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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an 28. 2019

영감은 발견하는 것이다

- 마감 중 만난 문장들

나무에서 삶을 배워야 한다. 나무는 비겁하지도 않고 제 욕심만 챙기지도 않는다. 나무는 꾸준하며 서로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공감으로 서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뿌리와 잎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자랍니다. 한쪽은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고, 한쪽은 빛을 향해 뻗어 갑니다. 그렇지만 둘 다 자기 재능과 소임에 충실합니다. 깊은 곳에 있는 물을 찾아 나서는 뿌리, 빛에 열려 있는 잎!”


일방적인 것은 결국 획일적인 것이고 결국 폭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때로는 내버려두는 게 좋다. 예술에서는 내버려두는 일과 의도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억지로 의도하지도 않고 임의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두 가지 미덕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결실을 만들어낸다. 내버려두는 일이 빗나가면 계획 없는 행동이 되고, 형상화하는 일이 빗나가면 강요가 된다. 그 균형은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발현된다. 긴장은 대립적 구조에서 생긴다.


위대한 바이올린 장인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을 제작할 때 익숙한 패턴과 시각적 변화를 보여주는 미학적 유희를 적용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는 늘 그것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다, 영감! 영감이 없는 삶은 얼마나 지루고 따분하며 비창조적인가. 아무리 많은 지식이 쌓여도 자신의 영감으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그저 남의 지식을 적립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예술은 말할 것도 없이 영감이 없는 정치, 경제, 사회, 철학은 무료하고 타성적일 뿐이다. 영감은 양념 같은 게 아니라 섬광 같은 것이다. 아무리 땔감이 많아도 불을 붙이지 못하면 쓸모없다.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것 또한 영감이다. 영감은 짧은 순간에 발화된다. 그래서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감의 순간을 포착하고 발화시키는 것이 정수다.


바이올린 제작의 명인인 지은이가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 세 대를 동시에 손볼 일이 있었단다. 18세기 초에 제작된 그 악기들은 모두 아름답고 깊은 음이 나고 부드러운 동시에 힘 있는 울림을 가졌다고 한다. 포르테로 연주할 때도 귀가 따갑지 않고 피아노로 연주할 때 역시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 명기인데 같은 ‘필체’를 담았으면서도 그 어느 것도 서로 같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는 나무의 특성에 따라 각자의 바이올린에 개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는 자기 필체에 충실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나무의 특성을 존중했다. 대패질할 때마다 껄끄러운 소리로 나무의 결을 느끼는 일은 나무와 대화하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대상의 물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의 작법 안에 가둬놓고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명장이 될 수 없게 한다. 남들이 준 명성에 도취해서 정작 ‘나무의 소리’를 듣지 않는 바이올린 제작자를 상상해보라. 우리들에게는 그런 제작자가 너무 많고 우리 또한 그런 부류의 삶을 산다. 나무와 대화하고 보듬으며 나무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목수는 그저 나무로 도구를 만들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인에 불과하다. 각 나무의 개성과 스토리를 살려주는 것이 장인의 제작 비결이다. 나무에 자기 생각만 강요하는 어쭙잖은 제작자는 나무의 결이 지닌 요구를 알아채지 못한다. 
나는 다시 나무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묵묵히 힘든 조건에서 살아남은 것도 대견하다. 통증을 참고 잘린 뒤 지루한 건조 기간도 견디고 목재로 켜진 뒤 장인의 손에 넘어갔다. 제발 나라는 나무를 잘 읽어내고 내 말에 귀 기울이며 나를 그의 악기로 멋지게 환생시켜주면 좋겠다. 그런데 그가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깎고 도려내고 다듬는다. 내가 이 대접 받으려고 그 숱한 시간과 고통을 참았단 말인가.


『가문비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도나타 벤더스 사진, 니케북스,2014



50회차 '고전하는 나에게' 연재(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81호 2.5 발행 예정) . 이번엔 김경집 인문학자께서 내면의 울림을 깨우는 책 『가문비나무의 노래』에 대해 써 주셨다. 이 책의 "저자는 작업장에서 나무를 다듬고 깎으며 바이올린을 만드는 동안 '듣고 본' 것을 매순간 마음으로 읽어내고 글로 표현했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 쓰기에 가장 좋은 목재가 바로 가문비나무"이기에 이 책의 제목을 '가문비나무의 노래'로 붙인 듯하다. 문장마다 가문비나무로 만든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는 듯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지만, 영감에 관해 언급해주신 문단은 특히 와 닿았다. 선생 말씀처럼 " 아무리 많은 지식이 쌓여도 자신의 영감으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그저 남의 지식을 적립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오늘은 남편이 추천해준 에버노트로 영감의 리스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궁리를 했다. 영감은 삶에 윤이 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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