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우리 앞에 옆에 뒤에 그리고 언제나 있다.
방향을 가리키는 전치사와 후치사 사이에 삶은 있다가 간다.
방향을 잃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 표4 전문
딸기 넝쿨에서 오래된 원고지의 푸른 줄을 떠올린다. 쓴다, 라는 것은 여러 넝쿨 줄에 엮어진 인간의 일이다. 나는 딸기 넝쿨의 솜잎을 기억한다. 바래진 원고지의 푸른 줄 같은 여름 입구의 선들. 이건 포유류인 나의 착각. 이 여름, 이 착각이 나를 아리게 살게 할 것이니 좋은 일, 아닌가.
- 띠지 중에서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작가 소개
묘지와 묘지 사이에서 빨래를 하던 열 살가량의 한 소녀가 날아가는 새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들 가운데 하나가 대열을 이탈하고 잠시 아래쪽으로 날아왔다. 그러고는 소녀의 주위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순간 소녀의 눈과 새의 눈이 마주쳤다. 새는 곧 대열로 합류했고 소녀는 하던 빨래를 계속했다. 날아가는 생명과 무덤 사이에서 사는 한 생명의 눈 마주침. 그 둘 사이에서 거대도시의 탁하고 숨막히는 공기는 잠시 맑아졌다. 그 맑음을 보았다고 말하는 필리핀 여행자는 문명의 멜랑콜리 속에서 잠시,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착각을 잠자는 방의 전등에 걸어두었다.
- p. 13
태양이 봄빛을 보낼 때쯤 내가 살았던 바다 가까이로 거대한 떼를 지어 떠도는 멸치빛이 나는 좋았다. 집단으로 헤엄치던 것들이 커다란 어망에 걸려 은빛으로 파닥이며 지상으로 올 때 나는 어부의 기쁨에다가 내 마음을 기대야 하는지 아니면 저렇게 파닥거리며 하늘을 날아올라갈 기세인 멸치들이 바닥에 너부러지면서 썩어가는 걸 애도해야 할지 몰랐다.
- p.14 「물고기 모빌, 혹은 화어花魚」
화어는 참새우, 달강어, 북어, 학꽁치, 붉은메기 등을 말려 꼬리를 노란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인 음식이다. 지금도 귀하고 값비싼 화어를 어찌어찌해서 어린 시절에 먹어보는 영화를 나는 누렸다. 짜고 너무나 달아서 딱히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먹거리에다 예술적인 감각을 더하는 이들이 이 지상에 있다는 걸 나는 그때 눈치챘다.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었다. 화어를 만든 이가 한 인간의 예술적인 포만감을 위해 그리 귀한 시간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상의 물질적인 부를 뜨악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면서 가난이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온전히 다 빼앗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어를 만든 이는 수산가공품의 부가가치를 염두에 두기는 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다 곁에서 보내는 새벽과 아침, 오후와 저녁, 그리고 밤. 그 생애 동안 바다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벼려지고 벼려지다가 마침내 화어를 만들자, 작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 p. 16
나는 모빌을 올려다보며 잠이 들곤 했고, 잠을 설치거나 꼬박 눈을 붙이지 못하기도 했고, 책을 읽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해가 뜨고 지고 살았던 그날의 날들, 행운의 날들. 그 시간 동안 물고기 모빌이 있는 한 내 침실은 가상의 바다였다. 그 바다는 휴식처였고 불면의 해풍이었고 심해 속에서 부유하는 그림자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관념적인 싸움이 일어난 싸움터이기도 했다. 그 사이 사이, 나는 바닷가를 다녀오기도 했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생선국을 먹고는 했다. 배를 타고 어딘가를 건너가기도 했다.
- p. 19
하녀들은 빨래를 희게 하고,
풀밭 속에 이리저리 뛰네.
물레바퀴는 다이아몬드를 흩뿌리네.
나는 듣는다 먼 중얼거림을.
