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7일 월요일
엄마와 밤거리를 거닐었다. 달콤한 여름밤이었다. 녹진한 공기 사이로 여름 냄새가 났다. 우리는 둘 다 반소매의 시폰 원피스 차림이었다. 옷가게가 줄 지어 늘어선 거리를,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 손은 그리 뜨겁지 않아서 더운 줄 모르고 잡을 수 있었다. 아기자기한 의상실 쇼윈도를 우리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옷가게들을 따라 쭉 걷다 우회전하니 곡선 모양의 기찻길이 나왔다. 엄마와 나는 그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만의 향긋한 밤 산책이었다. 기찻길이 끝나는 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니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그 길 끝에 있는 한옥 마당으로 들어섰다.
자갈이 깔려 있는 한옥 마당엔 부드러운 빛이 들이차 있고 초록의 나무들이 그 빛을 받은 채 서 있었다. 엄마와 나는 좌식 자리를 피해 홀로 들어섰다. 거기엔 남편이 있었다. 우리 셋은 잘 익은 막걸리를 벗 삼아 밤이 가도록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와 남편이 있어 달큰한 여름밤이었다.
2020년 9월 8일 화요일
엄마에게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미역국을 준비했다. 마늘장아찌도 준비해 감칠맛을 더했다.
2020년 9월 9일 수요일
TV를 보고 있었다. <음악캠프>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장근석 배우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여자 연예인이 MC였다.
2020년 9월 10일 목요일
엄마가 동생과 나에게 밥을 차려 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 밥이었다. 엄마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새벽 네 시 전에 꾼 꿈이다.
2020년 9월 11일 금요일
기업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나는 반발했다. 자정까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2020년 9월 12일 토요일
1.
시험은 총 46문제로 출제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었던 분이 나의 담임이었다. 공부를 하지 못한 나는 겨우 겨우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집에서 시험지를 푼 거였고, 제출하려면 시험지를 학교에 가지고 가야 했다. 정복을 입은 여자 형사가 나타나 집에서 쉬라고 했다. 이렇게 기진한 채로는 학교까지 가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아래를 보니 하반신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 형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
호텔에서 대학원 학우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참가비는 팔만 오천 원. 나는 여러 명의 사람들과 호텔까지 멀고 먼 여정을 함께했다. 호텔로 가는 동안 우리는 힐 하우스 풍의 어떤 산장을 지나쳐야 했다. 그 집의 침실은 붉은 벨벳의 침대와 분홍빛 레이스 캐노피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검푸른 빛의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금발이 살짝 섞인 갈색으로 자잘한 웨이브와 성긴 웨이브가 함께 섞인 헤어 스타일이었다.
3.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부부의 세계> 시즌 2였다. 시즌제 드라마였나. 꿈속에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예림에게 아이가 생겼다.
4.
나이 차가 나는 중국인 동생과 이층 집에 함께 살았다. 미니 골프채가 우리 집에 있었는데 그 골프채는 희한하게도 선풍기로도 작동시킬 수 있었다.
5.
<스카이 캐슬>의 진진희와 함께 버스에 탔다.
6.
나체의 남자가 휠체어를 굴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2020년 9월 13일 일요일
1.
화이트 스니커즈를 세탁했다.
2.
깨끗한 마음으로 카페엘 갔다.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3.
엄마와 일본엘 갔다. 온천 여관이 우리의 숙소였다. 온천에 발을 담갔다. 엄마는 즐거워 보였다.
숙소에 돌아와 엄마와 짜장면을 먹었다. 채 썰어진 초록색 오이가 고명처럼 올려져 있었다.
4.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엄마와 길을 걷고 있는데 노스페이스 매장이 보였다. 분홍빛과 붉은빛이 섞인 예쁜 경량 패딩을 사만 구천 원에 팔고 있었다.
- 엄마, 저거 사 줄까?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 너 돈도 없는데 무슨.
- 아냐. 저거 무지 싼데? 사만 구천 원밖에 안 하는데? 일단 한번 입어 봐.
엄마를 끌고 매장에 들어가 옷을 입혀 봤다. 맞춘 듯이 잘 어울렸다. 엄마한테 옷을 선물하니 뿌듯했다. 엄마도 기뻐하며 바로 이 옷을 입고 가겠다고 했다.
버스 매표소로 갔다. 작은엄마가 창구 직원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고속버스를 탔다. 동해 집에 엄마를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5.
미달이가 시험지를 풀고 있었다. 난 놀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초원에 앉아 얼그레이 아이스크림을 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가로이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6.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난 어떤 남자의 너른 등에 업혀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의 등 위에서 세상 구경을 했다.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95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