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조직에 대한 예의, 국가에 대한 예의는 차리라고 하면서 사람에 대해선 건너뛰기 일쑤였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사람은 고려의 대상에서 빠지곤 했지요. 이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시대를 움직이는 정신입니다.
- 권석천, 「책을 내며」, 『사람에 대한 예의』, p. 7
이른바 '갑질 사건'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히말라야에서의 1주일이 떠오른다. 그 회장님, 사장님, 사모님들도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하고 당혹해하고 있지 않을까. 착한 갑질과 나쁜 갑질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 데서 출발한다.
(중략)
이를테면 한 검사가 있었다. 나는 그가 탐탁지 않았다. 그는 언론사 간부들 앞에서 과도하게 저자세였다. "형님께서 말씀하시면…", 좋은 말로는 사교적이었고, 나쁜 말로는 아양을 떨었다.
(중략)
얼마 후 그는 '성추행 검사'로 뉴스에 등장했다. 그를 칭찬했던 검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떤 검사에게 좋은 선배였던 그가 왜 다른 검사에겐 추행을 한 걸까. 나는 그가 검사를 두 부류로 나누지 않았나, 추론해본다. 잘나가는 그룹에 있는 검사는 함께 가야 할 후배이고, 그룹에 끼지 못한 검사는 막 해도 되는 존재였던 것 아닐까.
- 권석천, 「책을 내며」, 『사람에 대한 예의』, pp. 14-15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사엔 '기수'와 '경력'이 있다. 기수는 해당 언론사에 신입 공채로 들어간 기자를, 경력은 경력 채용으로 다른 언론사에서 이직해온 기자를 말한다. 나는 신입 공채 입사 후 경력기자 선배들을 향한 편견의 방사능에 피폭됐다. "저 친구는 일을 잘못 배웠어." "좀 위험하게 기사 쓰는데… 저러다 사고치는 거 아니야?"
나 자신, 이직 후 경력기자가 되자 남들이 날 어떻게 볼지 늘 신경이 쓰였다. 경력들에 대해 어떤 말이 오가는지 알기에. 스스로 기수와 경력을 분류해왔기에. 몇 해 전 후배의 보고 메일을 받고 쓴웃음을 지은 일이 있었다. 모 언론사 기자의 성폭력에 관한 정보 보고였다. 'ㅇㅇㅇ 기자는 경력 출신으로…'
- 권석천, 「책을 내며」, 『사람에 대한 예의』, p. 15
남의 잘못은 중요하고 나의 허물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나를, 다른 이의 막말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웃자고 하는 소리"로 남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나를, 무시(無時)로 반칙하며 살면서도 세상엔 원칙의 청진기를 대는 나를.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힘 있는 자에게 비굴한 얼굴이 되기 일쑤다.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욕망의 관성에 따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려 한다. 소심할 뿐인 성격을 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책임함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며, 무관심을 배려로, 간섭을 친절로 기만한다.
- 권석천, 「책을 내며」, 『사람에 대한 예의』, p. 16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95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