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by 김뭉치

7월 13일 월요일

전 회사 팀장님이 살이 많이 쪘다고 고민하셨다. 나와 함께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 이제는 가장 말랐던 시간이 되었다며 추억하셨다. 내가 보기엔 팀장님이 전과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팀장님의 고민이니 진지하게 들었다. 전 회사를 다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7월 14일 화요일

1.

자다 말고 요의 때문에 뒤척였다. 더 자고 싶은데 화장실에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다시 잠들었다. 그러다 또 깨어났다. 다시 잠들고 또 깨길 반복하다 결국엔 화장실에 갔다. 속옷이 젖어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변을 보았는데 소변은 멈출 줄을 몰랐고 끝도 없이 흘렀다. 소변은 욕실 바닥을 10분의 1 정도 채울 정도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 소변이 하수구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남편에겐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 와중에도 소변은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2.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올블랙 스타일을 한 전 남자 친구가 길가에 서 있는 것 같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뒤로도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이제는 다홍색 컬러의 반팔 티셔츠를 입은 전 남자 친구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두 번 다 놀랐지만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나쳤다. 그렇게 꿈이 흘러갔다.


3.

야시장에 갔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풍경처럼 흥청이는 야시장이었다. 시끌벅적했고 거리는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했던 친구가 나왔다. 우리는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야시장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발바닥이 타 들어갈 정도로 걸었다. 야시장 구경은 재미났다.


4.

오후 세 시쯤 대면 시험이 잡혀 있었아. 9시 30분쯤 느긋하게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지, 생각했다. 씻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체크해보니 타임별로 대면 시험을 볼 학생들이 나누어져 있었다. 내 이름은 10시 30분 타임에 시험을 볼 학생으로 올라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가슴이 쿵쾅거렸다. 학교까지 두 시간이 걸리는데 안 씻고 간다 해도 내 타임인 10시 30분까지 갈 수 없는 상황. 부리나케 준비하며 운전해 줄 사람이 없음을 실감했다. 남편이 외출한 것이다. 누구한테 학교까지 데려달라고 해야 하나, 차라리 총알택시를 타고 갈까 고민만 하다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다. 어차피 아무리 가도 제시간에 갈 수 없으니 그냥 최대한 빨리 학교로 가서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사죄한 뒤 양해를 구하자, 그럼 시험은 보게 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택시는 타야겠지? 3만 원이 넘게 나올 택시비를 생각하니 딱히 기쁘지는 않았다.


5.

자면서 중얼거렸다. 마다가스카르, 마카다미아‥


6.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거리를 지나는데 희미한 가로등 불 아래에서 회색 한 방울을 떨어뜨린 카키색 레인코트를 입은 아빠가 담배를 태우고 있다. 언젠가 아빠가 내뿜는 담배 연기를 보고 시를 쓴 적이 있었지‥ 그건 전생이었나. 모든 기억이 희미했다. 아빠는 스포츠 캡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아빠는 키는 작아도 팔다리가 길었다. 엄마는 상체는 글램하지만 다리가 몹시 마른 몸매다. 나는 그들의 몸 스타일을 각각 조금씩 닮은 듯하다.


7.

짙은 네이비색 벽지를 바른 식당 룸 안에 앉아 있었다. 두 개의 우드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아빠는 왼쪽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고 엄마와 나는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있다. 엄마와 나는 마주 보고 있었다. 아빠가 우리를 향해 뭐라 뭐라 이야길 했다. 엄마는 화가 났다. 그래서 옆 테이블에 앉은 아빠를 보고 "그래, 죽여라. 칼로 찔러 죽여라!" 외쳤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앉아 있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저 거기에 존재하고만 있었다.


8.

수육 집에서 친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남자 동창들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알고 보니 우리 테이블의 화제에 올랐던 그 동창들이었다.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장난치고 떠들었다. 수육이 맛있었던가. 잘 모르겠지만 따끈했던 기억은 난다.


9.

재미난 꿈들도 많이 꿨고 그래서 더 많이 기록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꿈들은 나의 거의 모든 기억처럼 휘발돼 버렸다. 매일 나는 악 소리를 지르며 새벽녘 깨어나고 남편은 놀라 아무 말 없는 나의 등을 그저, 가만히, 두드린다.


7월 15일 수요일

1.

