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헌터』

by 김뭉치

우리의 프로파일링 작업이 절대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흉악 범죄 자체의 성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골치를 썩이는 마약 관련 살인사건과 거의 매일 발생하여 국가적 수치가 되고 있는 권총 범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일어난 대부분의 범죄는, 특히 흉악 범죄는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범죄가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얘기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살인사건 중 90퍼센트 이상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 과학과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으며, 더 훌륭한 자질과 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좋은 경찰관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도 살인율은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그에 비해 해결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범죄가 ‘낯선 사람’에 의해 혹은 ‘낯선 사람’을 상대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건의 경우 특별한 범행 동기가 없으며 그 결과 명확하거나 ‘논리적’인 동기를 찾아낼 수가 없다.

- pp. 35-36


학교 생활에서 내가 열의를 보인 유일한 분야는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점은 후에 범죄 수사관이 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강력계 형사와 범죄 현장 분석가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흩어진 단서들을 한데 모아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짜내야 한다. 특히 희생자가 자신의 피해 상황을 직접 얘기해줄 수 없는 살인 사건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매우 요긴하다.

- p. 47


사람들이 보이는 병적인 자기 우월주의는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 pp. 107


존 더글러스,마크 올셰이커 (지은이),이종인 (옮긴이), 비채2017-11-03, 원제 : Mindhunter (1995년)


그뿐만이 아니다. 양로원을 찾아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인과 수사상 면담을 하다가 웃음을 와락 터뜨렸는가 하면, 40대 중반의 사업주와 얘기를 하다가 그의 가발이 이마 위로 반쯤 벗겨져 내려올 때도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체면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우스운 상황이 나타나면 놓치지 않고 찾아냈다. 유머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무례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머를 찾아낼 줄 아는 재능은 유용했다. 살인 현장과 시체 유기 장소, 특히 어린아이 살해 건을 조사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할 때, 수백 명, 수천 명의 희생자 혹은 희생자 가족과 얘기를 해야 할 때,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을 볼 때는 정말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로 올라간다. 이럴 때는 웃을 수 있을 때 웃는 것이 긴장 해소에 최고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들 자신이 먼저 미쳐버릴 것이다.

- p. 116


제압, 조종, 통제는 연쇄 강간범이나 연쇄 살인범들이 공통적으로 내보이는 특징이다. 이들 흉악범은 대부분 적개심이 강하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인생의 실패자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인생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고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느꼈다. 그러니 힘센 사람이 되어 자기를 이런 나락으로 빠뜨린 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처넣고 싶다는 엉뚱한 심리가 발동한 것이다.

- p. 154


또 한번은 히치하이킹에 나선 중년 여자와 10대 아들을 차에 태웠다. 그는 모자를 모두 살해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의 친구가 켐퍼의 차량 번호를 적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그들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다.

- p. 156


미드 <마인드 헌터> 속 에드 켐퍼(좌)와 실제 에드 켐퍼(우)


켐퍼는 범죄행위 자체를 도전과 게임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어떻게 의심을 받지 않고 여대생을 차 안에 태우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게임이었다. 그는 예쁜 여대생이 걸어가면 그 옆에 차를 세우고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고 그러면서 태워다줄 시간이 있는지 살피는 척하며 손목 시계를 슬쩍 들여본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여대생은 운전사가 더 바쁜 일이 있는데, 친절한 마음에서 제안해오는 것이구나 하고 안심하며 차에 올라탄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켐퍼는 우연히 만난 여대생 히치하이커가 상식적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기준보다 훨씬 교묘하고 복잡하고 분석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그 여자를 유인한 것이다.

- p. 157


물론 자수하거나 자살을 하는 범죄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는 범죄에 대한 후회라기보다는 자기가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먼저 이 사건은 우리가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부르는 사건 직후에 발생했다. 즉 ‘스트레스 요인 다음에 살인사건’이라는 범죄 발생 패턴은 그 뒤의 다른 살인사건에서도 되풀이 되어 발견되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스트레스 요인이 무수하게 많다. 심지어 날씨가 너무 좋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가장 흔하고 또 강도가 높은 스트레스 요인 두 가지는 직업을 잃어버리는 것과 아내(혹은 애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나는 여기서 또다시 여성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내세웠다. 뒤에 밝혀지겠지만 거의 모든 연쇄 살인범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 p. 196


연쇄 살인범이나 강간범은 남을 조종하기 좋아하고, 자기애에 빠져 있고, 완전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이 범인들이 가출옥되어 다시 거리에 나간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것이다. 그래서 가출옥 담당관이나 형무소 정신과 의사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서 들려주는 것이다.

