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영주> 리뷰
브런치 무비패스를 이용하여 시사회를 통해 선감상한 영화입니다.
일찍이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임순례, <화차>의 변영주가 있었다. 그리고 2018년, 영화계에 빛나는 신인 여성 감독들이 출연했다. <소공녀>의 전고운, <미쓰백>의 이지원 감독에 이어 <영주>의 차성덕 감독이 등장한 것이다.
2008년 <미쓰 홍당무>(2008), 2015년 <비밀은 없다>의 스크립터를 거친 차성덕 감독의 첫 장편영화가 <영주>다. 10대 시절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은 차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상상력을 보태고 덧붙여 이 영화 <영주>를 만들었다.
극중에서 향숙(영주의 부모를 죽게 한 가해자 상문의 부인)은 승일두부에서 상문, 영주와 밥을 먹다 영주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영주야, 남자들이란 다 저렇게 미련하고 한심한 존재들이란다.”(워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런 뉘앙스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향숙의 말대로 <영주>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긍정하기 힘든 대상이다. 상문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죽지 못해 살고 있고, 술에 취해 영주를 자신의 아들 승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런 상문에게 유일한 의지처이자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향숙이다. 영주의 동생 영인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고모부 역시 대화가 아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한심하긴 마찬가지이고 가장 나이 어린 영인까지 사고만 치고 다니며 영주를 힘들게 한다.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주와 향숙은 다르다. 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가정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마치 은식기를 훔쳐간 장발장에게 미리엘 주교가 은촛대까지 내어주듯, 두부가게의 돈을 훔쳐간 영주에게 향숙은 얼마가 필요한지 몰라 일단 넣었다며 두둑한 봉투를 내민다. 이 이해하기 힘든 선의를, 아마도 어렵게 가정을 지켜내는 어린 여성 영주에게 향숙이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꿈보다 해몽일까.
인트로에서 영주는 영인과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한다. 만약에 죽은 엄마와 아빠 중 한 명만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자신은 아빠를 택할 거라고. 스무 살이 되면 아빠가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영주의 이유는 웃어넘기게 되지만 엔딩신에서 기어코 영주가 내뱉는 단어가 ‘엄마’라는 것은 중요하다.
<영주>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과거 속에 살고 있다. 영주도, 영인도, 고모도, 향숙도, 상문도 과거의 그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영주>는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 그러니까 살아남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영주의 부모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가해자 상문은 트럭기사였고, 졸음운전을 했다고 한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상문의 아들은 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다. 영주는 그 사실을 동생 영인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답답함 반, 분노 반의 심정으로 무작정 트럭기사의 가족을 찾아간 뒤,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엄마 역할까지 떠맡게 된 누나 영주는 일견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이지만, 사실 영주에게 삶은 힘겹기만 하다. 영주에게도 영주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주에겐 엄마가 필요했고 아빠가 필요했다. 그 진실을, 영주는 가해자 가족을 만나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영주는 자신에게 잘해주는 상문과 향숙에게 오히려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그들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가슴 아파한다. 심지어 늘상 입고 있던 엄마의 카디건을 벗어 던지고 향숙이 사 준 야구점퍼를 입으면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과 유사가족을 형성하려는 욕망까지 보인다.
‘영주’라는 캐릭터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직 10대라는 설정을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해도 대부업에 사기를 당하는 영주, 동생의 합의금도 마련해주지 않은 고모부에게 맞는 영인을 그저 두고 보는 영주, 돈을 훔치다 걸렸는데 자신을 승일로 착각한 상문에게 “아저씨, 저 영주라고요”라고 소리치는 영주, 향숙이 본인을 위해 기도하는 걸 봤음에도 “앞으로 그 애를 어떤 얼굴로 봐”라는 향숙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영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4년 전 <우아한 거짓말>에서 그랬듯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감정선을 영주 역의 김향기는 차분하게 소화한다. 관객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잦은 음악과 멋을 부린 듯 롱테이크가 사용된 연출보다 연기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미움과 복수, 분노의 감정이 연민과 애정, 더 나아가 욕망이 될 때를 김향기는 잘 전달한다. 그래서일까. 일상에선 잘 눈에 띄지 않을 것만 같은 인물들이 김향기의 얼굴과 목소리를 빌어 울림 있게 다가온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앞으로 나아가는 김향기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관객들은 <영주>의 향기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그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을 것이다. <영주>의 향기가 진하게 남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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