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반복되어 습관이 된 소소한 행동들이 만드는 깔끔하고 정제된 풍경은 꽤 매력적이다. 먹고 나면 설거지는 즉시 하고, 행주는 사용하고 나면 빨아서 탈탈 털어 걸어 두고, 도마는 식초와 베이킹파우더로 한 번씩 소독해 잘 말려 주고, 청소는 시간을 정해 거르지 않으면 내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습관이 되면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하려고 마음 먹는 순간 미션이 된다.
- p. 23
나만의 루틴이 있으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사소한 일에 고민하지 않고 순서대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요.
(유튜버 해그린달)
- p. 24
향수는 내게 생활필수품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 향수를 찾는 습관 때문이다. (중략) 좋은 향기를 맡으면 감정이 환기되며 우울한 마음이 가벼워진다.
- p. 77
'일과 삶의 균형'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적으로 먹고살 걱정이 없지 않은 이상 보통 사람에게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그 적절한 균형점을 자신도 모를 때가 아닐까? 내 노동으로 어느 만큼의 좋은 성과와 평가를 받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어디까지 포기하거나 감내할 수 있는지, 어느 것의 만족감에 비중을 더 둘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 p. 79
고슴도치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서로 모여들어 체온을 나누는 습성이 있다는데, 같이 붙어 있게 되면 가시에 찔리고 떨어져 있자니 추운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답은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정도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모이는 가까움과 멂의 균형이다.
(강준만, <습관의 문법>, 인물과사상사, 2019)
- p. 83
박총 작가는 <읽기의 말들>에서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모든 이해는 오해라 할 수 있다"며 "내가 누구를 좋아함은 그를 긍정적으로 오해한 것이요, 누구를 싫어함은 부정적으로 오해한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지. '긍정적 오해'와 '부정적 오해'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줄타기로 우리의 일상은 굴러간다. 단 한 번의 완벽한 이해 없이.
- p. 84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 주변의 대여섯 명에게 버리고 싶은 습관과 남기고 싶은 습관을 물었다. (중략) "그럼에도 결국 긍정", "잘 웃는 습관"과 같은 심리적 경향형 대답이었다. (중략) 나의 주변인들은 대체로 자기 '쪼'대로 사는 것 같다. 무엇이든 끄적대는 습관을 가진 A는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기록과 수집과 정리에 능하고, 물건 쌓아 두지 않고 잘 버리는 습관을 가진 B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를 도맡아서는 공무원도 입주민도 관리(?)하며 자신의 생활공간이 쾌적하도록 애쓰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숙제를 빨리 하는 습관의 C는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도장 깨기 하듯 효율적으로 한다(신기한 건 그 모든 과정이 슬로비디오로 보일 만큼 여유롭다는 것). 일상의 습관이 결국 그 사람의 사는 모습으로 발현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 p. 85
아멜리에는 갑자기 절대적인 평안을 느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따스한 햇살, 미풍의 향기, 도시의 소음들......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삶은 단순하고 명료한 것!
(영화 <아멜리에>, 2001)
- p. 88
그녀가 아저씨를 골탕 먹이는 방법은 아저씨의 일상에 아주 간단한 장치로 사소한 균열을 내는 것이다. 늘 울리는 알람 시간을 앞당겨 놓아 엉뚱한 시간에 잠을 깨우고, 슬리퍼를 한 치수 작은 것으로 바꿔 놓아 불편하게 하고, 늘 같은 방향으로 당기던 문고리의 앞뒤를 바꿔 놓아 당황하게 하고, 늘 앉는 의자의 높이를 미세하게 조정해 원인 모를 찝찝한 불편을 안겼다. 습관적으로 늘 하던 행동들이 뒤엉키고 꼬여 아저씨는 허둥지둥 당황하며 골탕을 먹는다. 꽤 오래된 영화인데 아직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는 장면들이다.
- p. 89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존 드라이든)
- p. 93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냄새, 말랑말랑한 냄새, 밋밋한 냄새, 서늘한 냄새, 다정한 냄새... 책마다 다양한 냄새가 있다.
- p. 97
좋은 시는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이 있다. 책장을 넘기려다 멈칫 하고 돌아와 다시 읽는다. 소리 내어. 그렇게 잠시 멈추어 소리로 읽히면 곱씹히는 시들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 겸 음악가 대니얼 핸들러는 '행복하고, 자극적이고, 촉촉한'에서 "내가 시를 읽는 동안 세상이 딱 멈추지는 않지만, 그 안에 있는 나의 공간은 행방불명된다"라고 썼다.
