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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Mar 24. 2019

일개미들을 위로하는 직장 서사 웹툰들

- 「가우스전자」「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지난 호부터 웹툰 리뷰 연재를 시작하면서 벤야민의 ‘정신분산의 예술’을 이야기했다(<기획회의> 482호 「못 말리는 책덕들의 세계」 또는  https://brunch.co.kr/@edit-or-h/250 참고). 인류 역사에서 대중문화의 등장과 확산은 산업사회로의 전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 대중문화는 엘리트가 아닌 대중의 문화이자 여가문화라는 인식이 커졌다. 이러한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문화 팽창과 폭발이 일어나게 되고, 문화가 일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여기서 대중문화의 등장 시점이 ‘산업사회 이후’라는 것은 중요하다. 산업사회 이후 대중은 출퇴근시간이 있는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임금노동자들은 퇴근 이후의 여가에 즐길 거리가 필요했다. 이때 정신분산의 예술로서 대중문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중에서


등장 이후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이분법에 갇히게 된다. 엘리트 문화는 고급문화이고 대중문화는 저급한 문화라는 비판적 시각은 과거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팽배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중문화는 이제 우리 일상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여 있고 우리는 이를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웹툰에 대한 시각도 그렇다. 20대 중반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지하철에서 웹툰을 보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곤 했다. 몹시도 자기계발적인 성향이 강했던 그 사람은 지하철에서 웹툰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냐는 뜻이었다. 이제는 헤어져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지만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그에게 묻고 싶다. 아직도 웹툰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심하냐고.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중에서


과연 웹툰을 보는 사람들은 시간을 유용하게 쓰지 않고 있는 걸까? 오늘 리뷰할 「가우스전자」와 「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을 공감하며 보는 사람들은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가우스전자」의 독자들은 다국적 문어발 기업 가우스전자에서 벌어지는 웃픈 현실을 보며 ‘일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은 “취준생에게는 인생 선배의 조언으로 여겨질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독자들은 퇴근 후 이 두 웹툰을 보며 직장생활과 일에서 오는 힘듦이 치유되는 걸 맛보았다고 한다.


(좌) 「가우스전자」, 곽백수 지음, 네이버 웹툰, 2011∼, 매주 월요일 연재


사실 직장만큼 대단한 드라마도 없다. 직장이란 꿈과 열정, 판타지와 로맨스, 코미디와 함께 소리 없는 정치질이 난무하는 전쟁터다. 장르의 종횡이 무궁무진하다. 네이버 웹툰 최초로 1000화를 돌파한 작품이자 시리즈 총합 최대 화수인 「가우스전자」는 2011년 6월 6일부터 연재돼 2019년 3월 현재 시즌 4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를 모델로 한 ‘가우스전자’는 ‘애플’을 모델로 한 ‘와플’과 경쟁하는 기업이다. 「가우스전자」는 마케팅 3팀을 중심으로, 직장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을 보여준다. 여직원의 입장, 남직원의 입장, 상사의 입장, 팀원의 입장 등 매회 다른 관점으로 스토리를 풀어 나가기 때문에 그 공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엇보다 까도 까도 끊이지 않는 「가우스전자」의 에피소드는 우리네 직장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아 ‘웃프다’.


곽백수 작가는 자비로 지하철에 「가우스전자」 광고를 걸기도 했다


또한 캐릭터성이 강한 덕분에 「가우스전자」는 다른 장르의 베이스 콘텐츠가 되고 있다. 2016년, 게임 <가우스전자 M>이 출시되었다. 클리커 육성 게임으로, 웹주인공 '이상식'이 되어 사원부터 회장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아무리 자기계발을 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직급이 쉽사리 오르지 않아 “쓸데없이 현실 고증이 철저하다”는 피드백을 들었을 정도로 직장인들의 고충을 잘 표현했다. 승진을 위한 도구인 게임 아이템 ‘스펙’ ‘알바’ ‘연애’ ‘자산’은 많은 직장인들의 뼈를 때렸다. 최근에는 협상게임 <아임 더 보스>의 확장판 격으로 보드게임 <가우스전자>가 출시되었다. 지난해에는 보드게임 회사 우보가 텀블벅에서 펀딩을 해 509%의 달성률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2012년 5월부터 2013년 1월까지는 중앙북스에서 동명의 단행본이 나오기도 했다(현재 절판). 이처럼 다양하게 미디어 믹스의 가능성을 보여준 웹툰「가우스전자」는 10년이 되는 2년 후 마무리될 예정이다.


<가우스전자> 보드게임


다음 웹툰에서 매주 일요일 연재되는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은 제목 줄임말 그대로 ‘슬이인생’을 다룬 웹툰이다. ‘슬’은 이 웹툰의 작가다. ‘슬’이라는 작가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디자인 전공으로 휴학 없이 졸업했다. 그러나 취직의 길은 「신과 함께」의 ‘화탕지옥’만큼이나 험난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취직하려 애써보지만 결국에는 하릴없이 대학 교수의 도움을 받아 광고회사에 입사한다. 그러나 어렵사리 입사했다는 구직의 기쁨도 잠시, “밤새 긴장하며 일해서 엄청 피로했고” 결국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견딘 탓에 얻은 건 피로, 통증, 병뿐이었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퇴사를 당하기도 한다. 이 웹툰은 취준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현실툰’이라는 공감을 얻었는데, 거기에는 “스몰토크를 힘들어하고” “인간은 진화하고 기술도 발전해서 이제 충분히 집에서도 회의가 가능하고 업무가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지구온난화의 재해를 뚫고 인간들을 뚫고 서로 불편한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할까요. 시방 교통비도 안 줄 거면서? 지금은 2018년인디??”라는 사회초년생 밀레니얼 세대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게 한 몫 했다. 베스트 도전 만화에서 다음 웹툰으로 입성한 케이스다. “천방지축 사회초년생 슬이의 다이나믹 인생”은 계속되고 있다.   


(우)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슬 지음, 다음 웹툰, 2018∼, 매주 일요일 연재


바야흐로 퇴사가 유행인 시대다.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어릴 때는 대학이, 대학을 졸업해서는 취업이, 취업을 해서는 승진이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모든 과정은 경쟁으로 여겨진다. 사회가 그렇게 종용하기 때문이다. 곽백수 작가도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안락하게 산 건 이 시대가 처음이다. 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해보고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120만 원 벌어서 월세 40만 원 내고 나머지 돈으로 신나게 플레이스테이션 하고 운동하고 그렇게 살아라’ 우리 사회가 힘들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스트레스 안 받아도 살 만한 세상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재미나게 살 거리가 많다. 사람들은 기대치가 높아졌고 기업 그리고 사회는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는 것처럼 세뇌한다. 세상은 경쟁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것처럼 계속 겁을 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시대에 떠오른 ‘직장 서사’는 많은 취준생과 직장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중에서


돌이켜 보면 「미생」의 성공 이후, 직장은 우리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서사 문법이 되었다. 「게임회사 여직원」「지옥사원」 「홍차리브레」 「열정호구」 등 일의 슬픔과 기쁨을 다룬 웹툰이 많다. 책시장도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행나무)을 들지 않더라도 가까이에 제18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장류진의 단편소설 「일의 슬픔과 기쁨」이 있다. 영화시장은 어떨까. 2012년엔 <회사원>이, 2017년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가 직장인의 심금을 울렸다. ‘정신분산의 예술’로서 직장인의 애환을 다루는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직장인 서사의 변화와 진화가 기대된다.      



-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84호(2018년 3월 20일 발행) 리뷰 지면에 게재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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