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배는 오늘도 저기압이다. 며칠 전에 지독한 반곱슬을 생머리로 펴는 매직 케어를 받았는데 그만 원래대로 돌아가버린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헤어숍에 찾아가 컴플레인을 걸고 무료로 다시 시술을 받았지만 매직 케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머리를 감지 않고 출근했다. 출근하려는데 엄마가 내 머리통을 잡고 냄새를 맡더라고. 거기서는 냄새 안 나지? 머리를 안 감았으면 안 감은 거지 나한테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곽선배의 정수리 냄새를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 오늘 하루의 업무 플랜을 짜는 척하며 코를 틀어막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비위가 약하다.
곽선배의 울증이 극에 달한 것은 나선배가 출근한 직후부터였다. 아무래도 지각을 한 나선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녀는 잠자코 있다 한마디를 했다. 근데 오늘 행사, 업무 지원 차 오는 거야? 네? 나선배가 벌벌 떨리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아 누르며 조용히 대답했다. 어제도 과음을 했나보다. 클럽에서 원나잇을 즐긴 걸까. 어제와 옷이 똑같다. 오늘도 피곤하게 생겼다. 곽선배가 분명 나선배에 대한 뒷담화를 시작할 테니.
나선배는 술을 마시고 온 다음 날 오전에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다. 워낙 솔직한 스타일이라 숙취 때문에 괴로워서 일이 안 된다고 말해버린다. 곽선배는 그 꼴을 못 본다. 희정 씨, 저거 어떻게 생각해? 이직한 지 얼마 안 돼 곽선배가 메신저로 슬쩍 나선배에 대한 얘기를 흘릴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아직 텃세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텃세의 주범은 다름 아닌 곽선배였다. 여긴 회사잖아, 희정 씨. 근데 지금 저거 하는 짓 좀 보라고. 진짜 윗사람도 뭣도 없다, 그치? 회식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와서 일 안 된다고 엎드려 있는 게 할 짓이니? 곽선배의 타박도, 나선배의 솔직함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곽선배는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리고는 내가 너님 때문에 기분이 매우 나빠요, 라고 얼굴에 써붙이고 다닌다. 여자들이 많은 회사가 피곤하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전 회사를 다닐 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 회사에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냥 강의 들으러 오는 거야? 그,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그럼 지금 생각해보면 되겠네. 곽선배가 궁시렁거리듯 말했다. 나선배가 옆자리에 앉은 나를 슬쩍 쳐다봤다. 도리도리,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굳,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나요? 강의를 들으러 가는 거라도 참석한 이상 업무 지원도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맞은편에 앉은 곽선배가 인상을 썼다. 내 말은, 오늘 업무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야. 오늘 자기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 많으니까 굳이 안 와도 된다고 말하는 거였어. 네? 그게 무슨… 나선배가 다시 한 번 내쪽을 쳐다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말고 내일 오라고. 곽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분위기가 안 좋다. 그야말로 분노의 타자. 선배, 내일은 토요일인데요? 나선배가 물었는데도 곽선배는 계속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응. 내일도 강의 있잖아. 내일은 곤란해요, 선배. 왜? 선약 있어요. 선약?
중국에서 저자가 오는 이번 행사는 일정은 미리 잡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업무 배분이 정확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 같았으면 3일~4일 전에 업무 배분이 이뤄졌을 텐데 웬일인지 조용했다. 하지만 우리 팀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아니었으므로 나선배와 나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주말 행사에까지 참여해야 한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우리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별 보고 출근해서 역시 별을 보고 퇴근하니까. 20일 근무에 17일 야근하는 것도 끔찍한데 주말까지 회사 일을 하라고? 그런 염천지옥이 있어선 안 된다. 그 땅에는 한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선배도, 나도 절대 취소할 수 없는 약속들이 주말에 포진해 있었다.