무서운 꿈을 꾸었다. 너무 무서워서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2.

이상하다. 오늘도 또 자면서 중얼거렸다. 마다가스카르, 마카다미아‥


3.

아빠, 엄마 등장


7월 16일 목요일

1.

마다가스카르, 마카다미아‥ 계속 같은 꿈을 꾸는 이유가 뭘까.


2.

엄마‥ 아빠.

오늘도 계속되는 꿈.


3.

새벽 세 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유튜브를 보고 샤워를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남편과 약 10분간 대화했다.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잘 잠들 수 있었다.

7월 17일 금요일

엄마가 화장솜에 토너 적셔서 사용할 때 솜이 토너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토너를 많이 적셔야 피부에 자극이 없기 때문에 손으로 바를 때보다 더 많은 양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손으로 토너를 바른다고 했다. 메이크업을 하면 모공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민낯이 훨씬 편하고 좋다고 했다. 엄마 피부는 아가 피부처럼 얇고 하얗고 보들보들했는데 그 비법을 엿본 것 같았다.


7월 18일 토요일

1.

눈물


2.

하룻밤 사이 세 번이나 악몽을 꾸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이 일은 삼일 동안이나 반복되어 왔다.


3.

새벽에 택시를 탔다. M인지 남편인지 모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4.

야단

5.

치킨

케이크


6.

아파트

계단

힘듦

오르막

계속되는 오르막


7.

블루 원피스


8.

편집위원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천곡동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공 4차 아파트에서 대학로로 내려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모 대표님이 함께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나는 피곤해서 오늘은 그냥 가고 싶다고 했다. 대표님은 실망한 듯보였지만 이내 알았다고 하고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대표님은 지하철을 타고 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얼마 가지 않아 4호선 지하철역이 나왔고 나는 대표님께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대표님은 나는 몇 번 버스를 타냐고, 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확인해봐야겠지만 저 버스정류장에서 타는 게 맞을 거라고 말한 뒤 버스 노선도를 살폈다.


- 맞네요, 대표님. 106번이나 108번을 타면 서대문구청에서 내려요.


대표님은 그러지 말고 한 정거장 정도는 함께 걸은 뒤 각자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하릴없이 다음 지하철역까지 대표님과 함께 걸었다. 대표님은 내가 너무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말해주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예를 들어 엄청난 부자들은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클래스를 들으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땐 대낮처럼 환했는데 어느새 노을이 지고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알고 지내던 오빠가 어머니랑 자전거를 끌며 걷다 나를 발견하곤 인사를 했다.


- 요즘 학교 생활은 어때?


오빠가 물어서 나는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다고 대답했다.

4호선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대표님이 빨리 가자면서 손을 잡아끌었고 나는 마치 슬라이딩을 하듯 미친 듯이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한 구간 정도를 그렇게 내려간 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음 구간의 계단은 걸어서 내려갔다.


- 안녕히 가세요.


대표님이 교통카드를 찍으려는 순간 예전에 함께 일했던 회사 선배가 개찰구로 나왔다.


- 어머, 안녕하세요.


선배와 나와 대표님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선배는 나는 왜 그리 바쁜 거냐며 한번 보려고 해도 좀처럼 시간을 내주질 않는다고 대표님에게 나를 타박했다. 머릿속으로 선배가 나한테 만나자고 한 횟수를 헤아려봤지만 한 번 정도였다. 나는 그게 빈말인 줄 알았었다. 속으로 선배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야 하나 갈등했다.


대표님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고 선배와 나는 다시 지하철역 계단을 걸어 올라 출구로 나왔다. 선배는 미색의 공단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띠를 했다. 나는 끝내 선배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9.

형사


10.

- 그렇게 일찍 나와서 뭐해요? 갈 곳도 없잖아요?

-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카페가 있어.


그럼 그 카페 사장님은 대체 몇 시에 집에서 나오시는 거지…


7월 19일 일요일

렌즈를 끼려고 보니 이상했다. 포장지가 까만색이어야 하는데 까만색 포장지의 렌즈도 있었고 하늘색 포장지의 렌즈도 있었다. 출근은 해야 하는데 렌즈를 못 골라 시간만 갔다. 하늘색 포장지는 예뻤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 보니 현실에선 없는 렌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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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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