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월스트리트 시위가 두달 째다.
그동안 미국을 보면서, 미국국민들은 정말 대단한 참을성을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나 유럽 같으면 일찌기 나라를 들었다놨을텐데, 참으로 우직하게 국가를 믿고 버틴다했다. 그렇게 참다참다 터진 시위니, 쉽게 불씨가 사그라들지는 않겠다.
뉴스를 읽다, "나는 1%다. 하지만 99%를 지지한다'는 사설을 기고한 익명의 월스트리트 금융인의 글을 읽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든 구절 발췌.
난 시스템 속에서 성공해온 만큼 부가 공평하지 않게 전달되도록 조작된 정치·경제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살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어느 누구도 집이 없거나 굶주리면서 의료 보장을 못 받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에 충분한 부가 있다. 한 시스템에서 기업가 정신과 혁신, 위험 감수와 중노동에 대한 보상과 사회보장 제도가 공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강력한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실현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월가 점령 시위에 지지를 보낸다. 또 우리의 사상가와 창조가, 나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관점을 물질 만능주의적인 가치 체제의 무가치함과 우리의 경제·경제의 도덕적 파산을 지적하는데 쓰기를 요청한다.
세계 어디에 살아도, 어떤 일을 해도, 사람 생각은 비슷하구나, 깊게 공감했다. 글로벌시대답게, 고민의 종류도, 앞으로의 방향성도 넓고 깊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기업에서, 극단의 자본주의에서 촉발된 무한경쟁, 그리고 그 무한경쟁의 끝에 있는 '돈'
인생이라는데, 인생 속에 '생'은 없고 '돈'만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불리기 위해, '돈'을 쓰기 위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이러니 한평생 살다가는 사람의 궤적을 이제는 인생이 아닌 인전이라 불러야 하지 않나, 생각도 많이 했다.
지방에 살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은 '여유'이고, '삶'이다.
가끔은 그대로 서울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그 속에 파묻혀있었다면, 나도 그들과 똑같이 돈을 벌어 강남 아파트에 살기 위해 융자를 끌어쓰고, 빚을 갚느라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집과 차와 옷, 명품 등에 내 모든 삶을 바치며 사느라 허덕허덕댔을 게다.
그래서 어느날 문득,
그 끔찍한 고리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있는 나의 현재가 사무치도록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그 고리에서 벗어나있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운좋게 지방에 있는 직장을 다니고 덕분에 지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여유와 삶의 밑바탕에는 지방의 저렴한 집값이 있으며, 경쟁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변두리, 주류가 아닌 마이너의 삶이 있다.
도시의 바쁘고 치열한 삶 속에서 빠져나와있다보니 자연스레 객관화가 되고 삶 속의 여유에서 자본과 경쟁 외의 삶의 가치를 볼 수 있게 되고 그러다보니 가치관이 점점 바뀌면서 더더욱 여유가 생긴다.
우리는 자본과 경쟁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언젠가의 여유로운 시간을 꿈꾸지만 사실 자본과 경쟁은 태생적으로 질높은 삶과 여유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유가 없으면 또 이런 것을 더더욱 생각할 수가 없게 되니...
학생 때는 '점수' 때문에 삶의 질이 낮아지고, 어른이 되면 '돈' 때문에 더욱 각박하게 된다. 평생을 허상 뿐인 '숫자' 때문에 낭비하다 죽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숫자의 역사에서 가장 의미롭고 아름다운 발견은
영(0, Zero)의 발견이라고 했다.
'영'은 백만이나 천만, 억보다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중학교 시절 좋아했던 책 제목이 다시금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