미리 말씀이 없으셔서 참석해야 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참여해야 된다고까진 생각 못 했어요. 주말엔 정말 선약이 있어서 곤란해요, 선배. 그래서 오늘 참석하기로 한 거고요. 하아. 나선배가 꾸역꾸역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곽선배의 한숨이 이어졌다. 늘어질 듯 빈번한 한숨 쉬기는 곽선배의 주특기다. 참 웃긴다. 그래서 주말에 참여 못한다는 거지? 나는 메신저창에 대고 나선배에게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곽선배가 나선배와 내가 네이트온으로 대화하는 걸 알게 될까봐 되도록 조용조용하게 키보드를 한 자 한 자씩 눌렀다. 주말에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되는 거예요, 도대체.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저거 일부러 저래. 진짜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데 뭐 있다니까. 담당 편집자가 가만있는데 왜 저러는 거야?
오늘 일할게요. 나선배가 쐐기를 박자 곽선배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다만 끝없는 혼잣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지도 않는 혼잣말의 끝없는 반복. 내가 곽선배에게 제일 질려 하는 부분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아침부터 곽선배의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대표가 모두에게 급작스럽게 일을 맡겼는데 그것 때문에 뾰로통해 있는 것 같았다. 희정 씨, 금요일에 행사 마치고 나한테 택배비랑 식대, 준비비 제하고 돈 준 것 맞아?
갑자기 짜증이 확 돋았다. 애초부터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는 듯한 저 말투가 그냥 너무 싫다. 네. 나는 애써 짜증을 감춘 채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역시 거짓말을 잘 못 하는지라 그래도 표가 났다. 아니, 희정 씨가 돈을 덜 줬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의심하는 게 아니라, 잔액이 안 맞아서 그래. 의심하는 게 아니라, 는 그 말이 솔직히 더 의심스러운데요?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한 말들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며 곽선배의 눈을 쳐다봤다. 어쨌든 저는 맞게 드렸어요. 혹시 이런 말 나올까봐 세 번이나 확인하고 드렸거든요. 중간에 기어이 울컥해서 말이 씹히기까지 했다.
아, 알았어. 내가 분명히 지갑에 십오만 원을 넣어놓았는데 안 맞아. 그럼 희정 씨가 마지막으로 지갑 확인했을 때는 천 원 지폐가 많이 있었던 거지? 돈이 너무 많이 있어서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어요. 나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런데 천 원짜리는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치? 참 이상하네. 곽선배는 또 계속 혼잣말을 하며 지갑을 뒤적였다. 동전이 잘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곽선배는 회사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혹시 지갑에 손을 대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니라거나 다른 지갑에 있는 돈을 가져갔다고 말했고 곽선배가 무서워 얼른 금요일의 영수증을 내놓았다. 전 같으면 일주일이 지나야 내놓을까 말까 한 영수증들이었다. 모두들 곽선배의 저기압이 두려워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코웃음이 났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예의 차갑고 딱딱한 그 표정 말이다.
쟤 보면 진짜 일 못해서 피곤할 것 같아. 나선배가 조용조용히 네이트온 대화를 걸어왔다. 그냥, 하아. 답답하네요. 왜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부터 하시는지. 슬몃슬몃, 나도 봄눈 오듯 키보드를 눌렀다. 제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게 이런 일 있으면 꼭 저런 식으로 이상하게 말을 하시니까… 응. 자기 맘 알어. 목요일에도 경상비 현금 육천 원밖에 없어서 나 저녁도 육천 원에 맞춰 먹었다니까. 그래놓고 다음 날 그 얘기 하니까 완전 짜증 폭발. 아니, 현금 인출 안 한 건 자기 잘못인데 왜 밥 먹은 내가 죄인 코스프레 해야 되냐고. 아아. 그날. 경상비 인출 안 하셔서 퀵비까지 계좌이체하셨던 날이요? 진짜 관리 좀 하시지. 그러게. 보면 진짜 노답이야, 노답.
여름이라 열어놓은 창문 바깥으로 극성맞은 애엄마의 잔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외근으로 자리를 비운 터라 사무실이 조용해서인지 바깥 소리가 더 잘 들렸다. 야, 이호연! 너는 애가 몇 살인데 아직도 신발을 제대로 못 신냐고! 저 잔소리를 계속 듣다간 암이라도 걸릴 것 같았다. 아이는 얼마나 위축될까. 시끄러워 창문을 닫고 있는데 뒤에서 곽선배가 자기도 그런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한 성깔 하거든. 지금도 나 통금 시간 있는 거 알지? 밤에 들어갔다간 진짜 난리 나. 이 나이에 엄마한테 밤늦게 들어왔다고 혼나면 얼마나 우울한데. 그러고 보니 회식이 늦어진 어느 날, 곽선배는 한동안 밖에서 누군가와 길고 긴 통화를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남자친구라도 생겼냐고 놀렸더니 지금 장난해욧! 빽 소리를 지르며 엄마랑 통화했거든요! 라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던 것 같기도.
