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저 회사 그만둘래요

- feat. 꿈입니다

by 김뭉치

명절 휴일의 시작이었다. 정시 퇴근 후 동해에 가야지,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니 8층이었다. '사무실은 3층인데…' 너무 높이 올라왔다. 멍 때리며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2층이었다. 이럴 수가. 오늘 왜 이러지?


다시 3층으로 올라갔더니 진이 다 빠졌다. 사무실엔 동생과 동생 친구도 와 잡지 발송을 도와주고 있었다. 동생은 플로럴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붉은빛과 분홍빛이 썩 잘 어울렸다. 동생과 동생 친구가 발송 작업을 하는 한 켠에선 회사 동료들이 위생백에 담긴 찐 감자를 손으로 으깨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이게 뭔 일이람. 대표도 나와서 우리는 다 함께 감자를 으깼다. 그러다 보니 시각은 어느새 6시를 지나 8시가 되어 있었다. 틀어둔 TV에선 귀성길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연휴의 시작. 여긴 어디지, 또 나는 누구지?


사람들에게 퇴근 안 할 셈이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울상을 하고 말했다. "이걸 다 해야 집에 갈 수 있다잖어." 순간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 듯했다. 맞은편에 앉은 팀원과 눈이 마주쳤다. 팀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밀었다. 동생과 동생 친구에게 그만하고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동생은 "우리가 이걸 안 하면 일손이 부족할 텐데…" 하고 말했다. "너희가 안 도와주면 일손이 부족한 것 자체가 문제야, 지금."


동생과 동생 친구는 나의 분노 지수를 눈치채고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대표에게 가서 퇴근시켜 달라고 말했다.


"안 돼. 감자를 다 으깨야 퇴근할 수 있다고 했잖아."


대표의 말에 얼굴이 시뻘게진 나는 모두를 둘러보았고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대표가 갑작스러운 퇴사의 이유를 물었다. 모두가 귀성길 대열에 합류한 지금, 우리가 회사 업무도 아닌, 대체 누구의 업무인지 알 수 없는 감자 으깨기를 하는 건 나의 상식 이하이며 불합리의 전형이라고, 지금 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최초도 아닐뿐더러 상황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으니 나는 참지 못하겠다고 했다. 대표는 그저 허허 웃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길로 회사를 빠져나왔고 동생과 동생 친구와 함께 술잔을 주고받았다. 퇴사하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좋지도 그렇지도 싫지도 않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잔에 담긴 소주는 맑았고, 나는 내일부턴 다시는 회사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느 날의 꿈을 기록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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