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독서

by 김뭉치

어린 시절의 날들 가운데 아마 우리가 좋아하는 책과 더불어 보낸 날들, 살지 않고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그런 날만큼 충만하게 산 날들이 없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날들을 채우는 것 같던 모든 것을 우리는 숭고한 즐거움을 가로막는 저속한 장애물로 여겨 멀리했다. 가장 재미난 대목을 읽을 때 친구가 찾아와 같이하자던 놀이, 읽던 페이지에서 눈을 들거나 자리를 옮기게 만들던 성가신 꿀벌이나 햇살, 떠안겨서 가져오긴 했지만 건드리지도 않고 벤치 옆자리에 놓아둔 간식, 우리 머리 위 파란 하늘에서 해가 점차 힘을 잃어갈 때 집으로 돌아가 먹어야 했던 저녁 식사.

- '독서에 관하여' <프루스트의 독서>, 마르셀 프루스트,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pp. 19-20


오래된 수도원의 정적과 서늘한 냉기는 참으로 그윽하고, 그곳 수녀들은 면회실에 걸린 로히어르 볼데르 베이던의 그림 속에 그려진 하얀 날개 달린 원뿔형 모자을 여전히 쓰고 있다.

- p. 68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유쾌한 방식으로 낙관주의에 맞선다. 바이런은 <카인cain>에서 자신만의 비극적인 방식으로 맞섰다. 헤로도토스는 트라키아인들이 아이가 태어나면 한탄하며 맞이하고 누군가 죽을 때마다 기뻐했다고 전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아름다운 시구에도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Lugere genitum, tanta qui intravit mala.(태어날 아이를 불쌍히 여겨라. 온갖 비참에 직면할 것이니.)' 멕시코인들의 인사 관습도 이것과 연결 지어야 한다. 그리고 스위프트도 같은 감정으로 젊은 시절부터 (월터 스콧이 쓴 그의 전기를 믿자면) 자기 생일을 불행의 날처럼 기념하는 습관을 가졌다고 한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죽음을 존중할 만한 선이라고 말하는 구절은 누구나 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 또한 같은 생각을 담고 있다. 'Vitae nomen quidem est vita, opus autem mors.(삶은 생명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실상은 죽음이다.)' 테오그니스의 아름다운 시구도 유명하다. 'Optima sors homini. natum non esse(결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다)' 등등. 소포클레스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1224행)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한다. 'Na-tum non esse sortes vincit alias omnes.(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말한다. 'Omnis hominum vita est plena dolore.(인간의 삶은 온통 고통으로 가득하다.)'(<히폴리토스> 189행.) 그리고 호메로스도 이미 이렇게 말했다. 'Non enim quid-quam alicubi est calamitosius homine omnium, quotquot super terram spirant.(인간의 삶이란 비참으로 가득 차 있다. 고통에는 끝이 없다.)' 게다가 폴리니우스도 말했다. 'Nullum melius esse tempestiva morte.(때맞은 죽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셰익스피어는 늙은 왕 헨리 4세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한다. '이걸 보았다면 - 가장 행복한 젊은이는 - 책을 덮고 앉아서 죽을 텐데.'

-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 스무 개의 인용문이 연이어 이어지던 페이지를 프루스트가 요약해서 옮긴 것(마르셀 프루스트, <프루스트의 독서>,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pp.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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