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어나더 컨트리> 리뷰
이곳은 어떤 세계일까.
마치 SF처럼 보이지 않는 낙인이 우리들 이마에 찍혀 있는 듯하다. 누구도 계급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이 시대가 계급사회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2019년 봉준호가 영화 <기생충>을 통해 말해줬고 1982년 줄리안 미첼도 연극 <어나더 컨트리>를 통해 이야기했다. 21세기 신新계급사회, 사회 안에서 개인의 존엄은 어디에 있는가.
<어나더 컨트리>의 배경은 1930년대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누가 봐도 영국 왕자들이 다니는 학교, 이튼 스쿨이 떠오르는 배경이다. 그리고 거기엔 이튼의 팝Pop과 같은 배타적 사회 '트웬티 투'가 있다. 그들은 서로의 계급과 계층을 철저히 나눈 채 생활한다. 하급생은 상급생의 종이 되고 트웬티 투는 나머지 학생들 사이에 군림한다. 그런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되고 싶은 것은 시대를 이끄는 엘리트다. 도서관에는 루소와 볼테르의 원본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저드 뿐. 그러나 그는 이 학교의 이방인이다.
무리에 섞이지 않는 인물은 또 있다. 소문난 동성애자 가이 베넷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애인을 보호하는 일 앞에서 무너진다. 아이들은 잔인했다. 그들은 계급과 교육이라는 사회의 시스템을 체내화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끝내 베넷은 모욕적인 폭력을 받아들여야 했고 저드는 굴욕적인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존엄은 사회 안에서 그렇게 쪼그라들 뿐이다.
베넷과 저드는 군국주의와 계급주의로 돌아가는 학교의 시스템에 저항하고, 본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허세와 자기 앞가림에 골몰하는 예비 부르주아들에게 대항해보려 한다. 그러나 베넷은 자신에게 모욕을 준 국가를 뒤로 한 채 소련의 스파이로 쓸쓸하게 살아가고, 저드는 꽃다운 나이에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 군대의 총탄을 맞고 죽는다. 황금만능주의, 무한 경쟁의 체제 안에서 그들은 공생과 상생을 꿈꿨지만 다른 이들에겐 혐오스러운 기생충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1982년으로부터 37년간의 세월이 겹쳐지고 <기생충>에 <어나더 컨트리>가 겹쳐지고 한국에 영국이 겹쳐지고 체제 속의 인간은 그렇게 계속 고통스러울 뿐이다. 우리의 존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모처럼 영화와 연극을 보는 시간이 낯설고 즐거웠다.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질문이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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