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 극복과 불안 잠재우는 법

- 나의 심리 상담 일기 4

by 김뭉치

- 잘 지냈어요, 뭉치 씨?

- 네. 잘 지냈어요, 선생님.

- 그래요? 잘 지냈다면 어떻게 잘 지낸 거예요?

- …


상담 선생님의 질문은 나의 생각을 자라게 한다. 평면적인 '잘 지냄'이 아니라 어떤 시간으로 채워진 게 잘 지내는 삶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담 화두는 '불안'과 '무기력'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거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업무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 많다. 평일 퇴근 이후와 주말에도 끊임없이 업무 전화와 메시지, 메일에 시달리고 봐야 할 원고는 끊이지가 않아서다. 일과 삶이 무조건 분리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 너무할 때가 있다. 이런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좀비 사회가 되어도 회사에 나가야만 할 K-직장인의 애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K-직장인은 각자의 사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개 불안하다.


K-직장인의 불안

나는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자기 직전에 유독 불안증에 시달리는 편이다.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러지, 파고들다가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대개 그 불안들은 막연하거나 또는 내일 회사에서 처리할 업무를 생각할 때 오는 경우가 많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회사 일이 떠오른다.


보통의 사람들은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에 비로소 나와 관계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생각 자체가 불확실할 때가 많다고, 상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몹시 바쁘게 하루를 보내지만 그 일과 중 내가 없는 현대인의 하루… 그래서 자기 직전 오롯이 혼자일 때 내가 비어 있는 내 삶에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불안'은 언어화하는 순간 더욱 극심해진다. 우리의 뇌 구조가 언어적으로 시스템화돼 있기 때문에 '나 지금 좀 불안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뇌는 더욱 불안하게 된다. '오늘은 자기 전에 불안증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생각하면 이내 더 불안해지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다. 또 이런 불안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불안이 많다고 한다.


나의 경우엔 불면증에 시달리는 요즘, 나도 모르게 불안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 주로 명상을 하는 편이다. 최근 시작한 명상으로 난생처음 침대에서 몸이 침대 속으로 빨려 들 듯한, 땅으로 꺼질 듯한 기분으로 잠에 든 적이 두 차례 있었기에 그 경험을 상기하며 숙면을 하고자 한다. 순간의 호흡에 집중하며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떠올린다. 그렇게 하루치 불안을 잠재운다.


무기력의 계보

무기력에 대해 탐구해야 하는 것은 무기력증이 대개 우울이나 소진과 관련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나의 모든 에너지를 써 버리고 집에 가면 방전되는 케이스인 것 같다고, 상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 뭉치 씨는 지금 회사에서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 거예요. 뭉치 씨에게 주어진 에너지가 10이라고 하면 9만큼의 에너지를 회사에 쏟고 있는 거죠. 일할 때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뭉치 씨 같은 경우가 많아요. 회사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집에 가면 쏟을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거죠. 그래서 그걸 단순하게 무기력증이라고 볼 순 없는 거예요. 에너지의 배분, 삶의 균형 문제인 거죠.


- 완벽주의적 성향요? 그런데 업무 처리에 있어 실수가 없었으면 좋겠고 실수를 하면 취약해지고, 지금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상태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 아닌가요?


- 네. 맞아요.(웃음) 실수하고 싶은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겠죠. 그럼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완벽주의를 가늠하는 척도 중 가장 중요한 건요. 실수를 했을 때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실수의 원인을 '나'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내가 그때 더 잘했으면', '내가 그때 저렇게 했어야 하는 건데'라고 생각하며 실수의 원인을 나로 돌려버리면서 나를 비난하는 거죠.


선생님은 완벽주의적 성향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또 한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다.


- 그리고 뭉치 씨.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뭉치 씨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쉬어야 하는 사람일 수 있거든요. 뭉치 씨처럼 평일 내내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늘 긴장하는 사람의 경우엔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게 오히려 회복에 좋아요. 뭉치 씨가 끊임없이 일을 미루나요? 아니죠? 아무리 미루더라도 어느 순간엔 미루던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어느 순간엔 그 일을 하고, 해 낸다면, 그건 진짜 미루기가 아닐 수 있어요. 나 자신을 자꾸 문제시하지 마세요. 이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살면 안 돼, 라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는 것 자체가 더욱 불안을 야기시킬 수 있거든요.


누구보다 내 박자로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나.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건데 나라는 사람을 너무 모른 채 남의 속도에 맞춰 살진 않았나.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나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긍정하고 나를 조금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었나 보다.


- 이걸 해야 되는데, 저걸 해야 되는데 하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다 보면 그 생각에 에너지를 다 쏟게 되어 결국 행동할 때는 에너지를 못 쓰게 돼요.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마다 에너지는 한정돼 있어요. 따라서 그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배분하냐, 가 중요한 거죠.


물론 에너지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다. 다만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의 전환은 필요할 것 같았다. '이걸 해야 되는데…' '저것도 해야 되는데…'의 마음을 늘 갖고 피곤하게 살기보다는 가끔은 '안 해도 괜찮아. 할 때 되면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도 필요한 일인 거다.


-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어떤 게 있을지 가끔 생각해봐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기애가 부족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뭉치 씨가 그럴 수 있어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엔 인색한 사람. 예를 들어 일을 잘 해내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회사가 더 잘 되도록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운동을 한다고 생각해봐요. 그건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부분이죠. 나 자신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은 자기애, 자기 자비가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하는 뭉치 씨가 잘못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듯 자꾸 이상화된 모습을 설정하고 그걸 따라가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나'는 계속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껴요. 나 자신을 조금만 더 사랑해주세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해왔다고 믿었건만 상담을 거듭 진행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자꾸 깨지고 있았다. 자존감도 낮고 자기애도 없는 나라니….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걸 극도로 꺼리는 나 자신의 무기력 혐오증의 계보를 따라가 봤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건만 문득 그래야만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나의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그 끝엔 엄마와 이모와 고모를 자살로 잃고, 혹시 무기력이 무망감으로 연결되진 않을지, 우울증으로 연결되진 않을지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난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될 수 없어, 그렇게 되면 안 돼, 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 음. 얘기를 다 듣고 보니 뭉치 씨의 무기력증에 대해서는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접근할 수 없겠네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앞으로 계속 상담을 해나가면서 꾸준하게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요, 우리.

상담을 하면서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자꾸 발견하게 되고 나의 불안이나 무기력증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예상치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알게 되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직장 생활로 시간을 자주 낼 수 없는 나를 위해 상담 선생님은 나를 위해서라면 늦게라도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지금처럼 주 2회가 힘들다면 월 1회라도 꾸준히 상담을 진행해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쩌면 이것은 정체성의 문제인가. 단순히 눈앞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급급하는 것이 아닌, 숨은 그림 찾기처럼 몰랐던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인가. 어쩐지 그 일을 계속해나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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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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