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일 화요일
1.
굉장히 소설적인 꿈을 꾸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 2시 30분. 방금까지 꾸던 꿈을 기록한다.
나는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까만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나는 호텔 침대에 누워 있다. 나는 나지만 외모는 현실의 내가 아니다. 좀 더 나이가 많고 좀 더 장신이며 좀 더 기골이 장대하고 좀 더 화려하다. 나 스스로를 프랑스 여인이라 생각한다. 호텔 TV에서는 흑백의 화면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는 두통에 시달린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다. 덮어두었던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물론 이 시집은 한글로 되어 있다. 나 스스로를 프랑스 여인이라 여기고 파리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다 생각하지만 읽고 있는 시집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시집이 놓여 있던 침대 맡 테이블 위에는 먹다 만 와인병과 와인잔이 놓여 있다.
내가 머무는 호텔 방을 묘사하자면, 그리 크지는 않다. 현관을 지나면 가운을 보관하는 장이 있고 그 장을 둘러싼 측면은 거울, 침대 테이블, 침대, 옷장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다. 높은 층이고 우측은 창가다. 벽의 맞은편에는 화장대, tv, 미니 냉장고가 있고 다시 현관이 나오는 순이다. 모든 가구는 우드로 되어 있으나 그리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고급’보다는 ‘고풍’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TV 속 흑백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그 영화는 프랑스 영화이지만 곳곳에 동양적인 요소가 녹아 있다. 주인공인 나는 지나가는 길에 정자를 발견하고 그곳에 머문다. 나무로 된 정자의 앉는 곳을 만지면서 나뭇결을 살핀다. 이런 곳이 있다니 참으로 특이하군, 하고 생각한다. 이런 곳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맞을까, 떠올린다. TV 밖의 프랑스 여인인 나는 정자, 그건 정자라고 해, 라고 속으로 되뇐다.
영화 속 주인공인 나는 좀 더 걸어 어떤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선 여러 개의 물레방아들이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마을을 일으키려면 어떤 발전기를 돌려야 할까, 나는 고민한다. 풍력이 좋을까? 수력이 좋을까?
그때 남자 둘이 등장한다. 남자 둘은 대뜸 내게 미래로 다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
호텔 방 안의 나는 곧 오실 프랑스인 시어머니를 모실 준비를 한다.
꿈이었다.
꿈에서 깬 나는 자는 남편에게 팔을 두르며 무섭다고 중얼거린다. 그래도 남편은 눈을 뜨지 않는다. 무서운 <브로드 처치> 네 편을 봤으면 재미있는 드라마 한 편은 같이 보고 자 줘야 내가 악몽을 꾸지 않지. 일기를 쓴다고 나와 재미있는 영화를 봐주지 않았으니 악몽을 꾼 거야. 나는 징징거린다. 하지만 남편은 잠에 취해 있다. 그는 전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무서운 나는 한숨을 쉰다.
꿈이었다.
남편에게 징징거린 것까지 모두.
나는 무서운 나머지 일어나 현관문이 잘 잠겼나 확인한다. 다시 누운 나는 잠이 오질 않는다. 현실 속의 남편도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다. 왜 잠을 이루지 못하냐고 내게 묻는다. 그렇게 잠을 못 자서 내일 일찍 출근할 수 있겠냐고 한다. 난 자야 돼. 난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그래도 난 잠이 오질 않는다. 매번 이런 하루가 반복되는 게 남편에게 미안하다. 남편의 잠을 꼭 내가 깨운 것만 같다. 그래도 꿈을 되새기는 건 나름 재미있다. 또 하루의 시작이다.
2.
중국 친구가 싱크대 앞에 웃으면서 서 있었다. 청경채를 다듬고 있었다. 친구가 또 다른 중국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니 스 닝닝더 펑요우, 라고 묻는다. 처음 만난 또 다른 중국 친구는 나의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펑-요우. 성조를 정확히 해 거듭 말해보지만 중국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다. '펑'이 2성인데 1성처럼 들리는가 싶어 거듭 펑-요, 펑-요우 얘기해봤지만 우리는 결국 소통할 수 없었다.
2020년 9월 2일 수요일
버스를 타고 있는데 둘째 이모 딸이 뒤돌아보며 물었다. 너 책 있잖아. 그의 얼굴은 실제 둘째 이모의 딸의 모습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꿈속의 나는 그가 사촌언니라고 믿고 있었다. 응, 내 책 왜? 그 책 제목이 뭐지? 언니가 물었다.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아 맞다, <엄행다>. 그거 원고는 없어? 원고, 있지. 그 원고도 볼 수 있어? 그 원고는 집에 있는데. 그래? 나중에 가져와, 우리 엄마 보여주게. 언니는 내 초고를 둘째 이모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꿈속의 나는 마치 원고지에 그 많은 문장들을 꾹꾹 눌러 담은 것처럼 말했다. 실제로 그 글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열린 차창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신선했다.
2020년 9월 3일 목요일
파트너와 함께 종횡무진 수사하는 꿈을 꾸었다. 영드 <브로드 처치>를 정주행한 영향인 것 같다.
