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특별한 마음을 담은 특별한 것을 보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시은 대상은 오히려 죽은 사람이 아닐까. 만약 저세상에도 선물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상상해본다. 우리는 거기에, 헤아릴 수 없고 심대하다고 하며, 상당한 노력과 정열을 기울일 것이다.
죽은 자의 나라에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옛날부터 있었다. 역사를 돌아본다. 사람은 죽은 자들에게 실로 다양한 것을 보내왔다. 묘소만이 아니라 비석이나 동상을 세우는 일도 있다. 장례식 등의 의례도 죽은 사람들에게 가 닿으려는 성실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을 선물할 수도 있다. 시는 그런 마음에서 태어났다. 많은 문화에서 시는 만가 挽歌 - 죽은 자들에게 보내는 비가悲歌 - 에서 시작되었다.
말은 어디에서도 팔지 않는다. 죽은 자들은 살 수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의 책에 쓰인 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말도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진정한, 마음속 깊은 데서 나온 말을 희구한다.
(중략)
말만이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잇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은 오래전에 기도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략)
2018년 3월 12일
와카마쓰 에이스케
- 와카마쓰 에이스케 , '한국어판에 부쳐',『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p. 6-9.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뿌리에 닿는 일은 대지와 깊은 관계를 맺은 자에게만 허락된다. 대지로 다가가 손을 움직여보지 않으면 뿌리를 느낄 수 없다.
사람은, 뿌리가 필요한데 꽃을 모을 때가 있다. 열매를 얻으려고 기를 쓰는 일도 있다. 그런 식으로 살아서 지쳐가는 일도 흔한 것 같다. 그리고 꽃을 손에 넣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기 손에 열매가 없는 현실에 낙담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뿌리에 닿고 싶으면 멀리 찾으러 가선 안 된다. 그 힘을 파는 데 쏟아야 한다. 우리를 깊이 치유해줄 식물은 인생의 숲, 그것도 땅속에 숨어 있다. 별로 눈에 띄지 않으니 그저 지나칠 뿐이다. 꽃이나 열매를 손에 든 채 다지를 팔 수는 없다. 그것을 일단 옆에 두고 파지 않으면 뿌리에 다가갈 수 없다.
꽃이나 열매는 때로 손닿지 않는 곳에 있다. 하지만 뿌리는 늘 우리 발밑에 있다.
너는 자신이 갑갑하다고 느낀다. 너는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신기루를 조심하는 게 좋다. 탈출할 거라면 뛰지 마라. 도망치지 마라. 차라리 네게 주어진 이 협소한 땅을 파라. 너는 거기서 신과 모든 걸 발견할 것이다. (…) 허영은 달린다. 사랑은 판다. 설사 네가 자기 밖으로 도망쳐도 네 감옥은 너를 따라 달릴 것이다. 그 감옥은 네가 달리는 바람 때문에 한층 좁아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자기 안에 머물며 너 자신을 파내려가면 네 감옥은 천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이 구절을 쓴 귀스타브 티봉Gustave Thibon, 1903~2001은 프랑스 철학자로, 농부처럼 살고 생각했다 하여 농부 철학자로 불리기도 했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뿌리를 찾는다',『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p. 16-17.
규모가 아니라 질을 중시하는 사람은 같은 것을 중시하는 동료 가까이에 있다. 오로지 규모를 추구하는 사람의 목적은 양적인 성과지만, 일의 질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정을 중시한다.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을 '인생'으로 바꿔보면 일목요연할 것이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미지의 덕',『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38.
사람은 단지 생각을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써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쓸 수 없는 날들',『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43.
어떤 책을 읽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 읽는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와카마쓰 에이스케 , '쓰디쓴 말',『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48.
확실히 책은 읽는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은 그것을 읽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것이다. 통독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책 자체를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의 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을 손에 든 의미는 충분하다.
사람은 언젠가 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읽을 수 없는 책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그 존재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읽을 수 없는 책과도 무언의 대화를 계속한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과 비슷하게, 그 존재를 멀리 느끼며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말에도 인간의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이 숨어 있다. 쓰는 사람의 일은 오히려 생애를 바쳐 하나의 말을 전하는 것 같다고도 지금은 생각한다. 통독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남아 있을 때 사람은 책에 쓰여 있는 내용에만 눈을 주기 때문에 그런 한마디 말 앞을 지나쳐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읽지 않는 책',『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p. 60-61.
요즘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아버지와 함께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하게 느낀다. '함께'라고 한 것은 비유가 아니다. 살아 있는 사자死者인 아버지의 조력이 없다면 계속 글을 쓸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지금은 확실하게 느낀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읽지 않는 책',『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62.
아버지의 장례식 때, 나는 아버지를 모른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근무했던 회사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일이 삶의 보람인 사람이었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일에 바친 시간과 정열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모른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일하다 지친 몸을 추스르려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기업 전사라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봤던 것은 휴식하는 전사의 모습뿐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와 세삼 인식했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미지의 아버지',『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63.
예전에는 슬플 때 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픔이 극에 달하면 사람은 울지도 못한다. '얼굴로 웃고 마음으로 운다'는 표현도 있다. 마음에 흐르는 눈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천명을 알다',『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73.
또한 철학의 아버지는 소크라테스B. C. 470?~B. C. 399이고, 그의 출현이 갖는 결정적 의미는, 그때까지의 철학자들이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생각했던 데 비해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문제로 삼은 것이었다고, 그 무렵 읽었던 참고서 같은 데 적혀 있었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천명을 알다',『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79.
세상에는 벗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일곱 종류의 인간이 있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 젊은이, 병을 모르는 건강하 사람, 대주가,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 거짓말쟁이, 욕심쟁이. 오늘날의 사회에 맞게 의역하면 이렇다.
한편 벗으로 삼아야 할 사람은 물건을 주는 사람, 의사, 넓게는 의료 종사자,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작자(요시다 겐코, 『쓰레즈레구사』, 1330년경)는 말한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형체 없는 벗',『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99.
그(메로스)는 자신을 믿는 힘에 의지하여 다시 달리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상대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걸 자각함으로써 꺼져가는 듯한 마음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이다.
- 와카마쓰 에이스케 , '메로스의 회심',『말의 선물』,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2020, p.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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