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by 김뭉치
나는 엘리자베스 비숍을 직접 만나기 전부터 그의 시를 잘 알고 있었고, 언제나 그 여성보다 그의 시를 더 잘 알았다. 일찍이 그의 초기 시집 두권의 돋보이는 음색에 끌렸는데, 문학계 모임에서 한두번 만난 적도 있지만 수줍음과 나이 차, 명성의 차이를 깰 만큼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다. 시간이 훌쩍 흘러 1970년대 초반이 되었을 때 뉴욕에서 비숍을 만나 당시 우리 둘 다 살고 있던 보스턴까지 내 차를 함께 타고 온 적이 있다. 우리는 어느새 각자 삶에서 최근 겪은 자살에 대해, 자기 이야기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하트퍼드 분기점으로 들어서야 하는 걸 깜박 잊고, 그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스프링필드까지 계속 차를 몰았다. 그날의 대화는 내가 엘리자베스 비숍과 나눈 단 한번의 친밀함이었고 단둘이 보낸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이주혜 옮김, 바다출판사 2020.

- 이주혜, 『자두』, 창비, 2020, p. 13


'mothering'은 '어머니 되기'일까 '어머니 하기'일까? 그렇다면 어머니는 자격인가, 상태인가, 아니면 행위인가? 적당한 한국어를 고르기 전에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만, 작업 내내 저는 이해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애초에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러다가 앞의 문단을 만났고 이상한 환기를 경험했습니다. 단호하고 냉철하고 때로는 신랄한 문장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적이고 솔직한 고백을 담고 있었으니까요. 저자가 드물게 내비친 사맏을 향해 저속한 호기심이 발동했던 걸까요?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치부하기엔 그 문단이 가시처럼 뇌리에 박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목표량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불면과 싸울 때면 간혹 가본 적도 없는 그 고속도로 언저리를 더듬었습니다. 혼자 상상하고 짐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어떤 식으로 서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는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습니다.


- 이주혜, 『자두』, 창비, 2020, pp. 14-15


6년 전 비숍은 1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던 브라질의 건축가이자 동성 연인 로타 소아레스를 자살로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숍이 소아레스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라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한편 리치는 이른 결혼으로 서른살이 되기 전에 아들 셋을 낳아 키웠지만, 1960년대 반전운동, 인권운동,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을 찍어 누르는 우울감과 고립감의 원인이 가부장제에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면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뉴욕 근교의 숲으로 들어가 권총 자살로 리치의 요구에 대답했습니다. 1970년의 일이었습니다. 리치는 순식간에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간 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중략)

우리가 아는 거라곤 모든 것이 시작되는 3월 봄밤에 두 여성 시인이 돌이키기 싫었을 지난날의 상실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뿐입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자살로 잃고 그 일로 세간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했던 공통의 경험이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차이를 훌쩍 뛰어넘게 했겠지요.


- 이주혜, 『자두』, 창비, 2020, p. 17
다음 해면 이십년이 되네요
당신은 죽은 채 세월을 낭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얘기하곤 했었던, 지금은 그러기에 너무 늦은,
도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난 지금 살고 있어요
그런 도약은 아니라도,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유지하면서 말예요

각각의 움직임은 다음 것을 약속해주거든요

* 에이드리언 리치 「어떤 생존자로부터」, 『문턱 너머 저편』, 한지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

- 이주혜, 『자두』, 창비, 2020, p. 19


더는 두 시인의 일화를 검색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왜 가시처럼 콕 박혀 좀처럼 빠지지 않았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리치와 비숍이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았던 그 몇시간이 미치도록 부러울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몰이해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입니다. 처절하게 오해받았던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진술하는 일은 리치가 말한 '짧고 강렬한 움직임'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주혜, 『자두』, 창비, 2020, p. 20


언젠가 평소보다 술이 과했던 세진이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자신의 아버지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때 세진에게서 연인이 자기 아버지를 무시하면 어떡하나 싶은 두려움을 감지했습니다. (중략) 이해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무작정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 이주혜, 『자두』, 창비, 2020, p. 29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http://bitly.kr/tU8tzB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95171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