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타와 버지니아』
『올랜도』를 처음 읽은 건 신혼여행지에서였다. 치앙마이의 더운 공기가 『올랜도』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초록의 정원이 널따란 공간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연인 비타 색빌웨스트를 모델로 써 내려간 『올랜도』를 읽으며 나는 소설 밖 두 여성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녀들 각자에겐 이미 남편이 있었지만 무엇도 그녀들의 사랑과 우정, 친밀한 연대를 막지 못했다.
『비타와 버지니아』를 읽으며 3년 전, 뜨겁고 습했던 치앙마이에서 『올랜도』를 탐독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 여름, 나는 비타와 버지니아 그리고 올랜도에 얼마나 빠져 있었던가. 『비타와 버지니아』 속에는 그 세 존재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중간중간 실려 있는 비타와 버지니아의 모습, 그리고 그들 삶이 어땠을지를 더듬어 볼 수 있게 해주는 작업실의 풍경들이 그들의 삶을 영화처럼 건져내게 만들었다.
저자 세라 그리스트우드는 먼저 비타라는 여성이 어떤 시대와 어떤 삶을 거쳐왔는지 보여준다.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의 비타는 어릴 때부터 큰 키와 남다른 외모로 사교계의 중심인물이었다. 외교관인 해럴드 니컬슨과 결혼했지만 결혼 전에도, 후에도 수많은 여성들과의 연애를 즐겼다. 특히 친구였던 바이올렛과의 연애는 격정적이어서 바이올렛은 훗날 『올랜도』 속 사샤공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요구하는 게 많으며 격정적인 성격의 바이올렛은 자신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해서, 작가인 낸시 밋퍼드의 <추운 기후의 사랑>에서 그 까칠한 몽도르 부인의 모델이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유전적으로 정신 건강이 좋지 않던 가계에서 태어났다. 버지니아와 비타 모두 어린 시절, 남성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비타와 버지니아는 블룸즈버리 멤버였던 클라이브 벨의 소개로 1921년 12월 만났다. 그리고 1941년, 버지니아가 우즈 강에 몸을 던졌을 때까지 20년 동안 사랑했다. 그 둘은 서로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에 반했고(버지니아는 너무도 수수해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란 느낌을 주었다. 버지니아는 전혀 가식이나 꾸밈이 없었고, 옷도 "아주 형편없이" 입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일종의 "지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글쓰기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다(비타는 버지니아가 사람들을 글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당신은 가슴보다는 머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좋아해요.").
이 시기 버지니아는 "음악, 대화, 우정, 도시 풍경, 책, 출판, 가장 중요한 것 같은데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이 모두가 지금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다"( p. 134)고 적었다. 이 시기에 출간한 『등대로』에 대해 "버지니아는 이 책이 어머니에 대한 경이로운 서술이며… 고인을 떠올리는 것이 거의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버지니아는 적었다. '우리는 죽은 세계를 보았다.' 하지만 <등대로>는 어쩌면 죽은 세계로부터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버지니아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탐색하는 '소설적 에세이novel-essay' 『세월』을 발표했다.
"비타는 공상에서나 나올 법한 묘사는 질색한다고 하면서도, 그녀 자신은 기억할 만한 구절을 부려놓는 데 있어서 대가급"의 묘사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팬지꽃은 '이스파한의 호화찬란한 카펫을 펼친 듯' 보이는 다양한 색상의 정원에 있는 '주름진 벨벳에 수 놓인 기묘한 고양이 얼굴'이다. 그녀는 8월의 어느 날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한여름 밤에 대해 쓸 수 있었고, '어린 올빼미들이 외양간 위에 있는 둥지에서 쉭쉭 거리는 소리, 당나귀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으로 뛰어들면서 내는 퐁당 소리'가 들리는 곳을 물끄러미 앉아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글을 쓰던 버지니아, 총을 쏘아 자살한 캐링턴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던 버지니아("나는 살아있다는 게 기쁘고, 죽은 이 때문에 슬프다. 캐링턴이 어쩌다 자살로 이 모든 것과 인연을 끊었는지 알 수가 없다.", p. 206)는 1941년 3월 28일, "코트와 지팡이를 들고 정원 문을 나서 우즈강을 향해 걸어갔다. 점심시간에 레너드는 2층 거실 벽난로 선반 위에서 버지니아가 자신과 바네사에게 남긴 쪽지를 발견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레너드에게 버지니아는 자기가 다시 미쳐 가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으며, 그들은 또다시 그런 끔찍한 시간을 겪을 수는 없다고 썼다. 그녀는 계속 사람 목소리가 들려 집중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녀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녀는 레너드에게 단언했다. '당신은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주었고, 지금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고. 두 사람은 더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이 끔찍한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내 인생의 모든 행복은 당신 덕분이었어요.' 바네사에게 남긴 쪽지에도 동일한 주제를 담았다. '이번에는 돌아오기에 너무 멀리 갔다는 느낌이 들어…. 맞서 싸워보려고 발버둥쳤지만, 더이상은 못 버티겠어.'" 어쩌면 그녀 역시 남편 리턴의 죽음 이후 자살한 캐링턴처럼 "미래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거였을까.
