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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an 13. 2019

"천천한 생활"을 꿈꾸며


나는 속도와 완결성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껏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것이 나를 여기에 있게 해주었을 테지만, 저지른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태도를 심어주기도 했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은 일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여러 개의 일들을 수행해가면서 몸은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잘했다는 칭찬과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심신의 건강까지 책임지지는 못한다.
“잘했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맡은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더 잘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매번 실수가 발견되었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나 “이건 실수도 아니야”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쉬 내려가지 않았다.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에 대해 자책하는 시간은 길고도 짙었다. 언제인가부터 밤은 늘 후회하는 시간이었다.
속도와 완결성의 끝을 생각한다. 속도의 끝에는 머무름이 있을 것이다. 완벽함의 끝에는 여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무르고 비우는 일은, 다름 아닌 천천함에서 비롯한다.


출처 오은, 「천천한 생활」, [직설],  <경향신문>  http://m.khan.co.kr/amp/view.html?art_id=201808272030005&sec_id=990100&art_id=201808272030005&__twitter_impression=true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실수를 못 견뎌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맡은 편집 일이란 게 잘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못하면 그런 나의 존재가 드러나고야 마는 일이라 더 그렇다.필자의 글을 예쁘게 편집해 누가 봐도 멋지게 출간했을 때, 나의 만족도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나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필자에게도 누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면 며칠 동안 앓게 된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마감은 닥쳤는데 여러 사정상 데이터를 넘기는 일은 차일피일 늦춰졌고 발행일이 나의 목끝을 조르니 그냥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분명 세심하게 더 정성을 쏟지 못한 내 탓이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웃기는 건, 정작 필자님은 만족하신다는데 나는 만족을 못해 몇 날 며칠 우울해하고 끙끙 앓았단 거다.


모든 일에 여유가 필요하듯 사람의 마음에도 그러하다


세차게 앓고 다시 한번 그 글을 마주하니 처음보다는 불만족스럽지 않았다.  모든 일에 여유가 필요하듯 사람의 마음에도 그러하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내가 일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말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엔 그 말을 잊고 산 것 아닌가 싶다. 문득 인상 깊게 읽었던 오은 시인의 칼럼이 생각났다. 「천천한 생활」. 오늘은 나도 오은 시인처럼 "천천한 생활"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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