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물한 살 때, 아버지는 방바닥에 엎드려 죽고 싶다고 말했다. 고작 마흔다섯이었다. 아직 성한 몸에게 '죽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시에 우리는 몰랐다. 아버지는 머지않아 죽음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나 역시 아버지의 몸에 죽음이 집행되리라 여기며 슬퍼했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염원할 때, 죽음의 수단으로 알코올을 선택할 때 일어나는 일은 진부하고 끔찍하다. 아버지는 한결같이 죽음을 원했고 정확히 십년 뒤에 성공했다.
십년 동안, 아버지의 몸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인간의 슬픔이 '감히' 몸을 지배하려 할 때, 노화와 질병과 자포자기가 합작하여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배웠다.
- pp. 11-12
몸의 항복 선언. 삶을 움켜쥐고 있던 몸이, 쥔 것을 풀어내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모습보다 쓸쓸한 풍경이었다. 나는 참담함 속에서 생각했다. 끝이구나. 이것이 몸의 최후야. 이것을 모조리 기억하고, 글로 쓰는 것. 그게 내 일이야.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나는 독했다.
염을 할 때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 손과 발을 쓰다듬었다. 그건 아버지의 몸에게 고하는 작별의식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꽤 오랫동안, 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믿을 수 없어서 그랬다. 죽음은 몸의 사라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약했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 종종 그러하듯,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아플 때 맘껏 아플 수 있는 사람은 어리거나, 이기적인 사람들뿐이다. 착한 사람들은 아프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착한 사람들은 아프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 pp. 13-14
좋은 작가들은 무언가를 써야 할 때 자기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 p. 16
: 토머스 린치 외 지음, 『살갗 아래』, 김소정 옮김, 아날로그, 2020, 원제 : Beneath The Skin (2018년), 박연준 시인 추천사 「몸, 내 영토의 전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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