"버지니아 울프가 우리 곁을 떠난 지 75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버지니아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지닌 존재였다.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에서부터 현실 세계에 살기에는 너무 순수한, 여리고 지나치게 잘 흥분하는 영혼의 소유자에 이르기까지. 미친 여자에서부터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즘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타이틀에 이르기까지. 그녀 자신은 종종 전기문학의 어려움, 대상 인물이 지닌 정체성의 한 단면만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것의 어려움에 골몰하곤 했다. 그리고 비타가 알고 있는 버지니아, 블룸즈버리 아파트의 난로 불빛 속에 비타와 앉아서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헝클어트리고 있는 버지니아, 비타와 수위 높은 외설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걸 즐기던 버지니아는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한 것 같다." 『비타와 버지니아』는 정확히 그녀들의 그런 모습을 담아냈다. 비타가 알고 있는 버지니아, 블룸즈버리 아파트의 난로 불빛 속에 비타와 앉아서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헝클어트리고 있는 버지니아, 비타와 수위 높은 외설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걸 즐기던 버지니아의 모습 말이다.
이 책은 전기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래서 책장 구석구석 죽음이 묻어 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핀 같은 존재였"던 버지니아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운이 깊다. 버지니아의 언니 바네사는 비타에게 편지를 썼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당신을 가끔 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겠지요. 너무 이기적인 일일까요? 당신이라면 그렇게 생각지 않을 거예요.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당신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버지니아의 남편 레너드에게도 편지를 썼다.
내가 이제까지 안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지요. 그녀를 사랑했던 세상과 그녀를 사랑했던 우리에게 그녀는 영원한 불멸의 존재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지, 정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저 역시 결코 회복될 수 없는 큰 상실감에 빠져 있습니다.
"비타는 해럴드에게 평생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해럴드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나는 지금도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어떤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지 알아챘더라면, 그녀를 구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1955년 3월, 해럴드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로 인해 비타는 '그가 없다면 혼자서 계속 살아가는 게 싫어질 텐데, 그가 죽으면 난 어떻게 해야 가장 깔끔하게 삶을 마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다."( p. 252) "거의 수수께끼에 가까운 방식으로, 믿음에 대한 그들 자신의 정의를 생각했"던 두 사람(비타&해럴드)이었다. 비타는 "우리는 다른 그 누구에게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묘하고 낯선, 초연하고도 개인적이며 신비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굳게 믿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결국 위암으로 비타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비타가 죽은 지 여섯 달 뒤에도 해럴드는 여전히 '끔찍이 불행했다.' 그의 아들은 그가 저녁 식탁에서 소리 죽여 흐느끼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정원 저 멀리에서는 목 놓아 울던 모습을 기억한다. 1968년 5월 1일 해럴드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옷을 갈아입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빛나던 한 시절이 저물고, 시싱허스트와 블룸즈버리의 물결은 잦아든다. 쓸쓸함이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자리에 달빛이 어린다. 처연한 이유는 뜨거웠던 두 여성 모두 지금 이곳에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고민은 아직도 계속된다는 것. 물 흐르듯 유려한 문장은 작가와 번역가 모두의 몫일 테다. 그리고 오늘, 다시 직업인으로 돌아온 나는 "회원 가입을 통해" 책을 "판매하는 한편 예술가 지인들에게는 표지와 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1892-1913, 존재의 순간들」, p. 100)던 호가스프레스와 전업 작가로서 "대중이 여전히 책을 사 볼 것인가?"(「1931-1962, 모든 정열이 다하다」, p. 223) 걱정했던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린다. 모처럼 깊이 빠져 읽은 책이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