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4일 월요일
형사물을 많이 봐서인가, 요 근래 계속 두 형사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다.
2020년 9월 15일 화요일
남향의 집이었다. 베란다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눈부시게 볕이 쏟아들 법한 집이었지만 짙은 커튼이 빛을 막고 있다. 집의 전체적인 톤은 진녹색이다. 분위기는 벨벳처럼 무겁다.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동생은 진녹색의 베드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입덧 때문에 요 며칠 잠도 잘 자지 못한 터였다. 동생 곁에 있던 말리가 내게 다가와 엉덩이를 들이민다.
- 말리야, 왜 그래? 똥 마려?
말리는 몸을 둥글게 말고 똥꼬를 내 쪽으로 향한 채 계속 웅크려 있다.
나는 말리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말리의 엉덩이가 점차 굳어가는 게 느껴진다.
- 말리야, 왜 그래? 똥이 안 나와?
그 사이 히치콕의 <사이코>에 나오는 BGM이 울려 퍼진다. 끽 끽 끽 끽 끽 끽 끽 끽, 짧고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고음이 반복된다. 나는 점차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 말리의 배변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는 나는 남편을 소리 높여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남편은 내게 다가오지 않는다. 먼발치의 문쪽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다리를 엇갈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내 뒤에서는 다른 방에서 나온 늙은 할아버지와 아저씨 두 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늙은 할아버지의 머리칼은 누런 백발이다. 치석이 잔뜩 낀 황니를 드러내며 어눌한 말투로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뭐라 뭐라 말한다. 주름이 깊게 팬, 마치 뱃사람 같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짧고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고음이 귓바퀴를 타고 귓구멍 안쪽으로 스며든다.
나는 악 소리를 내며 깬다.
내 소리에 놀라 깬 남편이 무슨 일인가 묻고 나는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그 주, 남편은 누군가의 꿈에 늘 본인이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글을 썼던가. 아니면 이마저도 꿈인가.
꿈에서 깨 사진첩을 들여다본다. 거기엔 말리가 몸을 둥글게 만 채 누워 있다. 며칠 뒤 동생은 "말리 기절"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역시 몸을 둥글게 만 채 누워 있는 말리의 사진을 보낸다.
토닥토닥.
꿈속에서 두드렸던 말리 엉덩이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지는 듯하다.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1.
넓은 외관을 자랑하는 카페의 실내였다. 미니 분수가 있어 흐르는 물소리가 기분 좋게 청각을 자극한다. 바닥은 포비처럼 몇몇 부분이 돌로 되어 있다. 연달아 이어진 돌들을 또각또각 밟고 나가 또 다른 카페로 이동했다.
아는 오빠가 6시에 만나자고 해 이동한 또 다른 카페. 남편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는데 정작 약속을 리드한 오빠는 7시까지 시간 괜찮냐며 7시 이후에나 온다고 한다. 오랫동안 실제로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남자 사람 친구 I도 모임 멤버 중 하나였다. 우리는 모두 황당해했다.
2.
엄마 글쓰기 워크숍 시간이었다. 한 분의 글을 함께 읽었는데 터키인인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엄마가 터키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오는 것에 착안, 면밀히 관찰하여 글쓰기 과제를 수행하셨다.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 글은 나무랄 데 없이 멋졌다. "이런 생각을 하시고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은 뭘 해도 되는 분입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2020년 9월 17일 목요일
꿈을 꾸고 난 뒤였다. 기록을 하고 싶었지만 키워드를 메모하는 일조차 손가락에 힘이 없어 어려웠다. "기억해, 000. 기억해, ㅁㅁㅁ"라고 읊조렸다. 이렇게 하면 000와 ㅁㅁㅁ라는 꿈의 키워드가 다음날까지 기억날 것 같았다. 그러나 '기억해'라는 음성만 남고 키워드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애초에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동생과 나는 아빠를 피해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도망가지 못했다. 셰이크 가게 앞 야외 테라스에 아빠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외국이었다. 서버가 주문을 받았는데 동생의 발음이 좋다고 했다. 흰 티에 흰 슬랙스를 입은 아빠가 있는 테이블에 우리 셋은 둘러앉았다. 이윽고 엄마가 왔다. 우리 넷은 밀크셰이크를 먹었다. 맛나게.
2020년 9월 19일 토요일
대로변에 있는 어떤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번잡스러운 외관과 달리 내부는 정갈했다. 반층 계단을 오르니 까만색 현관이 등장했다. 현관문을 여니 작은 집이 나왔다. 그곳은 초등학생 시절 친구인 M의 아버지가 사시던 곳이라고 했다. 친구 J와 나, 그리고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거기에 존재했던 한 친구까지, 우리 넷은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이 갑자기 옷을 벗었다. 집을 정리하다 뒤를 돌아본 나눈 친구 M의 뒷모습을 보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 난 안 봤다!
나는 친구들에게 선언했다. 갑자기 이 친구들 중 누구와 결혼하게 된다면 명절마다 시댁에 가야 할 텐데 정말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미혼이었고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남자 친구의 부모는 모두 외국에 계셔서 나는 명절 때마다 시부모를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했다.
2020년 9월 20일 일요일
'집'이라고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집'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대개는 삼각형의 지붕 위에 사각형의 집채를 그릴 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집 모양 그림의 단면 같은 집에 내가 살고 있었다.
산장 같은 그 집은 산속에 위치해 있었는데 현관에서 집 내부로 들어오려면 계단을 걸어 올라와야만 했다. 그날은 밤이었고 곧 엄마가 올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부터 엄마를 모시고 살 작정이었다. 우리 집은 2층 집이었고 나는 엄마의 잠자리를 1층에 마련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2층에 마련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가 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친구는 엄마의 잠자리는 계단을 한 번 더 오르지 않아도 될 1층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엄마를 1층에서 재우기 위해 요를 깔았다. 1층은 화장실도 가까이, 주방도 가까이에 있는 큰 원룸 구조였다.
창문으로 계속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엄마가 보였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집에 들어와 집 구경을 하고 나서 헛간에 볼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온다고 했다. 집 바닥은 난방을 해 뜨끈하게 데워져 있었고 깔아놓은 새하얀 이불에는 과하지 않은 레이스가 슬몃슬몃 달려 있었다.
창밖으로 헛간으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젊을 때의 엄마 모습이었다. 베이지색 바탕에 브라운색 줄무늬가 있는 면티를 입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2층 침실을 정리하러 올라갔다. 2층 침실 역시 화이트톤이었고 들어가자마자 맨 오른쪽에 침대가 놓여 있었다. 역시 화이트톤의 이불과 침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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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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