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진학하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주변 어른들도 모두 같은 말씀을 하셨다. 연애도 할 수 있고 여 행도 마음껏 갈 수 있고 국‧영‧수만 주구장창 쳐다보고 있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남중 남고를 떠나 처음으로 여자가 있는 집단을 경험했고 그 안에서 얼마 든지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남녀를 떠나 좋은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중‧고등학생 때와는 또 다른 성숙한 인간관계 를 경험하는 건 물론이고 선후배, 교수님과 소통하며 간접적인 경험과 발 전을 꾀할 수 있었다.
방학은 무려 2개월이나 된다. 학기 중에는 방학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어 디로 여행을 떠날까 고민하며 비행기 티켓을 살펴본다. 어디로 갈지 여행 사진을 찾아보며 괜히 행복해진다.
공부도 마찬가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골라서 할 수 있다. 물론 전공이라는 큰 틀과 커 리큘럼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교양을 통해 기초적인 지식을 쌓고 원 한다면 관련 학과의 수업을 들어볼 수 있다.
빈자리가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대학에 진학해보니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경험에는 책임이 뒤따랐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내 자유이지만 A를 하면 남들 에 비해 B를 못하게 된다.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손해, 손해라.
손해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4년의 시간은 대학생이 된 이상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한달을 만들고, 또 차곡차곡 모아 1년을 만든다. 이렇 게 모은 1년은 한 학년을 어떻게 소화했느냐를 증명해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1년의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어떤 형태로 완성이 되었든 간에 내가 만든 1년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안고 가야하는 것이다.
즉,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능 력이 결정된다. 마치 RPG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고 보상을 받으며 캐릭터 를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성인이 되고나서 느낀 책임은 고작해야 대학생활에서 공지 확인이나 각종 장학금 혜택을 챙겨가는 정도였다. 좀 더 확장해봤자 동아리나 학생 자치기구에서의 책임감? 그 정도가 최대였다. 4년간 가볍지만 당시의 나 에겐 참으로 무거웠던 책임을 견디고 대학 문을 닫고 나오니 진정한 책임 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온전한 '성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게감 이 달랐다. 언제까지 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취업을 해야 했고, 하다못해 알바라도 하면서 수입을 가져야했다. 더군다나 졸업하자마자 당 장 직장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압박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학생으로서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다는 것과 취업준비생으로 지원을 받는다 는 것은 심리적으로 다가오는 부담감의 정도가 달랐다.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무 능력도 없는 지금의 나를 인 정하고, 최대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 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책임'이었다.
20대 중반까지 학생이라는 명분하에 지원을 받아온 나이기에 학교를 떠나 백수가 된 지금은 추가적인 지원을 받을 명분이 없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도 학업을 마치고 취업까지 성 공해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된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문 연구 를 위해 관련된 학과로 진학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관련 직종으로 취업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그랬고 말이다.
도합 16년의 교육을 마치고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했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면 눈앞에 어둠이 깔린 기분이다.
책임의 무게는 알고 있지만 책임을 질 수 없는 지금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