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오르막길

by 현상

2020년은 나에게 오르막길과도 같은 해였다.

그것도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


넓고 평탄한 길을, 가끔은 너무나도 편안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인생을 살아왔다. 햇살은 덥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온도로 기분 좋게 내리쬐고 바람은 흐르는 땀을 식혀줄 정도의 적절한 세기로 불어왔다. 가끔 장애물이 나타나긴 했지만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수준의 시련이었고 돌발상황 없이 지극히 평범하고 수월하게, 그렇게 내 길을 걸어왔다.


2020년을 시작하며 마주한 내 길은 시작부터 오르막길이었다. 평지를 걷다보니 앞을 보지 않아도 걸어갈 수 있었고, 길이 넓으니 방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흥얼거리며 발을 내딛으면 되는 삶이었다. 그런데 문득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평지는 온데간데없고 절벽처럼 가파른 오르막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막막했다.


오르막길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고, 계획대로 살아온 인생에 반해 뜬금없이 등장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발을 딛어야하지. 원하는 곳 아무 데나 딛어도 상관없었는데, 이제 발 디딜 곳을 찾아야했다. 잘못 디디면 그대로 뒤로 굴러 떨어지고, 첫 발을 성공시켜도 두 번째 발을 디딜 곳을 찾아야했다.
그렇게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제자리에 멈췄다.

나는 누구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체 뭐지?


남들은 벌써 저기 멀리 앞서나가는데 나는 제자리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도전은 실패가 되고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남은 건 없었다.


결국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실패자였음이 분명하기에.


그렇다고 주변에 ‘나 힘들어.’ 광고하고 싶지 않았다. 홀로 꾹 참고 삐져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꾸역꾸역 누르며 괜찮은 척, 희망찬 미래를 생각 하고 있는 척하며 가면을 쓰고 살았다. 해가 떠있을 때는 평소처럼 생활하고 해가 지면 밤새 뜬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일렁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흩뿌리고 잠에 들 자신이 없었다. 눈을 뜨면 보이는 어둠은 나를 더 처량하게 만들었다.


의지할 곳이 없었다.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약해서 견디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누군가에게 말해도 결국 순간의 감정이고 위로일 뿐, 공감하지 못한다. 나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면 결국 상대방에게 해가 될 뿐이다.

원하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은 상대를 회피하게 만들고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멘탈이 약해지는 만큼 체력도 떨어졌기에 자연스레 밀려오는 졸음을 기다리며 길고 긴 밤을 지냈다. 아침에는 어떤 가면을 쓸까 고민하며 남들과 같은 일상을 연기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며 하루하루가 피폐해졌다.


3달 쯤 흘렀을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어둠은 점점 짧아졌다.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일까.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펑펑 울고, 행복한 삶을 보면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나는 없었다. 영화를 봐도 그저 흘러가는 영상일 뿐 이고, 사진을 봐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보니 시야를 깜깜한 어둠으로 채우던 무언가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홀로 웅크린 채 고개를 들지 않았던 탓인가, 조용히 나를 지켜주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기억이 있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로 의 책임을 다하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고 그들만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움츠리고 있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의 나야말로 스스로를 좀먹는 벌레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많이 힘들어?”


아니 이제는 그렇지 않아, 힘든 척을 하고 있던 것뿐이야.


“그럼 왜 그렇게 힘들어 했어?”


처음 겪는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거야. 당연히 내가 생각한대로 흘러갈 줄 알았어. 근데 갑자기 계획이 틀어져버리니까 너무 당황스럽더라. 그것도 1년 규모로.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 그 와중에도 주변 시선이 엄청 신경 쓰였어.


“시선이라면?”


당연히 계획한대로 나아갔을 거라는 주변의 인식, 그리고 돌아오는 물음. 부모님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의도치 않게 주변 어른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서 어른들이 나를 많이 알고 계셨거든.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 어서도 부모님을 잘 따르는 착한 아들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선한 이미지만큼 그분들의 의문은 나에게 엄청난 압박이었던 거지. 그래도 웃으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걸.

“그럼 지금 시선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더라. 그래도 그 짧은 기간 동안 전에 없던 밀도 있는 관심을 받았던지라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야. 그래도 그 때는 처음이었으니까. 그래도 덕분에 비슷한 상황에 대처할 요령이 생겼어. 결국 사람들의 관심은 순간의 흥미거든.


“그럼 이제 괜찮아?”


응. 괜찮아.
괴롭고 힘들어하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성숙하고 단단한 내가 있을 수 있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매달렸나 싶기도 해. 그 때의 나는 미치도록 힘들었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야.”


다 끝나고 돌아보니 정말 귀한 시간이었어. 이번 일 년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어리고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겠지. 약간의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고 또 힘들어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더 귀한 시간이었어. 지금이 내 인생의 진정한 시작점이라는 확신이 들거든.

나는 더 나아질거야.
나는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거야.


이제까지의 내가 겪은 경험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스트레칭에 불과해. 앞으로 경험할 세상은 이보다 더 힘들고 어렵겠지. 그럼 지금을 생각하며 또 하루를 버텨낼거야.


언젠가 또 다시 어둠으로 숨어들어갈 순간이 오겠지.

그 때의 나는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성장할거야.
그러니 매 순간을 경험으로 여기며 감사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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