문일까. 혹시 그 때문은 아닐까. 그는 카레닌과 브론스키 사이에서 스스로를 저주하고 파괴하는 안나 카레니나처럼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닌 척했지만 하루 종일 애인에게 빈정거렸고 빈번히 상처 주는 말을 일삼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이마에 손을 얹고 울었다. 눈물은 짰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울면서 그는 우는 자기 자신이 혐오스러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애인이 연애 초기와 달리 자주 피곤해하는 건 그만큼 애인이 하루하루 더 피곤해지고 있기 때문이며 자신은 애인의 피곤함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애인과 연락하긴 싫었다. 하지만 애인과 갑자기 연락을 끊게 되면 애인은 필시 그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연락을 했다.

이 서걱거림이 영원히 계속되면 어쩐다. 그는 걱정이 됐다. 그는 걱정하는 것까지 걱정하는 성격이라 걱정이 많이 됐다. 그는 계속 애인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애인을 좋아하나 싫어하나. 그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애인을 좋아해, 분명. 하지만 애인과 결혼하기도 싫고 동거하기도 싫었다. 서로 너무 다르다는 걸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애인이 못 견뎌할 걸 알았다. 그런데 애인의 말간 얼굴을 생각하면 하기 싫던 결혼을 다시 하고 싶기도 하고 한번쯤 같이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그는 그 자신의 변덕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애인을 지금보다 조금 덜 좋아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그는 엄마를 생각했다.


갑자기 엄마를 왜 생각해?

황당하네. 뜬금없이 엄마라니.


쌍둥이들이 말했다.


그냥 손닿는 대로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아. 오늘 엄마 꿈을 꿔서 그런가. 너네 때문에 안 풀리잖아.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재능이 없어.


알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쓰는 게 중요하지.


그 애들은 내 어깨에 걸터앉아 내 귓가에 속삭였다. 보기엔 아주 조그마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무거웠다.


떨어져, 너희. 무거워.

그 애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그리고 곧 정색하며 말했다.


이 사람이 뜬금없이 소설 속에 엄마를 불러들인 건 이유가 있어.

엄마 때문에 왔어.


뭐라니.


세계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야.


쌍둥이 중 한 명이 말했다.


여러 차원의 세계들이 존재하고 그 세계들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틈이 존재하지.


다른 한 명이 말했다.


한 차원의 세계와 다른 차원의 세계가 겹쳐져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시간과 공간의 틈.


처음 말한 아이가 다시 말했다.


우린 그 틈으로 온 거야.


나중에 말한 아이가 다시 말했다.


잠깐, 이해가 안 되는데.


내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만년필을 우리가 산다고 해 보자고.


쌍둥이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러면 앱을 켜서 만년필을 고르겠지.


다른 한 명이 말했다.


겹쳐진 세계에서 벌어진 시간과 공간의 틈, 그 사이로 만년필이 배달되어 올 수도 있는 거야.


쌍둥이들은 핑퐁게임처럼 둘이서만 말을 주고받았다.


당신이 창문과 현관문을 모두 꼭꼭 닫았음에도 당신의 책상 위에 짠, 하고 만년필이 나타나는 거야.


도대체 뭐가 뭔지, 참. 그래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굉장히 편하겠는걸. 여자들은 배달원 걱정 없이 배달 음식을 시킬 테고. 배달원 무서워하는 여자들 많잖아. 그런데 택배기사들이 일이 없어지겠어. 배달원도 일이 없어지겠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쌍둥이 중 한 명이 말했다.


당신에게 우리가 글감을 줄게.


다른 한 명이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부부가 있었어. 부인은 남편을 오빠, 라고 불렀지. 이들은 잘 꾸며진 커다란 저택에 살아. 방마다 인테리어가 아주 잘 되어 있지. 안방엔 커다란 철제침대가 있는데 고풍스럽고 흰 침대시트와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접착제를 붙여놓은 듯 그 침대에 눕게 되지. 또 다른 작은 방에도 역시 침실이 있어. 여기는 안방 침대보다 훨씬 편안한 침대가 놓여 있어. 이불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감촉이야. 여기에서 부인은 혼곤한 잠의 세계 속에 빠져 있지.


처음에 말했던 쌍둥이가 다시 말을 받았다.