선배, 진짜 그건 아닌데요. 원래 역사는 밤에 이뤄지는 건데요. 아, 그러니까. 나도 역사 좀 쓰고 싶다고. 우리 엄마가 도움을 안 주잖아, 도움을.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만약에 제가 선배 엄마라면 제발 외박 좀 하고 오라고 할 것 같은데요. 진짜? 희정 씨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랐어야 되는 건데.
그래도 선배 결혼은 잘하실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 보면 모태솔로들이 선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결혼 하던데… 조건 딱딱 맞춰서, 결혼 준비하면서도 싸울 일 없이 그렇게 잘하더라고요. 연애 아무리 많이 해봤자 그게 뭐 자랑이 되나요? 남자 많이 만나본 게 자랑도 아니잖아요? 결혼 잘하는 게 장땡이죠. 나는 웃으면서 그런 얘기를 잘도 했다.
어우. 자긴 어쩜 그렇게 나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냐. 우리 언니들도 다 나 같았는데 선봐서 결혼 잘하긴 했어. 네. 다들 잘 사시죠? 응, 우리 조카 보여줬었나? 네. 보여주셨어요.
나는 그놈의 조카 사진을 또 보게 될까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자리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고 예쁜 조카 사진도 한두 번이다. 예쁘지도 않은 아이라면, 더더욱 볼 생각이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막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불현듯 이 선배의 유년시절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어떻게 자랐기에 성격이 저렇게 요상한 거래. 좋았다가 싫었다가 한숨 쉬었다가 가만있는 사람한테 장난 걸었다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뭐 기상청도 아니고.
나는 파티션 사이로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던 나선배와 눈을 찡긋 맞춘 뒤, 곽선배에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선배, 오늘 저희 필자님이 저 먹으라고 딸기 케이크를 보내주셨거든요. 진짜 유명한 집에서 만든 케이크인데, 제가 여기 케이크를 몇 번 먹어본 적 있어요. 진짜 다른 집이랑은 식감부터 완전히 달라요. 지금 테라스 가서 잠시잠깐 수다수다, 어떠세요? 콜?
어머, 정말? 역시 나 생각해주는 건 희정 씨밖에 없다니까. 그러자, 그러자.
딸기 케이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유년기에 형성된 자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엄마의 통금을 위반한 다음 날, 잔소리 폭격에 대한 시를 쓰고 그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 이상한 나라의 곽선배는 대체 어떤 유년기를 보낸 걸까.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암을 유발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이라면….
내가 어렸을 때 되게 뚱뚱했다? 세상에. 전혀 상상 안 되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마르셨잖아요. 곽선배는 정말 깡마른 타입이었다. 키가 큰데 마르기까지 해서 사람이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느껴졌다. 얼굴형이 역삼각형이라 턱이 특히 뾰족한데, 우울해하거나 화가 나 있을 때는 그 턱이 더욱 길고 삐주룩해보였다.
진짜야. 나 되게 뚱뚱했어. 그때 애들한테 놀림 엄청 받았지. 근데 또 웃긴 게 우리 엄마가 학교 앞에서 문구점을 했거든? 그 문구점명이 뭐였게? 글쎄요, 뭐였을까요? 돼지문구…. 돼지문구요? 왜 돼지문구라 하셨을까? 몰라. 나도 그게 의문이야. 돼지가 재물복을 실어주는 동물이라고 생각한 건지, 뭔지. 그 돼지문구 때문에 나는 돼지문구점 딸 돼지로 애들한테 맨날 놀림 받고. 울고. 학교에서 자존감 완전 낮았지, 뭐. 그때 날 놀리던 남자애들 때문에 내가 이날 이때까지 혼자인 걸까? 남자 한 명 못 사귀어보고? 희정 씨, 어떻게 생각해? 자기가 객관적으로 한 번 날 살펴봐봐. 자기 은근 직설 잘 날리잖아. 곽선배가 풀이 죽은 얼굴로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컵을 양손으로 쥐었다.
