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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Oct 17. 2018

나 혼자 보고 싶은 글들

- 즐·칼·소(즐겨보는 작가들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요즘의 <채널예스>는 대단하다. 무언가 읽고 싶은데 그게 긴 글이 아닐 때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간질이고 서걱이는 생각들을 잠재워줄 글들이, 여기에 있다.


1.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

http://ch.yes24.com/Article/List/2732

박연준 시인의 글들을 좋아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고 싶은 글들이다. 깊은 사유가 배어 있는 시인의 칼럼을 읽으며 오늘의 나를, 나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한 사람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맑음, 정의, 선의, 동정, 바름도 있지만 욕망, 악의, 질투, 폭력성, 치졸함, 비겁함, 두려움도 ‘같이’ 있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가 누구인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지 않기」 중에서


2. 이병률,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니

http://ch.yes24.com/Article/List/2746

이병률 시인은 예민하다. 그냥 지나치고 넘어갈 법한 일상의 순간들도 날카롭게 포착해 섬세하게 문장화한다. 그러면서도 겸손하다. 그의 글 속에서 매일매일의 일상은 소설이 되고 우리네 삶이 저마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음이 급속히 나빠지지 않도록」을 추천한다.


“아니, 이 책이 어떤 책인데… 책이 다 젖었잖아요.”
“아, 미안합니다. 제가 모르고 그만…”
“조심하셨어야죠. 오늘 문학상 받은 수상작이 실린 책이잖아요.”
내가 잡아 든 책을 그녀가 다시 잡아채더니 자신의 옷소매로 한번 닦은 뒤, 받으려고 내민 내 손을 무시하고 내 옆 자리에 던지듯 놓고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마음이 급속히 나빠졌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날이 되어서야 작가의 아내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저러려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하고 옷도 차려입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니, 이 책이 어떤 책인 줄도 알고 당신 남편이 대단한 것도 알고 상금이 많은 것도 알겠는데, 난 여기 올 시간이 안 되는데도 애써 축하해 주려고 왔어. 그러니까 나는 노력 중인 거라고. 책에 뭐가 묻었든 그 책은 내 책이잖아. 당신 남편이 상을 받은 것이, 이렇게 당신 남편보다 못 쓰는 나 같은 작가가 있어서 나 대신 남편이 상을 받기도 한 것이니 그렇게 당당하게 나를 꾸짖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따위의 구린 감정을 참느라, 그럼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느라 고된 자리였다.
- 「마음이 급속히 나빠지지 않도록」 중에서


3. 이슬아의 매일 뭐라도

http://ch.yes24.com/Article/List/2748

이슬아 작가의 글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친근하다. 마치 친구의 일기를 엿보듯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 켠이 귀여움으로 차 오르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 그는 성실하다. 그래서 그의 글을 자꾸 찾게 된다.


두려움 때문에 한 문장도 나아가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위에서 말했던 애니메이션을 본다.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귀울이면>  이다. 이 이야기에는 아무도 안 시켰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중학생 여자애가 나온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발적으로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는 이들. 남의 책을 참고해가며 자기 문장을 쌓아가는 이들. 도대체 어째서일까. 잘 설명 못하겠는데 나 역시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더 많은 책을 만나게 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주인공은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문장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런 가사다.
외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자고 꿈을 꾸었어
(ひとりぼっち おそれずに いきようと ゆめ みてた)
쓸쓸함을 억누르고 강한 자신을 지켜나가자
(さみしさ おしこめて つよい じぶんを まもっていこ)
주인공의 노래가 너무 서툴고도 맑아서 난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웃는다. 그런데 웃는 동안 왜 마음이 조금 아픈 것인가. 그녀와 내가 비슷한 약함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외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자고 다짐하는구나. 이 사람도 글을 쓰면서 자신을 지켜나가는구나. 그녀의 모습을 몇 번이나 다시 보면서 나는 글쓰기가 나를 해치는 일보다는 살리는 일에 더 가깝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러고는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빈약한 이야기라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으면서 쓰기 시작한다. 계속 쓰면서 나아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이야기가 빈약한 날의 글쓰기」 중에서


4. 김현의 더 멀리

http://ch.yes24.com/Article/List/2747


김현 시인의 글은 잔잔하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때로는 뭉클함보다 잔잔함이 좋다. 우리들 삶은 뭉클한 순간보다 더 많은 잔잔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기에. 그의 글이 소중한 이유다.


이모가 꿈에 보이면 엄마에게 전화해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모 얼굴이 보였노라 말하지 못하고 안부를 물었다. 날이 선선해지니 살겠다며 가을 된장을 담아 보내겠노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지난밤 엄마의 꿈자리도 미지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겹쳐 들었다. 이모가 좋아했던 ‘언니의 꽃게 된장찌개’는 지금도 여러 자식과 친지들의 심금을 울리는 맛인데….
- 「생각하면 할수록 가을이 됩니다」 중에서



커버 이미지는 이슬아 작가의 <채널예스> 연재 일러스트(손은경)에서 따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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