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계, 아빠의 세계, 가족의 세계

by 김뭉치

동생은 이불속 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우리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자매라기보다는 친구 같았다. 나는 그러한 관계가 좋았다. 모두에게 친구이고 싶었다. 엄마 아빠에게도. 그래, 그날 밤은 모처럼 곤한 잠을 잤던가. 아무 꿈도 찾아오지 않았던가. 아침을 맞기가 외줄을 타는 것처럼 공구하지 않았던가.


실은 지난 매일을 고단한 척추를 느끼며 시작했다. 나의 척추는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달랐는데, 가끔은 나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내 척추뼈로 기타를 연주하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일곱 번의 수술에도 나의 척추는 다른 이들의 척추와 같아질 수 없었고, 마지막 수술 후 입가를 실룩이는 의사의 미소에서 나는 평생을 척추가 주는 고통에 잠겨 그것이 고통인 줄도 모르며 지내야 함을 예감했다. 그리고 예감대로 고통은 곧 나의 것이 되었다. 고통 속에서 나는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아이와도 같았다.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던 처음과 달리 시간이 시나브로 넘어가면서 고통 속을 유영하게 되었고, 이내 샴쌍둥이처럼 고통과 딱 붙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태초에 하나였던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면서 그것은 오히려 분리가 더 어렵게 변해버렸다. 언젠가 내가 사윌 때 고통 또한 나와 함께 사위어가고 그렇게 나와 함께 묻힐 것을, 나는 알았다.


미역이 위에 붙듯 고통이 내게 달라붙을 때마다 엄마는 너를 쓰다듬고 깊은 밤이 더욱 캄캄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너는 참으로 별난 아이였지. 낮에는 이 세상에 없다는 듯 잠들고 밤에는 제발 이 세상에서 날 좀 꺼내 달라는 듯 울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딱 네 아빠를 닮았던 건데 그땐 아무도 그걸 몰랐다. 네 아비가 널 늘 짓밟으려 들었지. 탄광에서 온몸에 석탄을 묻히고 와 씻지도 않고 잠들기 전에, 섯다 할 돈이 부족하다고 옷장 깊숙이 숨겨둔 월급봉투를 눈이 벌게져가며 찾기 전에, 찬 가짓수가 왜 이리 적냐며 나를 흠씬 두들겨 패기 전에. 빽빽 울고 있는 네 작은 몸을 마구 짓밟을 때 내가 달려가 널 감싸 안으면 그날은 어김없이 나도 짓밟혔다. 네 울음소리 속에 혼곤한 내 신음소리가 합쳐지고 나서야 분이 풀리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 굽어 있는 네 척추를 보면, 짓밟히고 또 짓밟히던 그 밤 생각이 나.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자꾸 떠올라. 이상하지. 그런 기억은 사라지지도 않는다. 지워지지가 않아. 그저 계속 선명해질 뿐 휘발되지 않아."


그러면서 엄마는 자동차 보닛맛이 나는 위장약과, 환자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의사가 처방한 파란 수면제를 차례로 털어 넣었다.


매일 어제보다 더 부서지고 있는 엄마를 지척에서 지켜보면서도 나는 아빠를 온전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나의 척추에 매스가 일곱 번 가 닿을 때 칠천 병의 알코올이 아버지의 혈관을 타고 흘렀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빠의 깨지기 쉬운 연약함을 인생의 삼분의 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았다는 게 패착이라면 패착이었다. 아빠의 무름과 약함을 깨닫기에 나는 너무 바빴다. 좁은 아빠의 방 밖에서 나는 늘 아빠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종종거렸다. 그러나 숨 죽은 파김치 같은 음성으로 열 시간, 열한 시간 계속되는 아빠의 혼잣말이, 고래고래 나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아빠의 핏발 선 음성이, 앞에서 식칼을 들고 휘두르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아빠의 실상 없는 말이 잊고 있던 다른 일들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 자는 척을 하고 살아 있는 척하면서 죽어 있는 날들 속에서 나는 뛰다가 걷고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끝이 없는 굴속으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갈 때에 나는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보았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앞에 둔 채 귀를 막고 끙끙대다가 고막을 찢을 듯한 와장창, 소리에 놀라 뒤돌아봤을 때 발등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채로 엄마를 노려보던 아빠의 붉은 눈, 부러진 코를 감싸며 쓰러지면서 도망가, 라고 외치던 엄마의 까만 동공, 그저 동생의 손을 잡고 현관을 넘어 달리던 그 어느 날. 유난히도 네가 무서워하던 주인집 할머니의 불독이 앞길을 막아섰을 땐 차라리 어둠의 진창으로 곤두박질치고 싶던, 하릴없이 동생의 손만 꽉 그러쥐었던 내 모습. 수학은 깨끗이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세상이란 곳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세상이란 곳은 수학보다도 더 어려운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기억과 기어코, 마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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