나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목구멍으로 꼴깍 넘긴 채 겨우 대답했다. 음. 제가 선배 연애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잘. 근데 선배가 그랬잖아요. 선배 스스로가 자꾸 철벽을 쳐서 남자가 없는 거라고. 아, 그래. 나 그렇잖아. 희정 씨, 이거 딸기 하나 남은 거 내가 먹어도 돼? 진짜 저 선배는 꼭 저런다. 냉면 위에 올려진 남의 삶은 계란도 탐낼 사람이야, 저 사람은. 나는 사라진 맷돌 손잡이를 찾으면서도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많이 드세요.
나 진짜 식탐이 이렇게 많아서 어떡하냐. 희정 씨 지금 속으로 나 욕하고 있는 거 아냐? 많이 드셔요. 저는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서 희정 씨가 이렇게 몸매가 탄탄하구나? 보면 자기 진짜 군것질 안 하더라? 나는 하루종일 뭔가를 먹고 있는데 말야. 에이, 그래도 난 먹을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니까. 사람이 싫어지면 먹는 것도 싫어진다더니, 어쩜 딸기를 먹는 저 모습까지도 저렇게 얄미울까. 나는 연신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희정 씨, 나는 진짜 왜 철벽녀일까? 유부남은 편한데 결혼 안 한 남자들은 그렇게 불편해. 그러니까 남자들이 다가와도 내가 막 벽을 치는 거야. 정말 다가오는 남자가 있긴 있었던 거예요?
안 봤으니 아나. 저 선배는 저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남자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잘나서 남자들이 못 다가온다니, 어쩜 저런 생각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 같으면 얼굴이 뜨거워서라도 저런 말은 못할 것 같은데.
갑자기 어느 날, 저녁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나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희정 씨, 희정 씨가 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곽선배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아아. 저 사람이 저래서 모태솔로구나. 그전에는 모태솔로에 대해서 이렇다 한 생각은 없었는데, 곽선배 보면 모솔이 괜히 모솔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 희정 씨가 한 번 생각해 봐. 저렇게 피곤한 타입인데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어? 그리고 남자가 없으니까 우리가 무슨 남자친구인 것처럼 행동하잖아, 나이 서른 넘어서. 나는 그것도 아주, 너무 싫어. 나는 주말에도 곽선배랑 연락한다고. 관심 달라, 사랑 달라. 진짜 미쳐버리겠다. 자기가 무슨 공대 아름이인 줄 안다니까.
선배, 그러니까 너무 다 받아주지 마세요. 저는 주말에 선배가 연락하셔도 안 받을 거 아시죠?
어머, 희정 씨. 알겠어. 남자친구 없어서 나한테 치대는 곽선배보다 연락하지 말라는 시크한 우리 후배님이 나는 훨씬 좋다. 그래, 우리는 절대 주말에 연락하지 말자. 평일에만 잘 지내자, 알겠지?
근데 선배, 사실 저도 곽선배 보면, 제 바닥을 보는 것 같아서 제가 너무 싫어져요. 연애라는 게 뭐예요. 나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얻어보기도 하고 잃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거잖아요. 인간관계가 뭐든 기브 앤드 테이크로 이뤄지는 것도 아닌데 곽선배는 하나를 주면 둘, 셋을 받아가려고 하고. 저도 곽선배 보면서 저 선배가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더 좁게는 남자가 없어서 저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제 자신에게 또 놀라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편협하게 볼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런 걸로 사람을 판단할 수가 있어, 하고요. 그러면서 또 자괴감에 빠지고. 그냥 업무적인 것만 신경 써도 머리가 너무 지끈거리는데 곽선배 챙기느라고 제 혼이 쏙 달아날 것 같아요.
