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도서관에서는 원하는 것을 뭐든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대출이 끝난 뒤 차에 올라타 우리가 그날 손에 넣은 책 전부를 무릎에 올려놓길 좋아했다. 탄탄하고 따뜻한 책들의 무게가 나를 누르는 느낌, 마일라 필름이 덮인 표지들이 허벅지에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돈을 지불하지 않은 물건들을 들고 떠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했다. 우리가 읽을 새 책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짜릿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와 나는 어떤 책부터 읽을지, 언제까지 반납해야 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반납일 전까지 금방 사라져버릴 이 마법 같은 유예의 시간 동안 우리의 속도를 조절할 방법을 정하는 엄숙한 대화였다. 그런 뒤 엄마는 만약 어떤 직업이든 선택할 수 있다면 사서가 되겠노라는 말을 했고 그러면 얼마나 굉장할까 생각하는 동안 차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좀더 나이가 들었을 때는 혼자 걸어서 도서관에 가 들고 올 수 있는 만큼의 많은 책을 끙끙대며 집으로 나르곤 했다. 가끔은 엄마와 함께 갔는데, 그럴 때면 꼬마 때처럼 매혹적인 도서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혼자 운전해서 도서관까지 갈 수 있었던 고등학교 졸업반 때도 가끔 엄마와 동행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예전에 그토록 수없이 반복했던 똑같은 일상과 멈춤, 똑같은 말들과 몽상, 완벽하게 사색적인 리듬으로 어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여정이 펼쳐졌다.
-pp. 19-20
나는 주변에 책을 두고 내가 접한 이야기들의 토템폴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아파트를 갖게 되자마자 벽을 따라 책장을 들여놓고 하드커버 책으로 채웠다. 연구 자료를 찾을 때는 대학 도서관을 이용했지만 그 외에는 걸신들린 듯이 책을 사들였다. 서점에 가면 꼭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나는 새 종이와 잉크에서 나는 신선한 알칼리성의 싸한 냄새를 사랑했다. 이미 길이 든 도서관의 책들은 절대 풍기지 않는 냄새였다. 새 책의 책등이 처음으로 구부러지면서 생기는 금, 창의성에 흠뻑 젖은 듯한 느낌이 드는 새 책의 페이지들도 사랑했다.
- p. 21
시간이 도서관 안에서 멈춘 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도서관에 붙잡히고 수집된 것 같았다. 모든 도서관에 내 시간, 내 인생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시간까지. 도서관에서는 시간이 둑으로 막혀 있었다. 그냥 정지된 게 아니라 저장되어 있었다. 도서관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고여 있는 연못이다. 불멸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다.
(중략)
나는 책을 갖고 싶은, 그리고 그것을 살 때의 기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의 서고 사이를 느긋하게 돌아다니며 찾던 책을 발견하는 느낌, 또 그 주변에 무슨 책들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책들 사이의 특별한 유사점을 발견하고 스피드게임처럼 한 책에서 다음 책으로 넘어가며 하나의 개념을 쫓는 게 어떤 느낌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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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