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 이 이야기를 나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모험을 떠나는 소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뒤흔든다. 그것은 대개 소녀는 절대 혼자 여행을 떠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어퍼컷이요, 연약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것만 같던 어떤 존재가 실은 아주 단단하고 강해서, 혼자서도 충분히 주체로서 우뚝 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전을 품고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메리 벤투라는 "사람은 언젠가 다 집을 떠나야 돼. 더 이르든 더 늦든 모두 떠나야 한단다"라는 부모의 말에 따라 억지로 '아홉 번째 왕국'으로 가는 기차에 탑승하게 된다. 메리가 기차에 타기를 주저했던 것은 어쩌면 1950년 가을, 스무 살의 실비아 플라스가 단언했던 대로 "한마디로 정의될 수 있는 하나의 인생", "코를 막고 눈을 꽉 감은 후 어떤 남자의 내면의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의 목적이 내 목적이 되고, 그의 삶이 내 삶이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원치 않는 기차 타기(일찍이 실비아 플라스는 「중풍 환자」라는 시에서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상한 달걀처럼, 누워 있다 / 내가 만질 수 없는 / 전 세계 위에서, / 새하얗고, 단단한") 를 그만두려 할 때 우리가 감행할 수 있는 비상 정차는 운 좋게 갈색 사첼백을 든 여인을 만나 연대하고 함께 버텨내고 이겨내어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거나 실비아 플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혹은 버지니아 울프와 세라 티즈데일이 그랬던 것처럼 죽거나 미치는 것일 테다.
이제 나는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하지 못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메리 벤투라(이 소설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의 모델이 된 실비아 플라스의 실제 친구)가, 슬픔의 중요한 출구이자 긴장을 풀어주는 친구 마사 브라운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비아 플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왜 자살했을까?" 묻게 하는 것이 곧 우리들의 '삶'이므로.
내가 몹시 사랑했던 한 사람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끝내 살아남아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써 보려 한다. 1953년 1월, 실비아 플라스의 다짐대로.
지금 나는 나의 메리 벤투라보다 얼마나 더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 철학적 태도, 끝까지 술 마시고 끝까지 살아볼 것. 제발, 생각을 멈추고 맹목적으로 겁에 질려 순응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기를! (…) 아무 느낌도 없는 마비된 핵 속에 자신을 가두어두거나, 삶에 대해 회의를 품고 비판하기를 멈추고 쉬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 없기를 원한다. 배우고 사유하고, 사유하고 살고, 살고 배우고, 항상 이렇게, 새로운 통찰과,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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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