희정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 말 듣고 있어? 나 이런 생각을 해, 희정 씨. 아까 희정 씨가 나한테 결혼 잘할 것 같다고 했는데 진짜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좀 들어. 우리 첫째 언니는 공부를 진짜 잘했거든. 우리 집의 자랑이었어. 학교에서도 전교 1등만 했고, 못 해도 10등 밖으로 벗어난 적 없었거든. 우리 둘째 언니는 성격이 너무 좋아. 늘 우리 집이 둘째 언니 친구들로 북적거렸거든. 명절에 친척집 가면 어른들이 둘째 언니 칭찬을 그렇게 했어. 어쩜 성격이 이렇게 좋냐고. 저러니 사람이 모여들지, 인복은 타고났다, 그랬어. 그런데 나는, 나는 아니었거든. 나는 공부도 못했고 주위에 친구들이 많지도 않았어. 학교 다닐 땐 따돌림도 당했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날 미워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던 것 같아.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무서운 언니들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와서 나 막 때리고 돈도 뺏어가고 그랬어. 우리 언니들은 언니들이라 결혼을 잘한 게 아닐까. 나는 못 그러지 않을까. 이런 나라서 엄마가 더 크게 혼내는 것 같기도 하고.
설마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데.
희정 씨, 진짜 순진하다. 그 말을 믿어? 당연히 어떤 손가락은 더 아프고 어떤 손가락은 덜 아파. 난 우리 부모님한테 뭘까 생각해. 더 아픈 손가락일지, 덜 아픈 손가락일지. 아니면 통증을 못 느끼는 손가락인지. 나 어릴 때 가출도 막 하고 그랬는데, 자기는 안 그랬지?
네. 저는. 한 번도….
자긴 그럴 것 같더라. 좋은 집안에서 사랑 받고 자란 게 막 느껴져. 성격도 밝고 둥글둥글하고. 지금도 봐. 평생 누구한테 따돌림 같은 거 당해본 적 없을 것 같은 해맑은 얼굴로 날 쳐다보잖아? 자기도 고민이라는 게 있어? 걱정이라는 게 있어?
아이고, 선배. 저는요. 세상에 안 아픈 사람 없다고 생각해요. 몰라서 그렇지 다 아파요. 저마다 자기 상처가 제일 크고, 가장 아픈 줄 알아요. 그렇게 모두들 아프지 않을까요? 제가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저도 고민 있고, 걱정도 있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버거워도 하고 그래요. 그냥 견디면서 사는 거죠, 다들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들 자기 예뻐하나 보네. 난 자기가 부럽다. 어리고, 성격 좋고, 무한 긍정 마인드에, 일도 잘하니 회사에서 다들 인정해주고. 존재감이 있으니까 어디서든 눈에 띄잖아. 반면에 날 봐. 우리 회사 사람들, 자기 빼고 다 나 무시하는 거 알지?
선배, 그건 아녀요. 오해하고 계신 거예요.
오해? 자기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피해의식 있다고 생각해? 그런 거야?
곽선배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배, 왜 우세요, 갑자기. 뭔가 제가 되게 죄송…
곽선배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화장실로 가버렸다. 나는 아무도 없는 테라스에서 미처 다 끝내지 못한 하네요, 라는 동사를 한숨처럼 내뱉었다.
다른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곽선배는 에디터가 되고 싶어 이 회사에 들어왔다고 한다. 실제로 경리가 에디터가 되는 실례도 이 회사에는 있었다고 한다. 경영지원팀 일을 잘하면 에디터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3년을 믿었는데, 이젠 아닌 것 같아. 최근 들어 곽선배는 종종 그런 말을 입에 담곤 했다.
