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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an 25. 2019

오늘자 편집의 기쁨

- 「예술적 몸짓으로서의 에세이」를 편집하다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 현상학 시론(Gesten: Versuch einer Phanomenologie)』(1991)을 예술에 관한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 플루서는 글쓰기의 몸짓, 그리기의 몸짓, 사진 및 영화 촬영의 몸짓, 음악을 듣는 몸짓 등, 예술적 창작이나 감상과 관련된 몇몇 몸짓들을 검토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상당 부분이 사랑이나 파괴처럼 정념과 관련된 몸짓에서부터 매우 일상적인 몸짓(식물 재배, 면도, 전화 통화, 파이프 담배 피우기 등)에 대한 숙고에 할애되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몸짓들』을 하나의 ‘예술(적) 서적’으로 독해한다는 것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즉 몸짓들의 유형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로지르는 플루서의 방법론 자체의 특수성에 주목할 때만 가능해진다.


의무론이 우위에 있던 시대(고대와 중세)와 존재론이 우위에 있던 시대(근대)를 지나 오늘날엔 아예 의무론과 존재론에 관련된 물음을 폐지하는 방법론의 승리로 특징 지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왜냐하면 세계에 대한 인식 및 변혁의 실천과 관련된 일(노동: Werk)이 ‘왜?’와 ‘무엇을 위해?’라는 물음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저 ‘어떻게?’라는 물음의 주변을 맴도는 장치의 기능(함수: Funktion)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론이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론과 의무론 없는 방법론이란 없기 때문이다.


『몸짓들』 , 빌렘 플루서 지음, 안규철 옮김, 김남시 감수, 워크룸프레스, 2011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연재 '어메이징 예술책장'이다(<기획회의> 481호, 2월 5일 발행 예정). 이번에 인용한 문장들은 3회차 유운성 영화평론가님의 글 「예술적 몸짓으로서의 에세이」 중 일부다. 이 글을 읽은 누구라도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을 읽고 싶어 못 견디리란 생각이 든다. 정밀하고 아름다운 원고다. 이런 글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새삼 이 일이 너무 좋다. 오늘자 편집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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