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단상
집에 남자친구가 찾아왔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우리 집엔 사촌 부부가 와 있었다. 사촌이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누구냐고 물어서 정식으로 남자친구를 소개했다. 동생도 방에서 나와 남자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남자친구는 쑥스러워 목까지 빨개졌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잠실에 있는 극장이었는데 20분 만에 가야 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꿈이니까 역시 가능했다. 극장 밖 벤치에 앉아서 잠시 상영시간을 기다리는데 전 남자친구가 보였다. 그는 현실 세계에선 내 남편이었지만 꿈속 세계에선 EX였다. 전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인 그는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보는 그의 얼굴이 낯설고도 아련했다. 앞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 옆에 앉은 현 남자친구를 보더니 엷은 미소를 띠며 "잘 살아" 하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결정적 선택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 그래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헤어졌다. 조만간 그의 어머니를 찾아뵙고 작별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생각했다. 그러나 쉽사리 엄두를 낼 순 없는 일이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친해지니 이별도 일이구나. 한숨이 나왔다. 내가 그와 결혼을 했던 건가? 꿈속에서도 혼란스러웠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현 남자친구가 시계를 보다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왜 우리 영화는 상영이 되지 않지?
그의 어깨를 살짝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극장 아닌 것 아니냐고. 이 근방의 극장은 잠실점과 롯데월드점 두 개가 있는데 혹시 롯데월드몰 아니냐고. 남자친구가 그런 것 같다고 해서 영화표를 취소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투닥이며 층계를 올라 집으로 향했다. 이 사람과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새로 사귄 남자친구는 나와의 결혼을 원했는데, 전 남자친구와 이별했으니 홧김에라도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게 인생 아닌가.
남자친구는 자신의 근육을 만져보라며 하얀 팔을 드러냈다. 하얀 얼굴에 쌍꺼풀 없는 눈이 매력적이었지만 자꾸만 전 남자친구가 떠올랐고 아릿함이 심장을 관통했다.
알람이 울려 깨어났다. 아릿하고 아련한 꿈이 좋아서, 현실에선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좀 더 느껴보고 싶어서 5분만, 을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러나 선잠의 5분 동안 꿈과 감정은 이리저리 뒤섞여 흩어지고 말았다.
남편이 일어나자 꿈 얘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었냐고. 꿈속에서 나만 남편을 사랑한 게 분했을까. 그보다는 꿈속에서도 남편을 사랑한 자신이 뿌듯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하는 자신에게 도취되곤 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잠시 사랑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기에 곧 욕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생활에 치여 묻힌다. 언제고 그 질문을 다시 붙들고 매달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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