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박자

오늘, 아빠와 싸우고 말았습니다

by 김뭉치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동생이 결혼하고 난 뒤 부쩍 외로움이 깊어진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화기애애하고 다정한 시간들이 흘러갔으나 사건은 돌아오기 전날 밤 일어났다. 잠들기 전에 남편과 떠들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노크를 한 것이다.


문을 연 아빠는 대뜸 소리를 지르며 지금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물었다. 왜 이렇게 싸우냐는 것이다. 싸운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니 다투는 소리가 방 밖까지 다 들렸단다. 기가 막혀서 나도 바락바락 대들었더니 아빠도 험한 소릴 한다.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라고 했더니 아빠는 머쓱해하며 자라고 하곤 나갔다. 닫힌 방문 틈으로 “마누라도 죽고 없는데 내가 이런 꼴까지 보며 살아야 하나” 하는 혼잣말이 새어 들어왔다.


도란도란 배드 토크를 하기 전엔 딱히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남편과 각자의 방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누워 있었더랬다. 아빠는 그때부터 우리 부부가 싸운 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늘 투닥투닥 대화를 이어가는 우리의 패턴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만 오해를 했던 것이다(생각해보면 나와 남편은 늘 티격태격하며 장난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데 간혹 우리의 대화 패턴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다투는 걸로 오해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다음 날 아빠는 어젯밤 다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 그랬다며 민망해했다. 그러나 아빠의 폭언에 나는 잊고 있었던, 10년 전 마지막으로 봤었던 아빠의 폭력적인 모습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그래서인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버린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어제 아빠는 친구와 거나하게 술을 자시고 만취해 있던 상태였다. 결국 나는 아빠에게 술을 끊던지 딸과의 연을 끊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해놓고는 집을 나와 버렸다.



평소답지 않게 서울에 도착해서도 잘 도착했단 전화를 하지 않았더니 아빠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술을 마시지 않은 아빠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 있어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았다. 다음 달 추석에 만나면 빼빼 마른 아빠가 1kg은 찌워 보겠다고 약속했다. 기쁜 날도 슬픈 날도 화나는 날도 억울한 날도 분노의 날도, 이렇게 흘러간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평등한 시간들이다.


지글거리는 8월의 뜨거운 여름이 내 머리맡을 지나고 있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http://bitly.kr/tU8tzB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95171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