-p. 101
매일 무언가를 쓰는 시간은 매일 무언가를 생각한 시간이었을 거라는 건 안다.
- p. 105
이런 순간에 나를 유감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인간 세상의 무의미한 소음 속에 사느라 낭비해 버린 내 긴 일생에 대한 생각뿐이다.
(조지 기싱, <기싱의 고백>, 효형출판, 2000)
- p. 106
내 방식이나 다른 사람의 방식이나 다 좋지만 누구나 자기 방식을 가장 좋아하지요.
(제인 오스틴, <설득>, 민음사, 2017)
- p. 108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싶은 때 연필을 깎곤 한다. 쓰윽 쓱 나무 깎이는 소리가 고요하고 삭삭삭삭 연필심 가는 소리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퍽 흡족하다. 연필 깎는 소리는 유튜브에서도 인기 있는 ASMR이라고 하니 확실히 다른 이들에게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소리인가 싶다. 마음이 조급하거나 혼란이 극심해 갑자기 뚝,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일단 멈춤'의 순간이다. '일단 멈춤'의 순간에는 무엇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악 삭, 연필을 깎으며 부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어쩌지 못하는 시간을 대하는 나만의 습관이다.
- p. 127
작업실에서는 번역을 하고 대학에서는 일본어 강의를 하며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동네가수', 단편 소설도 쓰는 '동네작가'이자, 봉봉커피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봉봉마담'이기도 했다.
- p. 137
걷기와 마찬가지로 요리도 한번 해 보면 일종의 관성이 붙어서 계속하게 된다. 내가 먹는 밥에 나의 시간을 들이는 일은 짐작보다 훨씬 충만한 일이다.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2018)
- p. 138
"아, 이거랑 저거를 잘만 엮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젠 머리도 녹이 슬어서...... 무엇보다 자료가 부족해, 자료가" 하며 진도가 안 나간다고 하소연하는 작가께 "아뇨, 선생님. 자료가 부족한 게 아니에요. 선생님께 필요한 건 마감입니다. 일단 마감 날짜를 정하시죠" 하며 '마감 만능 해결의 법칙'을 떠들어 왔던 나의 과거가 뇌리를 스친다.
- p. 147
"늘 하던 대로"라는 말은 그녀의 가슴속에 달콤한 꿀처럼 녹아내렸다. 그건 앞으로도 그들의 관계가 계속되리라는 의미였다. (르 클레지오, <허기의 간주곡>, 문학동네, 2010)
"늘 하던 대로"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꿀처럼 녹아내릴 달콤한 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뛰어넘지 못하는 절망일 수 있다. 앞으로도 관계가 '계속'될 것에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고뇌하는 것처럼.
- pp. 148-149
사치에 대한 욕구는 보들레르 식으로 말한다면 인간 정신의 불명성에 관한 증거다.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생존 밖으로 넘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삶이 삶이다.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좋은 것을 사서 써야 한다.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난다, 2019)
- p. 150
"난 원체 무용하고 하름다운 것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말이오"라는 어느 배우의 대사를 듣는 순간, 마음이 반짝반짝하고 환해지는 것 같았다. 평소 낄낄거리며 쓰던 '예쁜 쓰레기'라는 말도 떠올랐다. 아무 쓸모 없으나 기어이 우리 마음과 지갑을 열게 하는,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는 그 치명적 매력의 '예쁘지만 쓸모없는 것들' 말이다. 예쁜 '쓰레기'라고 그 무용함을 한탄하지만, 나 또한 그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이 좋고, 무엇보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만나는 것도 좋다.
합리성이나 실용성에서 한참 경쟁력이 밀리지만 그런데도 마음 한쪽을 뺏겨 한 자리를 채우는 것을 어떤 사람은 어리석음이나 사치 혹은 낭비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존 밖으로 넘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삶이 삶"이라고 하신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 마음에 윤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 먹고사는 분수에 좀 넘치는 것이어도 그런 것 하나쯤 있어야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을까. 팍팍한 시간에도 꽃 한 송이를 떠올리고,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좋은 것을 사서" 쓰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반들반들 마음에 윤기를 내는 습성은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싶다. 나이를 먹으며 손바닥만 한 여유를 지키지 못해 마음 사나워지는 일 없도록.