하지만 곽선배가 모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대표가 곽선배의 보직을 옮겨주려 하면 각 팀의 팀장들이 기함을 하고 달려들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고 자기 주장 강하며 본인 딴에는 배려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누구 하나 그 배려를 달가워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곽선배를 품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 점에 대해 누군가가 에둘러 설명하려 하면 곽선배는 그전까지 아무리 기분이 좋았더라도 이내 울상이 되어 사라지곤 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윗분들은 하나같이 곽선배는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니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라고 했다. 후배인 내가 왜 선배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되도록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계속 돌아오는 마감, 쌓여만 가는 잡무 속에서 곽선배까지 챙기기에는 나는 너무 보잘것없는 한 인간이었다. 나 역시 주는 만큼 받기를 원했고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은 그만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 또한 곽선배와 똑같은 인간은 아닐까, 아닌 척했지만 다른 이들처럼 곽선배를 무시하고 속으로 비웃기까지 한 것은 아닐까.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퇴근길에서 나는 어김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곽선배의 퇴사가 결정된 것은 그로부터 아홉 달 뒤였다. 마치 이별선언으로 남자친구의 사랑을 확인하는 여자처럼 그만둘 거야, 나 여기 아니라도 갈 데 많아, 라는 말을 내뱉는 것은 곽선배의 습관이었으므로 그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 다들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만두시는 거예요? 그렇게 그만두실 듯 그만두실 듯하면서도 안 그만두신 분인데… 진짜로 그만두실 줄은 몰랐어요.
곽선배의 퇴사 의사를 가장 먼저 들었다는 상사는 잠시 뜸을 들이며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아무래도 모멸감을 느낀 모양이야, 라고 말했다.
선배들은 나를 불러 곽선배와 따로 점심이라도 먹으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했다. 많이 바쁘겠지만 이럴 때 후배가 선배를 챙겨주면 회사 분위기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애초에 타인에 무심한 나는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막상 이제 더 이상 회사에서 곽선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기에 곽선배와의 점심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곽선배 때문에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녀가 속까지 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그녀와 나의 관계는 애증 어린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퇴사 얘기가 나돌기 전까지 곽선배와 나의 사이는 전 같지 않았다. 숱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그물처럼 촘촘해졌고 그 그물은 내 마음에서 동요를 일으키며 퍼덕였다. 나는 곽선배를 챙기지 않게 되었다. 곽선배를 명백히 업무적으로만 대하는, 진정한 마음도, 가식도 없는 관계는,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적당한 거리감이라는 기분 좋은 아우라를 뿜어냈고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역시 적절한 간격이 있어야 되는 법이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곽선배와 점심을 먹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회사 내 다른 분들과도 점심 약속이 있다며 그녀가 바쁜 척을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막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밥을 얻어먹기로 했다며 콧노래를 불렀는데, 떠나는 마당에도 그 모습이 유난스러워 보였다. 신입사원에게 밥을 사는 건 곽선배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역시 멋모르고 그런 곽선배에게 하릴없이 커피를 사주었던, 내키지 않던 입사 초기의 나날들이 떠올라 그저 신입사원이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희정 씨, 나, 전혀 다른 일, 하게 됐어요. 어렵사리 점심을 먹던 날, 웬일인지 그녀는 존댓말을 섞어가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루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좀 아쉬워. 나 다른 데서는 진짜 많이 이루고 스스로 뿌듯해하면서 나왔거든요? 그러면서 곽선배는 회사에서 곧 자신의 송별회를 해주기로 했다며 그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퇴사 소식이 전해지고 갑자기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곽선배는, 어쩐지 그전보다 더 기분이 좋아보였고, 들떠보였다.
송별회 당일, 나와 나선배는 마감 때문에 뒤늦게 그 자리에 참석했다. 예상치 못한 어색한 분위기가 그곳에 고여 있어 나선배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내심 이 기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한 건지 궁금했지만 누군가에게 따로 묻지는 않았다. 마감을 미처 다 하지 못한 상태라 내심 불안했고, 그래서인지 그 자리에서의 나는 열정이 없었다. 지금까지 회사 송별회는 곧잘 점심시간에 이루어지곤 했는데 오늘은 왜 저녁인가, 에 대해서만 나는 끊임없이 골몰했다. 제발 모처럼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날에만이라도 나만의 저녁을 온전히 누리고 싶었다. 곽선배 때문에 그 또한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황폐하게 했다. 나는 안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묵묵히 맥주잔만 기울였다.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시간만이라도 내 것이 되길 바랐다.
