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방향

by 현상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무엇이라 묻는다면 자신 있게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훈을 주는 옛 이야기에 늘 나오는 소재가 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간 끝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달렸다.


그저 빠르게 달렸을 뿐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당장 눈앞 에 놓여있는 단편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이제 뭘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정한 목표는 계획을 세울 때나 적용할 수 있는 그런 목표였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가지는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해야 할 것'만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들어오던 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흔히들 대답하길 직업을 말한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사업가가 되고 싶어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요.


직업을 보고 달려간 끝은 방황을 만나게 해주었다.


프로그래머를 예로 들어보자.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컴퓨터 관련 학과에 가 서 코딩을 배우고 실무 경험을 쌓아 IT기업에 취직, 혹은 스타트업으로 사 업을 하면 된다. 실력은 둘째 치고, 어디 가서 ‘나 프로그래머에요.’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커리어는 갖추게 된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을 차근차근 밟아가며 꿈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20대 중반에 꿈을 이룬 나는 남은 인생동안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 걸까. 때는 이미 업무에 치이고, 현실에 치여 늦어버렸다.


입시도 재수 없이 한번에 성공했고, 대학 4년도 남들처럼 무난하게 보냈 다. 하지만 지금은 백수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도 남들과 비슷한 행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있기에 자연히 그들과 멀어 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분명 아무 문제없었는데 왜 이런 현실을 마주하게 된 거지?


단순히 영화 속 해커들이 멋있어 보여 컴퓨터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목표 를 세웠다. 나도 영화 속 그들처럼 중요한 순간에 엄청난 일을 할 수 있 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현실은 꿈과는 거리가 있었다.


목표를 잃었다.
관련 학과를 가려고만 했지 왜 가고 싶은지,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하지 않았다. 자연히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허무함을 느끼고 목표 또한 희미해졌다.


그렇게 꿈을 잃었다.


이것저것 건드려봤다.
음악도 해보고 토론도 해보고, 다른 전공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아니, 사실 경험이란 단어로 멋지게 포장했을 뿐이다.


나는 방황했다.


목표를 잃고 꿈을 잃은 채 의지할 곳이 없어 다른 곳에 신경을 분산시킨 것이다. 조금의 여유라도 가지면 찾아오는 공허함을 견딜 수 없었기에 무 언가 열중할 곳이 필요했다. 동아리 임원도 맡았고 친구도 많이 만나러 다 녔고 괜히 빡센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나의 존재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이 보면 제 전공 놔두고 이상한 곳으로 쏘다닌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나를 혹사시켜야 괴리와 허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언가 하고 있어야 ‘아,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구 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사람’


자아를 깨닫고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이다.


꿈을 가지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 바꿔 말하면 인정받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k 하면 'A'.


내 이름을 듣고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인생 이라 생각한다. 나의 흔적과 가치관을 누군가에게 남기고 전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꿈'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았던 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빈 공간에 나를 맞추는 것이었다. 내가 이룬 꿈이 한정된 세상을 확장시키는 ' 가능성'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갇혀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
전업으로 하기에는 내 글의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글이 쓰이지 않 는 곳은 없다. 보고서와 같은 형식적인 문서부터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 이르기까지, 글은 이미 우리의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 행동과 글로 나를 남기고 싶다.
내 글을 읽고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k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쓴 글이 한 사람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킨다던가 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인생을 살아갈 때 문득 내가 쓴 문장 하나를 떠올렸으 면 좋겠다.


그렇게 나를 남기고 싶다.


목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지금이야 아무 것도 모르는 백수, 취준생이라 눈앞의 목표에 급급하다. 아마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많은 현실의 벽, 이상과의 괴리를 마주하게 되겠지. 그때그때 맞춰서 목표도 변할 테지.


그래도 내 인생의 방향은 정했다.


목표는 도착지점까지 걷는 길에 불과하다.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방향을 정했고, 머나먼 길의 이정표를 세웠다.


방황하고 어려울 때에도 어떻게든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나가면 굳건하게 세워진 이정표가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10.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