- p. 151
여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앨런 베넷,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문학동네, 2010)
- p. 154
원고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자꾸 재미로 검색하게 된다. 검색해서 필요한 부분만 확인하고 재빨리 원래 작업으로 돌아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검색한 부분을 읽다 또 흥미로운 내용을 보면 새로운 검색을 하고, 거기서 언급된 역사적 사건이 궁금하면 또 다른 검색을 한다. 그러다 보면 궁금한 인물이 나타나고, 그걸 또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있다. 그러니 겨우 두 문장을 보는 데 한나절을 다 보내는 날도 있다.
- p. 157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난다, 2019)
- p. 160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어둠과 밝음을 가지고 있을 텐데, 어떤 이는 어둠을 더 드러내고 싶어 한다. 사람에 따라 드러내고 싶은 기운과 드러나는 기운이 동일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흐렸다 맑았다 어두웠다 밝았다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성향일 것이다. 일기장 한쪽에 별의별 어둠의 기운을 쏟아 놓는 '내'가 있는가 하면, 흐린 데 없이 밝고 유쾌한 명랑성을 추구하는 '나'도 있다. 그래, 누군가 내게 추구하는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명랑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해서 실천하고 싶고 실천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데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라는 황현산 선생님의 글처럼, 살다 보면 '명랑하기'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아직 한참은 내공을 더 쌓아야 내가 원하는 만큼의 명랑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은 정신이다. 프로이트는 그 정신을 '유머어'라고 부르고 니체는 '명랑성'이라고 불렀다. 나에게 그것은 '자긍심'이다.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긍정한다. 나의 정신은 늘 철없어서 즐거운 정신이다"라는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의 글(<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2018)을 읽으며 가눌 길 없이 가슴이 먹먹했다.
때로 타인의 '명랑성'이나 '명랑하려는 노력'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나는 간도 쓸개도 다 빼 주고 싶다. 그런 노력은 드러내는 것도 주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짧은 순간 저절로 알아챌 수 있다. 아주 간혹 그런 명랑한 휴머니스트를 만나면 마음이 벅차다.
- p. 161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소녀가 멀어져 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2019)
- p. 170
바쁨도 습관일 수 있을까? 딱히 성공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며 치열하게 사는 성향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다지 게으름을 피운 것 같지도 않은데 왜 항상 시간에 치여 허덕이는지, "그래, 언젠가는 꼭 날 잡아서"라며 친구와의 약속도, 다른 재밋거리도 자꾸 미루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길에 들른 디자인 사무실 책장에서 책 한 권이 눈에 와 꽂혔다.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그 책을 왜인지 펼쳐 보진 않았지만 제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연말 즈음 친구가 해가 바뀌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자는 연락을 해 왔는데, "네가 너무 바쁘니까......" 하는 친구의 지나는 말에 갑자기 창피함이 몰려왔다. "아니, 이제 하나도 안 바쁜데? 날만 정해. 맞추면 돼" 하고 호기를 부렸지만, 사실 그때도 나는 일에 허덕이고 시간에 치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매번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분명 내 시간인데 제대로 가져 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무력했다.
그게 무엇이건 '너무'인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단어다. '너무'나 '훨씬' 같은 유의 말은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과한' 부사들이다. 뭐가 잘못됐을까. 내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 171
태곳적부터 인간은 어떤 문제로 고민을 할 때 그 문제에 대해 하룻밤 자면서 생각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세 시인들은 몇 번이고 잠든 척을 하면서 자신의 시에 대해 꿈을 꾸었다.
(F. L. 루카스,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메멘토, 2018)
- p. 172
작가 중에는 특별한 집필 습관으로 유명한 이들이 있다. 루소는 <에밀>에서 "어린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습관 중 하나는 어떤 습관에도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손에 펜을 쥐고 있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그럼 대체 글을 어떻게 썼다는 것인지는 찾을 수가 없다).
(중략)
동화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온 가족이 수시로 오가며 생활하는 거실 한복판에서 글을 썼다. 그러면서 화이트는 "글쓰기를 위한 이상적인 환경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는 작가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했다니 궁극의 집중력이라고 인정할 만하다.
(중략)
불면증에도 불구하고 밤에 잠이 깨면 마치 훔친 시간처럼 하루 28시간을 가진 듯한 기분으로 글을 읽고 쓴다고 한 메릴린 로빈슨 같은 작가도 있다.
작가마다 자신만의 다양한 습관이 있지만 공통되는 것은 '계속 썼다'는 것이다. 그 꾸준함을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V. S. 프리쳇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을 낙담하게 만드는 근면함"이라고 표현했다.