부인이 일어났을 때 안방 침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해. 부인은 끌려가듯 안방 침실로 들어가. 거기엔 그리스 여신처럼 흰 침대시트로 몸을 가린 나신의 여자가 나른하게 누워 있어. 금발에 가녀린 몸인데 눈은 마노를 떼어 붙인 듯하고 코는 오똑하며 입술은 앙증맞지. 그 여인은 부인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으며 자신과 섹스를 하자고 조르지.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마마mama, 라고 불러. 부인은 집에 있을 남편 생각을 하며 마마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방을 나와. 부인은 아직도 잠의 세계에 갇힌 걸까 얼떨떨해 하며 안방을 나오지.


다른 한 명이 다시 이야기를 받았다.


부인은 거실로 나와. 거실에는 커다란 식물들이 무성안 초록잎을 자랑하듯 늘어놓고 있는 화분들이 놓여 있어. 화분들의 색깔은 회색 아니면 검정색으로 그 부부의 인테리어 취향을 알게 해 주지. 거실 한가운데에는 작은 물의 정원이 있어서 길게 수로가 나 있어. 물 흐르는 소리가 고요한 집안을 휘감지. 그때 남편이 나와.


처음에 말했던 쌍둥이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부인의 허리를 감싸안고 부인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우리 섹스를 하자, 고 졸라. 부인은 안방의 그 여인이 생각나고 남편에게도 마마에 대해 말하려 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부인은 깜짝 놀라. 부인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예고 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거든.


쌍둥이들의 말은 다시 핑퐁처럼 이어졌다.


부인이 화들짝 놀라 남편을 바라보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인 뒤 문을 열러 나가. 밖은 비가 뚝뚝 떨어지는데 트렌치코트를 입은 형사인지 탐정인지 모를 사람이 들어와 집안을 살펴보고 싶다고 해. 남편이 그건 싫다고 하며 형사를 내보내려는데 형사와 부인의 눈이 마주쳐. 형사가 코트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려는 찰나, 부인이 장식대 위에 놓여 있던 권총을 꺼내 형사에게 발사해.


형사의 오른쪽 목에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겨. 그러나 그 구멍은 마치 불주사와도 같아서 그는 천천히 피를 흘리게 될 거야. 빗방울이 느리게 떨어져. 남편은 형사의 귀에 속삭여. 천천히 걸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형사는 그렇게 해. 부인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아연실색하게 되고 남편의 손을 잡고 무작정 밖으로 뛰어. 부인과 남편은 천천히 떨어지는 비를 맞아.


나는 도대체 이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이며 끝은 무엇일지 몰라 그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럼 마마는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고 형사 역시 그렇다는 건가. 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대체 뭐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에서 나오는 말들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결국엔 기묘한 이야기가 되었다. 듣고 있어도 어떤 스토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끝까지 듣는다 해도 그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나, 그럼에도 계속 듣고 싶었다.


뛰고 있는 그들 옆으로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스르륵 창문이 열리고 이어 문이 열려. 역시 금발머리를 한 지적인 외모의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여. 남편이 부인에게 그 차를 타자는 듯 남편 먼저 그 차에 오르는데 부인은 그 순간 남편에 대한 의심이 일고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 그렇게 계속 달려.


나는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후벼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그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다. 엄마가 매번 몇십 년 전 과거를 두레박으로 긷듯 끌어올리는 걸 보면 그도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편으론 얼마나 쌓인 게 많았으면 저렇게 화수분처럼 끝도 없이 과거지사가 흘러나오나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엄마가 남편에게 갖는 가장 큰 불만은 뭐든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집 남편들은 장도 부인과 함께 보고 놀러도 함께 가고 심지어 계모임에도 부부 동반으로 간다는데 우리 집은 어찌 된 게 늘 따로따로냐고 엄마는 말했는데, 그때에는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정말이지 서운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남편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엄마는 그게 힘들었다. 남편이라고 있으면 의지가 되어야 하는데 대인기피증과도 비슷한 남편의 성격은 엄마가 뭐든 알아서 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이사할 집도 혼자 알아보고 계약서도 혼자 쓰고 남편의 떼인 월급도 혼자 받아냈다. 수줍음 많고 소녀 같던 엄마가 세월이 흐르면서 뭐든 알아서 하게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그는 자신도 이렇게 될까 두려웠다. 엄마처럼은 살기 싫었는데 애인을 보면 엄마처럼 살게 될 것 같았다. 숨이 막혔다. 무서웠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아빠 같은 남자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아빠랑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했는데 애인은 이름마저 아빠와 비슷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는 아빠 같은 남자는 만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실패를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대개의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하지 않을까. 그 역시 그러했다. 때때로 그는 애인들에게 아빠의 못마땅한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애인들 중 누군가 그의 엄마를 힘들게 했던 아빠 같은 모습을 모이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내가 싫어하는 우리 아빠의 모습과 판박이야. 아빠 역시 그에게 자신 같은 남자는 만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코미디고 난센스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엄마. 그는 갑자기 소리 내어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이 다 뭐고 결혼이 다 무엇일까. 그의 애인 말대로 그가 너무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 감정의 일희일비가 잦은 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벌써 30여 년째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엄마가 그저 대단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들 부모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잘된 결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 밤에 자다 깨 보니 거실에서 슬립만 입은 채 아빠와 꼭 끌어안고 자던 엄마의 모습을 보았던 생각이 났다. 그때 엄마 아빠는 각방을 썼는데 둘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봐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더랬다. 그리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 당황스러움은 어쩐지 야한 느낌을 주는 그 모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내 부모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 아빠는 그때 그만큼 당황하지 않았던 듯싶었다. 어쩌면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꿈에서 그가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곧잘 그러하지만 그는 꿈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늘 그 경계에 서 있던 삶이었다. 그래서 그는 애인의 말대로 낭만주의자가 된 걸까.