2020년 9월 4일 금요일
아주 허름한 동네였다. <블레이드 러너>의 디스토피아 같은 도시나 <스위니 토드>의 음산한 분위기를 떠올리면 흡사할 거다. 그 동네 골목 깊숙이에 고시원 같은 건물이 있었다. 맨꼭대기 층은 넓었지만 폐허와도 같았다. 바깥에서 검푸른 빛의 조명이 스며들었다. 양쪽 벽엔 커다란 철제 침대가 놓여 있었다. 바닥은 삐걱거리는 나무판자로 덧대어져 있었다. <쌈, 마이웨이>의 두 주인공이 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ㄱ자로 나 있는 창가, 침대 쪽 맨 끝자리에서 푸른 달빛을 받으며 팔짱을 낀 채 관객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2020년 9월 5일 토요일
아침에 등교해 보니 나 포함 총 세 명의 아이들만 와 있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디엘 간다기에 올 때 캔커피 하나만 사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커피를 사다 줄 수 없는 핑계를 댔다. 꿈에선 납득 가능한 이유였는데 이 꿈을 기록하는 지금은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수긍하며 아이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교실에 혼자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어서 매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물은 실제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학교였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1층으로 갔다. 여기서부터는 실제 고등학교의 건물이 아니었고 생전 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매점으로 가려면 1층에서 밖으로 나가 야외 계단을 내려가고 다른 건물에 가서 다시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매점에서 커피를 사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안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기품 있는 정장 차림으로 서 계셨다. 나는 대통령은 돌아가시지 않았나, 속으로 생각하다가 내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두 분은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연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우리는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상으로 올라온 나는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에서 내리려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아까 본 대통령 부부와 합석을 하고 있었다. 조수석엔 권 여사가 타고 있었고 나는 그 뒤에 앉아 있었다. 내 왼쪽엔 전 대통령이 앉아 계셨다. 미터기엔 9200원이 찍혀 있었다. 합석이라 얼마를 계산해야 할지 셈이 되지 않았다. 일단 지갑에서 1만 원짜리를 꺼내 기사께 건네고 잔돈도 가지라고 말씀드렸다. 기사는 너무 많다며 거스름돈을 주겠다고 했다. 대통령 부부도 합석을 했는데 내가 돈을 너무 많이 내는 것 같다며 반만 내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1만 원을 가지라고 기사께 말씀드렸다. 택시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권 여사가 500원짜리 동전을 학이 보이는 앞면으로 건넸다. 내가 너무 많이 돈을 지불했다고 이거라도 꼭 가져가라고 하셔서 할 수 없이 동전을 받아 내렸다. 내가 내린 곳은 시내 한가운데였다. 꿈속에선 낯익은 곳이었지만 실제로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시내는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간판들의 조명이 화려했다.
캔커피를 들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야외 계단을 오르는데 여자 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말려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은 초등학교 때 다니던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나는 초등학생 시절의 친구 C를 떠올렸다. C가 커서 선생님이 되었구나, C가 잘 자라주었구나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C를 떠올렸을 땐 이런 사람이 되리라곤 상상 못 했는데, 하면서. 또 다른 교실에선 영어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는 우리 둘을 놀란 듯 바라보았는데 중학생 시절 다니던 학원의 실제 영어 선생님의 얼굴이었다.
친구 C를 닮은 선생님과 나는 부랴부랴 아이들을 떼어 놓았다.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는 아직도 씩씩대고 있었다. 둘 다 중학생 시절의 친구들이었다. 싸움이 일단락되자 선생님은 신이 났는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제 이 선생님도 과거가 되었구나, 과거의 선생님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장면은 전환되고 셜록의 집을 연상시키는 방이 나타났다. 진녹색의 벽지, 나무 창문, 정갈하게 배치된 고급스러운 소품들이 화려하게 느껴졌다. 벨벳 소재로 된 레드 컬러의 푹신한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는 현대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투 블록 헤어 스타일에 면 소재의 여유로운 나시티를 입고 있었는데 컬러는 블랙이었다. 드러난 팔뚝은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막 방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많이 울어 얼굴이 붉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나는 그걸 모를 거라고 말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본인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계속해서 울었다. 방금 이 방에 불시착한 나로서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까 아이들의 싸움을 말려서일까. 그러나 나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붙박이처럼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2020년 9월 6일 일요일
1.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 J에게 다가갔다. 친구는 반갑게 나를 맞으며 자기 옆에 서라고 했다. 우리 뒤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던 터라 나는 망설여졌다.
2.
볼일이 급해 화장실엘 갔다. 탁 트인 화장실엔 밝은 노란색 조명이 내리쬐고 있었고 흰색의 타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깨끗한 축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깨끗한 화장실은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화장실에 문이 따로 없었다는 점이다. 회사 동료 둘이 화장실에 있어서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나가 달라고 말했다. 동료들은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신경 쓰냐며 편하게 볼일을 보라고 했다. 팔짱을 끼고 재미나게 수다를 떨며 동료들은 볼일을 보는 나를 감상했다.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어쨌든 볼일은 봐야 했기에 민망함을 참으며 나도 힘을 주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니었다. 볼일을 끝마치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우리는 수다를 떨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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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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