- p. 173
아이가 무얼 좋아하게 하려면 역설적으로 결핍이 필요하다.
(한미화, <아홉 살 독서 수업>, 어크로스, 2019)
- p. 184
편한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
(라틴어 명언)
- p. 189
영화에서 지혜로운 노인들이 과묵한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시나리오 작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혜와 힘은 소란함이 아니라 고요에서 온다는 것을.
(코르넬리아 토프, <침묵이라는 무기>, 가나출판사, 2019)
- p. 190
선배보다 후배 대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점점 자주 듣게 된다. 나도 나이 차가 열 살 정도 나는 후배 앞에서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허둥지둥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대 간의 정서 차이도 있어서 같은 일을 두고도 짚는 포인트가 다를 때도 있다. 아예 서로 '딴 세상 인종'으로 제쳐 놓고 지낸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눈치 없이 커피 사 주랴, 밥 사 주랴, 했다가는 민폐형 꼰대가 되기 십상이라는 말에 "뭐야? 커피 한 잔, 밥 한 끼도 센스 있게 사 줘야 하는 거야?"라고 했다가 바로 지적당했다. "쯧쯧. 사 주긴 뭘 사 줘요. 사 주는 건 같이 먹겠다는 거잖아요. 아예 같이 먹겠다는 생각을 마시라니까요." 후배가 멀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아이쿠, 이러니 난 이미 꼰대 세대인가. 입을 다물자.' 의도치 않게 꼰대질을 하게 될까 봐 말이든 생각이든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스스로 경계하게 되고 자기검열까지 하게 된다는 하소연을 하면 그나마 "지혜롭다"는 칭찬(?)을 듣는다.
잔소리도 습관이다. 버릇처럼 늘어놓는 자질구레한 참견이나 질책만큼 쓸데없어 보이는 게 없다. 소란하지 않고 고요한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는 로망이 있다. 그래서 "지혜와 힘은 소란함이 아니라 고요에서 온다"는 코르넬리아 토프의 말은 늘 기억하고 싶은 말이다. '과묵한 지혜'가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애써 생겼어도 나이 먹으면 잘 잊기도 하니까. 그러니 버릇처럼 되뇌고 또 되뇔 일이다.
- p. 191
한 가지를 위해 애쓴 마음은 단단해지고 성장한다. 단단해지고 성장한 마음은 그 긍정적 영향으로 열 가지를 변화시킬 원동력이 된다.
- p. 201
영국의 행정학자이자 사학자인 시릴 파킨슨은 작업 시간은 사용 가능한 시간을 모두 쓸 때까지 계속 연장되며, 작업 예상 시간을 길게 잡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지금 생각하는 시간의 딱 절반이 진짜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항상 부족할 테니 말이다.
(중략)
코펜하겐 행복연구소 대표인 마이크 비킹은 자신의 저서 <리케>에서 시릴 파킨슨의 "일은 주어진 시간이 소진될 떄까지 늘어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내야 할지 시간을 미리 정해 놓을 것을 권하다. "시간이 촉박하면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오늘 부족한 나의 시간은 삼 일이 지나도 부족할 것이다. 사실 시간을 대하는 태도도 습관이다. 간혹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피치 못하게 시간을 더 쓰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미루기가 습관이 되는 것만큼 별로인 것도 없다. 주어진 시간이 다할 때까지 시동만 걸다 꼭 닥쳐서야 미친 듯 질주하면 안 된다고, 다 알면서도 어리석을 때가 있다.
- p. 203
일회용 플라스틱 반대는 서로의 삶에 말을 걸고 시간을 들이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운동이다. 그저 쓰레기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의 속도를 늦춰 보통의 일상과 다른 사람의 안녕과 지구의 건강을 챙기는 여정이기도 하다.
(고금숙,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슬로비, 2019)
- p. 204
이 책을 읽으며 밑줄 긋는 시간이 주는 행복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런 시간과 마주하면 기분 좋은 편지를 읽는 것처럼 특별한 느낌에 휩싸이죠.
이 책은 저자가 습관에 관한 문장 중 혼자 듣고 흘려버리기 아까운 말들을 모으고 단상을 붙인 겁니다.
백 개의 문장은 제각기 다른 습관을 지닌 백 명의 말이지만,
동시에 저자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들려주는 말이기도 해요.
'태도의 말들' '습관의 말들' 다음엔 또 어떤 시리즈가 나올까요?
유유의 다음 '말들' 시리즈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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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