- p. 201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인드 헌터> 중 찰스 맨슨


1980년대 초 나는 연간 150여 건 이상의 사건을 담당했고 연간 150일 이상 지방 출장을 나갔다. 저 유명한 텔레비전 코미디극인 「왈가닥 루시」에서 과자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은 주인공, 루시 볼과 같은 처지였다. 컨베이어 벨트가 점점 더 많은 과자를 실어오자 헐레벌떡 과자를 치워내야 하는 루시처럼, 나는 일에 치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 앞에서 숨돌릴 여유를 챙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 p. 243


창녀들처럼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희생자는 위험에 적게 노출되는 여염집 처녀에 비해 우리에게 일관된 행태학적 정보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 p. 245


시체의 몸에서 무엇을 탈취했는지, 범행 현장에서 뭐가 없어졌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가령 현금, 귀중품, 보석류 등이 없어졌다면 범행의 동기가 어느 정도 파악된다. 그 밖의 물품이 없어지면 그 동기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경관이나 형사가 내게 아무것도 없어진 게 없다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가령 범인이 당신의 아내나 애인의 서랍에서 브래지어나 팬티를 꺼내갔다면 그걸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죠. 그걸 안다면 변태일 테니까요.” 가령 머리핀이나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것이 없어질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추적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보이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정확한 현장 파악이 아니다. 왜냐고? 우리가 범인을 체포한 다음 그의 집을 수색해보면 사건 현장에서 가져간 기념품이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 p. 247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강간범은 강간 전 강간 대상의 집에 들러 속옷이나 머리핀을 훔쳐간다


다이얼만 돌리면 프로파일링이 저절로 나오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일이 수월할까! 사실 지난 수년간 컴퓨터 전문가들이 치안 관계자들과 공동으로 프로파일링 작업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려고 매진했으나, 지금껏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 p. 248


훌륭한 프로파일러는 머릿속에서 범죄 현장을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해서도 최대한으로 많이 알고 있어야만 피해자가 사건 현장에서 어떻게 반응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총, 칼, 바위, 주먹 또는 기타의 흉기를 들고 덤비는 가해자와 맞닥뜨린 여자의 입장, 가해자가 다가올 때 그녀가 느꼈을 공포, 그리고 그녀의 가능한 방어 수단, 이런 것들을 대신 느낄 줄 알아야 한다. 피해자가 그녀를 강간하고 구타하고 절단할 때 그녀가 느꼈을 고통도 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변태적인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녀를 고문할 때, 그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공포와 고뇌 속에서 아무리 비명을 질러봐야 소용이 없고 가해자의 고문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느꼈을 무력감을 이해해야 한다. 프로파일러는 업무상 이런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정신적 부담이다. 특히 피해자가 어린이거나 노인일 때는 더욱 고통스럽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감독과 출연진이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콴티코에 왔을 때, 나는 잭 크로퍼드 역을 맡은 스콧 글렌을 내 방으로 데려갔다. 소설 속에 행동과학부장으로 나오는 이 사람은 나를 모델로 했다는 설도 있다. 스콧 글렌은 범죄자의 사회복귀, 구제, 성선설 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꽤 진보적인 인사였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매일 작업하는 끔찍한 범죄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살인자들이 피해자들을 고문하면서 지껄인 말들의 녹음 기록과 최근 형무소에서 가출옥으로 풀려나온 두 명의 잔인한 살인자들에 의해 밴의 뒷좌석에서 고문당하다가 죽어간 두 명의 로스앤젤레스 10대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글렌은 그 테이프르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난 세상에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스콧 글렌은 두 딸을 둔 다정하고 지성미 넘치는 아버지였다. 글렌은 내 사무실에서 현장 범죄 사진을 보고 또 테이프를 듣고 난 다음에 더는 사형제도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콴티코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다음,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싹 바뀌었습니다.”

- pp. 249-250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때로는 엄청난 고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목수가 나무를 가다듬고 석수가 돌을 쪼듯이, 수사관은 범죄를 목석처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 p. 424


존 더글러스와 마크 올셰이커가 쓴 『마인드 헌터』는 데이빗 핀처의 미드 <마인드 헌터>의 원작이다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자기서사로 어떻게 글을 쓸지 궁금하신 분들 9월 25일 늦은 8시 30분에 만나요 :)

https://m.onoffmix.com/event/19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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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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