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살롱문화를 제안하다

by 김뭉치
피지컬 레이어를 가진 콘텐츠는 피지컬을 채우는 소프트웨어와의 화학 작용을 통해 콘텐츠 경험을 완성한다. 취향관에서의 경험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콘텐츠 경험으로 완성되도록 설계했다. 마치 18세기 어느 집과 응접실에 초대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살롱이라는 역사적 모티브와 마담의 존재, 낯선 타인과의 대화와 영감의 교류가 결합되어 취향관이라는 ‘살롱’ 경험의 총체를 완성한다.

뚜렷한 목적과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에는 사람들이 쉽게 모인다. 그곳에서는 내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얻게 될지가 명확하여 이해와 동의가 쉽다. 이미 무엇을 ‘목적’한 바가 있으므로 모이기도 쉽지만, ‘목적’이 사라지면 공동체의 이탈도 비교적 간단하다. 그럼에도 효율성에 익숙한 대부분의 공동체에서는 ‘목적’이 우선된다.

취향관에서는 무엇을 함께 이루어 내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그럼에도 취향관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개인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로서 작동하는 이유는 멤버십을 기반에 두기 때문이다. 단지 유가로 공간 이용료를 지불하는 의미의 회원이기 때문에 관계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취향관에 모이는 멤버들은 서로가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합의’를 전제로 만남을 갖는다. 대화의 주제나 목적은 뚜렷하지 않으며, 공간에 찾아오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렇게 우연히 새로운 사람과 대화의 경험에 노출된다. 직업도, 나이도 모르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기꺼이 대화할 의사를 가졌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취향관 밖에서 마주하는 ‘낯선 타인’과 취향관에서 만나는 ‘낯선 타인’은 완벽히 구별된다. 목적보다 합의가 우선되는 안전한 공간과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읽었던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고, 인생철학을 이야기하기도, 사회 문제를 고민하기도 한다.



- 고지현 취향관 대표의 「우리 시대에 살롱문화를 제안하다」 원고 전문은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493호

이슈 '취향의 연결, 살롱문화'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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