나선배는 곽선배의 후임으로 인수인계를 받고 있는 신입사원과의 대화에 온 힘을 기울이는 듯했다. 본디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있는 나선배는 그동안 마감으로 바빠 신입사원을 잘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집은 어디야? 고향은 어디야? 어디서 살아? 누구랑 살아? 그전엔 뭐했어? 우리 테이블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가고 있을 때 다른 테이블에선 출판계 비하인드 스토리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어느덧 한껏 불콰해져 기분까지 좋아진 대표가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랫자락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최백호의 보고 싶은 얼굴쯤 됐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것은 나진기의 무, 라는 노래였고 아픈상처 건드리지마 지난일은 묻지를 말어 말을 하면 가슴만 아픈 추억뿐이야 가라가라 가라가라, 라는 대목에서 언제부터인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곽선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그대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도 곽선배가 나간 것을 모르는 듯 그녀를 찾지 않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의 대화 속에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오직 나, 나만이 그녀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고 좌불안석이 된 나는 어느새 마시던 맥주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지쳤고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었다. 희정 씨, 뭐 기분 안 좋은 일 생겼어? 옆자리에 앉은 나선배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소곤소곤 곽선배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 진짜 어디 갔니? 사라진 지 되게 오래된 것 같은데? 어쩜 아무도 안 찾냐. 희정 씨, 메시지 하나 보내봐봐. 어디냐고, 왜 안 오냐고. 나는 그 자리에서 곽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윽고 그녀가 여전히 벌개진 얼굴로 술집 문을 열었을 때, 좌중의 시선은 그제야 곽선배에게 쏠렸다.
아이, 어디 갔다 이제 왔어. 다들 기다렸잖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얘기를 입에 올렸을 때 곽선배는 씩씩거리며 빽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아무도 나 기다린 적 없잖아. 이게 무슨 송별회야? 다들 나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잖아. 곽선배는 흐르는 눈물을 이 악물고 참으며 테이블 중앙에 있던 자기 자리의 가방을 챙겨 나갔다. 그 뒤로 술집 사이에 흐르던 몇 분간의 정적.
잠깐의 정적 끝에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아무 이야기를 꺼냈고 그날 우리는 2차, 3차를 부르며 자리를 이동해서 술을 마셨다.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의 목적은 송별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마음 놓고 술을 마시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곽선배가 떠나고 회사는 그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를 찾은 듯했다. 선배들은 그동안 곽선배가 회사 분위기를 흐리는 미꾸라지 같은 존재였나 보다, 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나 역시 회사라는 곳이 다닐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가 다녀야 했던 회사라는 곳은 이런 곳이었구나, 그런데 그동안 그걸 누리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곽선배의 뒤를 이어 새로 온 경리는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아 허둥댔고 그래서 그녀를 많이 챙겨주어야 했고 결국 일하는 시간은 두 배 이상 더 걸렸지만, 확실히 정신적인 면에서 피곤하지 않아서인지 곽선배보다 일하기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곽선배의 심기를 확인하기 위해 아침마다 그녀의 블로그를 뒤적이지 않아도 되고, 점심 때마다 그녀의 끼니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가 신경 쓰던 세세한 일들에서 벗어나게 되니 속이 탁 트이는 듯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때때로 곽선배를 떠올리는 나날들이 있었다. 그것은 결코 따뜻한 온기가 배어 있는 추억도, 그렇다고 날카로운 입김이 서린 고통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시간들이 흘러가는 속에서 곽선배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대전화 속 오랜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곽선배를 찍은 사진을 보게 됐을 때의 불현듯한 흠칫함,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할 일 없이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스크롤하다 곽선배의 이름을 보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거졸함이 그래, 그런 선배가 있었지,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누군가의 고독과 누군가의 아픔을 껴안기엔 너무나도 모자랐던 나의 철없음을 반성하면서,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되기엔 너무나 옹졸했던 내 자신의 품 좁음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과거 속에 존재하는 곽선배를 다시금 끄집어내었다.
순간의 진심과 영속의 가식. 영악하게도 아닌 척을 하면서 은근히 사람들을 조종하던 나는, 그때 필시 망가져 있었다. 그렇게도 누추했던 내 자신을 알면서도 어찌할 바 모르고 동동거렸다는 사실이 나 자신을 끝없는 자기혐오의 세계로 몰고 가게 만들었다.
곽선배는 잘 지내고 있을까.
선배, 어디에 계세요? 안 오세요?
여전히 숫자 ‘1’이 남아 있는 일대일 채팅방 저 너머의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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