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와 버지니아

by 김뭉치

그들은 회원 가입을 통해 판매하는 한편 예술가 지인들에게는 표지와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 「1892-1913, 존재의 순간들」, p. 100


회고록 클럽은 버지니아 울프가 가장 사적인 맥락에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했다. 그녀가 의붓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한 곳이 회고록 클럽이었다. 그 클럽에서 자신의 회고를 발표하는 사람은 하나도 숨김이 없어야 했고, 발표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들은 말에 충격을 받거나 분개할 권리가 없"었다.

- 「1892-1913, 존재의 순간들」, pp. 103-104


요구하는 게 많으며 격정적인 성격의 바이올렛은 자신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해서, 작가인 낸시 밋퍼드의 <추운 기후의 사랑>에서 그 까칠한 몽도르 부인의 모델이 되었다. 바이올렛은 버지니아의 <올랜도>에서 유혹적이며 무모하고 위험한 기질을 가진 러시아의 사샤공주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두 사람(비타&해럴드) 모두, 거의 수수께끼에 가까운 방식으로, 믿음에 대한 그들 자신의 정의를 생각했다. 비타 : "우리는 다른 그 누구에게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묘하고 낯선, 초연하고도 개인적이며 신비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굳게 믿는다."


버지니아는 너무도 수수해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란 느낌을 주었다. 버지니아는 전혀 가식이나 꾸밈이 없었고, 옷도 "아주 형편없이" 입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일종의 "지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음악, 대화, 우정, 도시 풍경, 책, 출판,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이 모두가 지금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다."

- p. 134


비타는 버지니아가 사람들을 글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당신은 가슴보다는 머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좋아해요."


버지니아는 네사에게 다소 뽐내듯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6월의 밤은 길고 따뜻해. 장미가 꽃을 피웠어. 정원은 아스파라거스 꽃에서 뒤어킨 벌들과 그 욕망으로 가득하고."


"버지니아는 이 책이 어머니에 대한 경이로운 서술이며… 고인을 떠올리는 것이 거의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중략)

버지니아는 적었다. "우리는 죽은 세계를 보았다." 하지만 <등대로>는 어쩌면 죽은 세계로부터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는 리턴이 죽었어도 도라는 그녀 자신이 죽는 날까지 그에 대한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라고 비타에게 말했었다. 리턴의 죽음은 '미래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진 것'과 같았을 것이다.)

(중략)

이튿날 캐링턴은 총을 쏘아 자살했다. 그 소식을 들은 버지니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살아있다는 게 기쁘고, 죽은 이 때문에 슬프다. 캐링턴이 어쩌다 자살로 이 모든 것과 인연을 끊었는지 알 수가 없다."

- p. 206


버지니아는 애초에 <세월>을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탐색하는 '소설적 에세이novel-essay'로 구성했다.


그녀에게는 전업 작가로서의 삶이 걱정의 원인이었다. 대중이 여전히 책을 사 볼 것인가?

- 「1931-1962, 모든 정열이 다하다」, p. 223


버지니아는 자신이 냉철하기보다는 무감각했다고 답장을 썼다.

- 「1931-1962, 모든 정열이 다하다」, p. 229


버지니아는 그녀에게 당시의 치료법인 휴식 요법을 고집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윌버포스 박사에게는 그것 말고는 다른 처방이 없었다. 다음날인 3월 28일, 버지니아는 코트와 지팡이를 들고 정원 문을 나서 우즈강을 향해 걸어갔다. 점심시간에 레너드는 2층 거실 벽난로 선반 위에서 버지니아가 자신과 바네사에게 남긴 쪽지를 발견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레너드에게 버지니아는 자기가 다시 미쳐 가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으며, 그들은 또다시 그런 끔찍한 시간을 겪을 수는 없다고 썼다. 그녀는 계속 사람 목소리가 들려 집중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녀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녀는 레너드에게 단언했다. "당신은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주었고,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고. 두 사람은 더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이 끔찍한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내 인생의 모든 행복은 당신 덕분이었어요."

바네사에게 남긴 쪽지에도 동일한 주제를 담았다. "이번에는 돌아오기에 너무 멀리 갔다는 느낌이 들어…. 맞서 싸워보려고 발버둥쳤지만, 더이상은 못 버티겠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을 가끔 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겠지요. 너무 이기적인 일일까요? 당신이라면 그렇게 생각지 않을 거예요.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당신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레너드에게도 편지를 썼다. "내가 이제까지 안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지요. 그녀를 사랑했던 세상과 그녀를 사랑했던 우리에게 그녀는 영원한 불멸의 존재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지, 정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저 역시 결코 회복될 수 없는 큰 상실감에 빠져 있습니다."

비타는 해럴드에게 평생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해럴드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나는 지금도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어떤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지 알아챘더라면, 그녀를 구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버지니아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핀 같은 존재였다….


비타는 공상에서나 나올 법한 묘사는 질색한다고 하면서도, 그녀 자신은 기억할 만한 구절을 부려놓는 데 있어서 대가급이었다. 예를 들면, 팬지꽃은 "이스파한의 호화찬란한 카펫을 펼친 듯" 보이는 다양한 색상의 정원에 있는 "주름진 벨벳에 수놓인 기묘한 고양이 얼굴"이다. 그녀는 8월의 어느 날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한여름 밤에 대해 쓸 수 있었고, "어린 올빼미들이 외양간 위에 있는 둥지에서 쉭쉭 거리는 소리, 당나귀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으로 뛰어들면서 내는 퐁당 소리"가 들리는 곳을 물끄러미 앉아서 바라볼 수 있었다.


1955년 3월, 해럴드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로 인해 비타는 "그가 없다면 혼자서 계속 살아가는 게 싫어질 텐데, 그가 죽으면 난 어떻게 해야 가장 깔끔하게 삶을 마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다.

- p. 252


비타가 죽은 지 여섯 달 뒤에도 해럴드는 여전히 "끔찍히 불행했다." 그의 아들은 그가 저녁 식탁에서 소리 죽여 흐느끼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정원 저 멀리에서는 목 놓아 울던 모습을 기억한다. 1968년 5월 1일 해럴드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우리 곁을 떠난 지 75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버지니아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지닌 존재였다.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에서부터 현실 세계에 살기에는 너무 순수한, 여리고 지나치게 잘 흥분하는 영혼의 소유자에 이르기까지. 미친 여자에서부터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즘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타이틀에 이르기까지. 그녀 자신은 종종 전기문학의 어려움, 대상 인물이 지닌 정체성의 한 단면만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것의 어려움에 골몰하곤 했다. 그리고 비타가 알고 있는 버지니아, 블룸즈버리 아파트의 난로 불빛 속에 비타와 앉아서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헝클어트리고 있는 버지니아, 비타와 수위 높은 외설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걸 즐기던 버지니아는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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