엄마. 부르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렇게 울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그는 엄마를 부르는 일을 그만뒀다. 그러고 보면 그는 애인과의 섹스 중에도 엄마를 부르곤 했다. 놀랄 만큼 강한 자극이 오면 저도 모르게 엄마를 불렀다. 전 애인들 중 몇몇은 그걸 굉장히 재미있어 했다. 난 엄마가 아니라 오빠야, 라거나 왜 이렇게 엄마를 찾아 엄마도 없는 곳에서, 라고 말하며 낄낄거렸다. 약을 찾는 엄마의 엉금엉금한 무릎걸음이 떠올랐다. 어떤 병에 걸리면 낫기 위해 그 병에 해당하는 십삼 알 분의 삶을 삼켜야 한다. 삼켜내야 한다. 그마저도 한 병의 무게다. 병들의 무게는 엄청나서 엄마는 도저히 다시 설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지나간 삶의 스산함은, 늘 가장 최악인 것처럼 보였던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보다 낫다는 것이다. 매일 최악의 순간을 감내하지만 지나고 나면 최고의 순간들. 역설의 무게에 질식할 것 같은 순간, 쌀이 눈처럼 떨어졌다. 누런 쌀을 걷어내니 흰쌀들이 나왔다. 어떤 날은 잠에 들자마자 깨어났고 밤이 되자마자 아침이 됐고 집에 오자마자 출근을 했다. 빛이 아롱지며 손톱 위에 떨어졌다. 누군가는 그를 홀리려는 듯 묘한 눈빛을 보냈고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책을 읽었다. 인기척이 들렸고 그는 누군가를 보호했고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고 이 십팔새끼야 하고 쌍욕을 했다. 사람들이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았다.

다음 날 그는 집에서 나와 바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차마다 낙엽이 이불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바닥마다 카펫처럼 낙엽이 깔려 있었다. 그는 붕 들뜬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사뿐하게 내디뎠다. 십오분 간 천천히 걷다 그는 버스에 올랐다. 늘 친절한 마을버스 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출근길의 버스는 늘 그렇지만 이날은 이상하게 미어터질 듯 손님이 많았다. 기사는 정류장마다 서 있는 손님들을 태웠다. 세 번째 정류장에 섰을 때 사내와 여인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사님, 이제 그만 좀 태웁시다. 자리 없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은 기사가 들어줬으면 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벌써 몇 시야. 아휴 언제 삼십오분이 됐어, 삼십오분이. 이게 무슨 일이야. 기사님은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눈을 내리깔고 운전을 했다. 다음 정류장에서도, 그다음 정류장에서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차를 타지 못했다. 그는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사람들의 패딩 사이에 파묻히면서 기사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의 입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그러다 문득 그는 무서워졌다. 회사를 향해 걸으며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기온이 한없이 낮춰져 있었다. 가을이지만 겨울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이 떨렸다.



그때 쌍둥이 동생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동생들의 음성이 들렸다. 혼곤한 와중에 엄마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약 타이머를 맞춰놓지 않았던가. 선풍기가 저 홀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


매거진의 이전글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