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영화 <서치>의 진실

- 사이버장례식이 필요한 이유

by 김뭉치

나는 구글링의 달인이다. 구글에는 없는 게 없다. 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의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다못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알게 될 때도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아이디를 사용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어디로 여행을 가서 어느 숙소에 묵었는지도 구글링을 통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요즘은 간혹 숙소를 예약할 때 입금 후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구글링을 통해서라면 소개팅 전 소개팅남의 신상 정보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넷상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 정보가 뜰 때마다 그 정보들을 빛의 속도로 삭제해나간다. 나는 온라인에서 없는 사람이고 싶다.


온라인형 인간은 불안하다

생각해보자. 만약 당신이 카페에서 애인과 있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경우를. 당신이 켜두고 간 노트북 속 폴더들, 당신이 로그아웃하지 않은 피씨 카톡의 메시지들은 언제고 연인의 눈에 들어올 수 있다. 혹 당신의 애인이 관음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들을 보게 된다면? 연인은 어쩌면 당신의 비밀들을 속속들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서치>의 제작자인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동료가 실수로 끄지 않은 스카이프의 화면 공유 기능을 통해 동료의 페북 메시지와 아마존 구매 물품들을 모조리 알게 됐다. 이 일 이후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온라인과 함께하는 21세기 인간들의 존재 양상을 영화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왜 당장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설사 그게 보이더라도 보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의 본능 속에 관음의 DNA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1954년, 알프레드 히치콕은 저 유명한 영화 <이창>을 만들게 된다. 이 영화의 계보는 이후 <현기증>, <사이코>로 이어지며 ‘관음 3부작’이라 불리게 된다. <이창>의 주인공 제프는 사진작가이다. 카레이싱 촬영 도중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의지한 채 자신의 방에서 무료하게 지낸다. 그는 카메라 렌즈로 주변 이웃들을 훔쳐보기 시작한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 미녀 무용수, 슬픈 표정으로 혼자 지내는 미스 고독, 병든 아내와 남편 등 주변의 평범한 이웃을 관찰하던 중, 제프는 어느 집의 병든 아내와 남편이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목격한다. 남편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을 들락거린 이후 그 부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의심을 품은 제프는 연인 리사와 간호사 스텔라의 도움을 받아 부부의 집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만했던 것이 톱과 칼을 만지작거리고, 화단을 파헤치던 강아지에게 신경질을 내는 남편의 모습이 제프의 의심을 더욱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히치콕의 관음 3부작 중 <이창>


2017년, 1991년생의 아니쉬 차간티는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 출신으로 구글 프로젝트와 함께 다수의 광고 제작에 참여하면서 쌓아온 실력을 새로운 방식의 영화 <서치>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주인공 데이비드가 보아온 마고는 엄마의 죽음 이후에도 한결같이 모범적인 딸이었다. 그러나 실종 이후 데이비드가 찾아낸 딸의 개인방송에서 마고는 상실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프라인 속에서는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해 늘 외따로 떨어져 있는 아이였다. 예고편을 봤을 때는 <테이큰>의 온라인 버전인 줄 알았으나 영화는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딸의 모습을 딸이라고 생각했던 아빠가 온라인을 통해 딸의 실체를 알아가며 느끼는 충격과 당황스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감정 스릴러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마고로 위시되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객은 데이비드와 함께 마고의 스크린라이프를 관음하지만 사실상 관객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진실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 숱한 SNS 속 “소통해요~”라는 문장들 사이에 진짜 소통은 있는가?


2018년 그 자체인 영화

<서치>를 다 보고 나서 느끼게 되는 충격적인 여운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플롯은 그리 새롭지 않다. 기존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초반 데이빗이 딸 마고에게 어떤 문장의 메시지를 보내려다 지우는 신이 있는데, 결말에 다다르면 그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이는 데이빗과 마고의 관계 형성과 인물들의 성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신이지만 실은 신파의 성격을 띤 한국영화에서 자주 볼 법한 장면이기도 하다.


