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일에 좀처럼 확신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한편 무서운 마음도 든다. 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을 살면 저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의 버닝썬 게이트를 보면서도 그런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수사 중이라 언급은 조심스럽지만 본인은 죄가 없다는 승리의 태도를 보면 뻔뻔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직도 본인이 만인의 우상이라 생각하는 걸까?
영화 <우상>은 버닝썬 게이트와도 맞닿는 구석이 있다. 영화는 꿈과 신념과 확신이 도가 지나쳐 맹목으로 치달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만인의 우상인 구명회(한석규 배우)는 방언인지 외계어인지 알 수 없는 소릴 해도 전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인물이다. 그래서 다른 국회의원에게 "자네, 예수여?"라는 말을 듣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구명회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믿지 않기 때문에 모든 범죄를 자신이 직접 저지르고 수습하며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감독은 구명회를 보여줄 때 물이나 거울 등 반사와 반영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하여 구명회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관객에게 보여주려 애쓴다.
이런 명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이 중식(설경구 배우)이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끔찍이 챙기는 중식은 혹여 아들 부남을 잃어버렸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아들과 함께 머리카락을 샛노랗게 탈색한 인물이다. 아들의 성욕을 해결해주기 위해 아들의 자위를 돕다가 그만 지쳐 조선족 여성을 며느리로 들이는데, 명회의 아들 때문에 유부남이 된 부남이 신혼여행지에서 죽자 끝까지 아들의 자위를 대신해주지 못한 걸 자책하는 사람이다. 이름처럼 중식(점심식사)만 허겁지겁 채우며 살아간 아들 바보다.
이들 사이에 부남의 아내이자 중식의 며느리인 련화(천우희)가 있다. 한국인이 아닌 조선족, 남성이 아닌 여성인 련화는 영화 속에서 딱 두 번 웃는다. 중식의 변호사가 5만 원짜리 도시락을 줬을 때, 중식이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한국에서 련화가 계속 살 수 있도록 도와줬을 때다. 부유하긴 커녕 근근이 살아가는 게 최선인 련화의 삶은 비루하고 쓰지만, 그나마 가진 자존심을 지키고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캐릭터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리얼하다 보니 오히려 중요한 신들마다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천우희는 완벽히 조선족 여성인 련화 그 자체였지만 들리지 않는 대사를 그러모아 영화의 핵심을 유추한다는 건 관객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나는 아직도 중식의 집에서 식칼을 들고 나온 련화가 중식에게 한 말이 뭔지 모르겠다. 들은 거라곤 "내 가오"밖에 없다).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나쁜 영화라고 매도할 수 없는 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상>은 명회, 중식, 련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우상신봉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에게 우상은 있는가.
우리가 우상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는 없는가.
그리고 그 우상은 과연 우상으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가.
서슬 퍼런 질문은 때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요즘이다. <우상>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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