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아웃사이더

by 김뭉치

우리 삶을 성찰할 때 우리가 어떤 빛을 비추느냐에 따라, 우리가 빚어낼 삶의 형태와 그 삶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변화가 결정된다. 우리가 마법 같은 일들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실현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런 빛 속에서다. 시는 바로 그런 빛을 밝혀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시를 통해 - 그 시가 있기 전까지는 - 이름도 형식도 없이, 미처 태어나지 못한 채 느낌으로만 존재하던 아이디어에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꿈이 개념을, 감정이 아이디어를, 앎이(선행해) 이해를 낳듯이, 경험을 정제해 나온 진실된 시는 우리의 사유를 가능케 한다.

우리가 우리 삶을 성찰하는 일에 친숙해지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법을 터득할 때, 또한 이 같은 성찰을 통해 나온 결과를 활용해 힘을 기르는 법을 터득할 때, 우리 삶을 지배하며 우리를 침묵하게 했던 두려움은 그 힘을 잃기 시작한다.


우리 여성들에게는 각자 자기만의 어두운 공간이 존재한다. 바로 그 공간에 무기력과 "나약함이라는 너와 나의(y)our 악몽에 맞설 수 있는 아름답고 견고한 밤나무 기둥 같은" 우리의 진실한 영혼이 숨어 자라고 있다.


우리 안에 자리한 이 가능성의 공간들은 아주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기 때문에 어둡다. 이 공간들은 그런 어둠을 통해 살아남았고 더욱 강해졌다. 깊숙이 자리한 이런 공간들 안에는, 이제껏 탐구되거나 기록된 바 없는 감정과 느낌, 놀라운 창의력과 힘이 비축돼 있다. 우리 여성들이 각기 간직하고 있는 힘의 공간은 겉으로 드러나지도 밝지도 white 않다. 그 공간은 어둡고 아주 오래된, 저 깊은 곳에 있다.


우리가 유럽인들처럼 삶을 풀어야 할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백인 아버지들이 소중하다고 가르쳐 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오랜 역사를 지닌 비유럽적인 우리만의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그리하여 삶이 서로 소통하고 경험하는 것임을 점점 더 자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에게 숨겨진 힘의 원천을 존중하는 법을 점점 더 깨닫게 될 것이다. 참된 앎과 지속적인 행동은 바로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나는 현재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결합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시 속에서 이런 결합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백인 아버지들은 아무런 통찰도 없이 상상력만을 갈구하는 부질없는 소망을 감추기 위해 너무나 자주 시라는 말의 의미를 왜곡해 왔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시는 그들의 그런 불모의 말장난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을 일깨워 주는 경험의 정수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 여성들에게 시는 사치가 아니다. 시는 우리가 존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생명줄이다. 시가 만들어 내는 그 빛으로, 우리는 생존과 변화에 대한 우리의 꿈과 희망을 확인하고, 무엇보다 그것을 언어로, 아이디어로, 그리하여 좀 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다. 시는 이름 없는 것들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사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겪는 경험이라는 원석을 깎고 다듬어 나온 우리의 시는,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저 까마득히 보이는 지평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놓아 준다.


우리가 시를 알면 알수록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우리의 감정(과 그것에 대한 정직한 탐색)은 가장 급진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들을 낳는 성소이자 산란장이 될 것이다. 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변화를 일으키는 데 꼭 필요한) 차이가 몸담을 수 있는 아지트로 만들 수 있고, 유의미한 행동을 개념화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나는 꿈과 시를 통해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없었고 두렵기까지 했던 아이디어를 열 개라도 댈 수 있다. 시를 알기 위해서는 나태하게 환상을 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래 이거야"라고 느끼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훈련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언어로 옮기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또 언어가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시다. 시는 단순히 꿈이나 환영이 아니라, 우리 삶을 뼈대로 해서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그것은 미래의 변화를 위한 토대이자, 이전까지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건널 수 있도록 해주는 다리다.


(중략)


여자들은 철이 없다거나, 보편적이지 않다거나, 변덕이 심하다거나, 감각적이라는 둥 짐짓 점잔 빼며 던지는 비난으로 인해 맥이 빠지거나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봐야 한다. 나는 과연 상대의 기운과 아이디어, 꿈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일시적인 반작용만 끌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비록 일시적인 반작용을 끌어내는 일도 결코 사소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를 우리 삶의 토대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백인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 안의 흑인 어머니 - 시인 - 는 우리의 꿈속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롭다. 시는 이 같은 혁명적 요구, 즉 그와 같은 꿈의 실행을 표현하고 선언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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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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