충격적인 여운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플롯은 그리 새롭지 않다


어찌 보면 진부하기까지 한 단선적 스토리를 새롭게 보게 하는 건 이 영화의 형식이다. 모니터에 열리고 닫히는 수많은 창들이 극장 스크린을 부유한다. 마치 내가 직접 컴퓨터를 사용하는 듯 쉴 새 없이 커서는 깜빡거리고 마우스는 딸깍거리고 타닥이는 키보드 소리가 들린다. 이런 식의 시도는 자칫 정신 사나울 수도 있는데 아니쉬 차간티는 좀 작위적이긴 해도 단정하고 감각적으로 미장센을 꾸려나간다. 전 세계 5명의 젊은 창작가에게만 수여한다는 스토리텔링의미래펠로우쉽의 수상자답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크린세이버를 통한 화면 연출이었는데,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스크린세이버가 그토록 다른 질감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런 영화를 데뷔작으로 만들다니, 그가 만든 구글 글라스 스팟 영상이 24시간 만에 100만 뷰를 기록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스크린세이버를 통한 화면 연출이었는데,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스크린세이버가 그토록 다른 질감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한국영화에서는 <곤지암>을 통해 조금이나마 달라진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다. 유튜브로 위시되는 개인방송과 황금만능주의 사이의 공포를 <곤지암>의 말미에서 느낄 수 있다. <서치>를 통해서는 작품과 촬영 기법 모두에서 달라진 시대상을 느끼게 된다. 집에서 온라인 속의 마고를 찾아 현실의 마고와 끼워 맞출 때 데이비드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데이비드를 연기한 존 조는 “보통은 다른 배우들과 얼굴을 보면서 연기하지만 이번 현장은 달랐다. 상대역의 목소리를 이어폰으로 듣고 카메라 앵글은 딱 하나였다”고 말했다. 형사 로즈마리로 출연한 배우 데브라 메싱도 “존 조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단 한 순간도 존과 같은 공간에 있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있던 방에는 노트북 한 대와 그 위에 달린 고프로 카메라뿐이었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 호흡해야 하는 일반적인 촬영 환경과 다르게 카메라 렌즈를 마주 보고 연기를 해야 했다”고 현장을 묘사했다.


“보통은 다른 배우들과 얼굴을 보면서 연기하지만 이번 현장은 달랐다. 상대역의 목소리를 이어폰으로 듣고 카메라 앵글은 딱 하나였다” by 존 조


다만 고등학생 딸을 둔 아빠 데이비드의 분장은 아쉬웠다. 존 조가 워낙 동안이라 힘들었겠지만 분장 티가 너무 심하게 났다.


존 조가 워낙 동안이라 힘들었겠지만 주름 등 분장 티가 너무 심하게 났다


국뽕이라도 존 조가 좋아

<서치>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데이비드의 가족들이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계 미국인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몇 작품이나 될까. 이 가운데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비껴가는 역할들만 고르는 존 조를 보면 현명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왜 주인공을 한국계 가족으로 설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부터 존 조와 함께 하고 싶었다”며 “존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인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근 아시아계 배우들로만 구성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개봉에 맞춰 아시아인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에릭남이 미국 애틀랜타의 한 극장 전체 표를 구매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감독인 존 추와 주연배우 헨리 골딩은 <서치> 개봉에 맞춰 한 극장의 표를 구매했다고 인증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감독인 존 추와 주연배우 헨리 골딩이 <서치> 개봉에 맞춰 한 극장의 표를 구매했다고 인증했다


지금, <서치>를 서치할 시간

<서치>는 2013년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2014년 <위플래쉬>에 상을 준 선댄스영화제에서 올해 만장일치로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또 올해 5월 개최됐던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현재 로튼토마토 지수는 93%. 이제 <서치>를 서치할 시간이다.


현재 로튼토마토 지수는 93%. 이제 <서치>를 서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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