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판타지

by 김뭉치

어슐러 르 귄(Ursula LeGuin 1929~)은 (중략) "진실은 상상의 문제이다. 사실은 바깥쪽에 관한 것이고, 진실은 안쪽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안쪽은 어둡고, 먼지투성이이고, 어떤 징그러운 괴물이 살고 있을지 모르는 곳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 안쪽에 있다. 우리에게 '안'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안을 들여다보며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상상력을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 그런 상상력이 있으면 우리는 바깥쪽과 안쪽을 모두 보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고, 그 두 세계를 균형 있게 꾸려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중략)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Die Unendliche Geschichte』(1979)에서는, 안에서 밖을 보고 밖에서 안을 보는 눈이 서로 맞서기도 하고 돕기도 하면서 맞물려 돌아간다. 뭔가를 끊임없이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책 속과 책 밖에서 혼란을 겪는 주인공 바스티안. 현실을 거부하고 책 속의 환상계로 빠져 들어갔던 그가 얻은 것은 세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었다. 죽음 없이는 삶이 완성될 수 없는 것처럼, 환상 없이는 현실도 완성될 수 없다. 판타지 작가들은 그것을 알고, 자신의 환상을 통해 이 세상의 한 조각을 붙여 나가려는 사람들이다.

- 제1부 판타지는 멋있다 - '판타지를 쓰는 사람들', pp. 48-49


자기 그림자를 떠나 보낸 안데르센의 '학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지만, 그림자를 끌어안은 르 귄의 '게드'는 새로운 생명을 얻지 않는가.

- 제1부 판타지는 멋있다 - '선과 악 그리고 판타지', p. 52


'합리적'이고 '진지한' 어른들에게 이런 환상의 무대는 나타나지 않는다. 환상이 가능했던 것은 "자유로운 한 시간"을 너무나 원했던 (필리파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의) 톰의 열망과,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고 과거를 꿈꾸기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 속에서 보내게" 되는 바솔로뮤 부인의 추억 덕분이다. 시간의 자유로운 이동과 뒤틀림은 이 두 힘의 포옹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일관되게 떠받치고 있는 힘의 축은 시간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자유로운 의문이다.

그런 의문과 인식은 톰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시간 개념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이 지상에 창조하도록 한다.

- 제2부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 '시간이란 무엇인가', p. 100


침대에 갇혀 있는 한 시간은 열흘만큼이나 길고, 마법의 정원에 나가 노는 단 한 시간, 그 한 시간 동안에 한 인간의 일생이 훌쩍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을 체험한다.

상대성 원리?

그것은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과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노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에서 이렇게 적절한 표현을 얻고 있지 않은가.

"나 자신도 시간의 등 뒤로 살짝 빠져 나가 과거, 즉 해티의 현재와 정원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 여기서, 비록 잠깐이기는 하지만 해티의 현재는 톰의 현재가 되었다."에서는 톰의 시간 인식이 더 진지하고 정교해진다.

- 제2부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 '시간이란 무엇인가', p. 101


주제를 지극히 '동화다운', 단순하면서도 선명하고, 따뜻하고 희망에 찬 방법으로 살려

- 제2부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 '죽어 가는 아이들을 위해', p. 119


"자, 아니카, 너한테 문제를 낼게. 구스타프가 같은 반 친구들이랑 소풍을 갔어. 구스타프는 소풍 갈 때 1크로나(스웨덴의 화폐 단위, 1크로나는 100요레임 : 옮긴 이)가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7요레가 남아 있었어. 구스타프는 얼마를 썼을까?"
삐삐가 또 끼어들었다.
"그래 맞아, 나도 알고 싶어. 구스타프는 왜 그렇게 돈을 펑펑 쓰고 다니지? 구스타프는 탄산 음료를 사 먹었을까? 또 집에서 나오기 전에 귀는 잘 씻었을까?"
선생님은 수학 수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롤프 레티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000. 72~73쪽.


"난 상하이에서 어떤 중국 사람을 봤어. 그 사람 귀는 어찌나 큰지 망토로 쓸 수도 있었어. 비가 오면 그 사람은 자기 귀 아래로 기어 들어갔는데, 정말 따뜻하고 아늑하대. 당연히 귀는 비를 맞으니까 그렇게 좋지는 않았겠지. 날이 궂으면 그 사람은 친구들을 불러서 자기 귀 아래에서 비를 피하게 해 주었어. 비가 쏟아지는 동안 친구들은 그 사람의 귀 아래에 앉아서 슬픈 노래를 불렀찌. 친구들은 구 때문에 그 사람을 무척 좋아했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롤프 레티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000.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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