오래된 회색의 탑 옆에
작은 초소는 서 있고
붉은 치마를 입은 젊은이는
그곳에서 위로 아래로 걷는다.
그는 소총놀이를 하네.
태양의 붉음 속에서 번쩍이는 소총.
그는 받들어총을 하고 어깨에 메네……
나는, 그가 나를 쏘아 죽였음, 했네.
- p. 37, 하이네의 연시 「귀향」 중 일부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는 물었다. 누구를 위해서 빨래를 하느냐고. 여인은 빠르게 대답한다. "곧 준비해요/나는 그대의 수의를 빨고 있다오!" 그녀가 말을 끝내자마자 전체 꿈 그림은 마치 거품처럼 흘러 내렸다고 시인은 말한다. 아름다움을 가장한 죽음, 아니 시인이 아름다움으로 착각한 죽음은 언제나 그의 가까이에 있었다. 둘이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극단적인 경험은 시인의 원경험이기도 하다. 경계에 대한 원경험. 착각에서 착란으로 넘어가면서 시가 쓰이던 시 역사의 그 수많은 순간. 무섭고도 아득하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시의 순간들.
- p. 43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없다는 느낌.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 섬뜩한 것은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데 있다. 언젠가는 너를 잃어버릴 거라는 이 확연한 사실을 착각으로 위장하여 저녁 어둠에 놓아두는 것.
- p. 28「김행숙과 하이네의 착각, 혹은 다람쥐의 착각」중에서
사실 미스터 크로우가 싸우고 있는 것은 태양을 중심으로 세워진 일상이다. 태양이 있는 시간을 태양 너머의 시간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 시에 나오는 대로 “태양빛에 가려져 있던/죽음과 재생의 필름들 속에서/돌멩이 하나의 기원이/우주의 모든 페이지를 펄럭거리게 할 수도 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 p.55 「미스터 크로우와 오디세이의 착각」
시인의 목표는 영혼을 사회적인 삶에 맞게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성숙을 위해서 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외부의 경계 사이에 생기는 균열이다. 시인에게 무슨 목표가 있을 것인가. 목표가 없는 글쓰기, 유통과 실용성이 배제된 글쓰기야말로 시인들을 이 세기의 전위로 만든다.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고 앞으로 나가기만을 열망하는 세계정신 앞에서 시 쓰기는 아무것도 목표하지 않는 그리고 아무것도 계몽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위에 이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내 속에서 모든 예술이 하나가 되어 내가 천재적인 일필에 이른다면 나는 잠에 대한 칭송을 쓸 것이다. 나는 삶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을 알지 못한다. 삶과 영혼으로부터 완전히 꺼져버림, 모든 존재와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남, 회상도 착각도 없는 밤, 어떤 과거도 아직 미래를 가지지 못함,
- 페소아, 『불안의 서』 부분
그림자는 어떤 울분의 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가다가 멈추고 다시 가다가 멈추고 그러다가 짜부러져버리는 울분의 선. 삶의 모든 진동은 그곳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가슴이 저리다'라는 표현을 하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저림이라는 불안하고도 영속되는 진동의 이미지.
- p. 64
그 시간은 제사의 시간이었다. 소멸된 자는 영영 돌아오지 않고 남은 자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추념하는 시간이었다.
- p. 71
십여 년 만에 고향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곳은 내가 아는 그곳이 아니었다. 십여 년 동안 나는 나대로 내 고향이라는 지구의 한 장소도 그것대로 각기 제 시간을 살고 있었다.
- p. 78
늙은이들에게 찾아온다는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은 그러나 노인병만이 아니다. 수많은 젊은이가 이 병에 걸린다고 했다. 단 하나의 몸속에서 생산을 멈추는 순간,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나는 어쩌면 시를 쓰는 일도 이 영역 안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우리가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고 있는 많은 것은 어쩌면 우리 몸이라는 '물질'의 비균형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어쩌면 이런 생각도 착각의 산물이기도 하다.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 앞에 서 있는 불안.
- p. 103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95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