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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는 유리창 물청소를!

유리창을 닦으며 명절을 준비하던 장남, 우리 아빠

by 이디뜨

달라진 추석풍경 속에 강산을 서너 번을 거슬러 올라가서, 내 10대 시절 추석풍경을 회상해 본다.


추석 일주일 전, 아빠는 폭탄선언을 하셨다.

"오늘 유리창 청소하자."

평소에도 우리 집은 유리창을 신문지로 자주 닦아서 깨끗한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명절 전 유리창 청소는 좀 달랐다. 아파트 2층이었던 우리 집의 추석맞이 유리창 청소는 대대적인 '유리창 물청소'였다.

말하자면, 뗄 수 있는 내부 유리창은 다 떼서 비눗물로 씻고, 외부 유리창도 떼지는 않았지만 안쪽 면 물청소는 물론이고, 바깥쪽에 손이 닿는 부분까지도 닦아야 했다.


아빠가 유리창 청소를 하자고 선언하시면 온 식구가 청소에 동원되는 것을 의미했다. 엄마는 하고많은 날들 중에 왜 하필 명절 직전에 일을 벌여서 이렇게 번거롭게 만드냐고 불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나도 그때 엄마 편이었다.

"아빠 너무해. 엄마가 명절에 얼마나 바쁜데 꼭 이때 유리창을 청소한다고 이러실까?"

불만이 가득한 엄마 옆에서 내가 했던 이 말들이 엄마에게 조금의 위안은 되었을까?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는 여러 번 장을 봐서 채소와 과일, 생선, 고기 등을 집으로 나르셨다. 엄마를 따라 두세 번씩 시장에 다녀오면서, 나는 명절이란 이렇게 번거롭고도 큰 다짐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할머니를 비롯해 작은집 식구들과 고모네 식구들까지 30명 가까이 명절마다 우리 집으로 오시기 때문에, 명절 음식 준비만으로도 엄마는 바쁘실 때였다. 아빠가 퇴직하신 후에는 엄마와 함께 마트에 다니셨지만, 내가 10대일 때 장보기와 음식장만하기는 엄마만의 몫이었다.


그렇게 명절 준비로 부엌이 들썩거리고 엄마의 마음이 분주할 딱 그때, 온 집안의 유리창 물청소를 하게 되면, 그날은 엄마, 아빠 모두의 신경이 예민해지셨다. 혹시 엄마, 아빠가 이 일로 큰 싸움이라도 하게 될까 봐 나는 조마조마했다. 순순히 유리창 청소를 돕는 것만이 집안의 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열어 둔 창문을 통해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바람과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오한을 느꼈다. 나는 유독 추위를 잘 탔기 때문에, 항상 옷 하나는 더 껴입고 유리창 청소를 도왔다.


은 체구의 아빠가 의자에 올라가서 유리창을 떼어 내시면, 아래에서는 누군가는 의자를 붙잡고, 누군가는 유리창을 받아서 안전하게 내려놓아야 했다. 베란다에 겹겹이 세워둔 유리창에 비눗물을 묻혀 좌우로, 위아래로 문지르면, 시꺼먼 먼지국물이 유리를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비눗물로 세수한 유리창을 찬물로 시원하게 씻어 내린 다음에는 깨끗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런 과정을 거친 유리창은 처음의 투명한 자태로 고집스러운 아빠의 청소 선언에 힘을 실어 주었다. 유리창 청소는 자칫 손발이 안 맞으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리드하는 아빠도, 보조하는 가족들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추석맞이 유리창 대청소는 깨끗해진 유리창을 다시 제자리에 끼워야만 끝이 났다. 시작은 내키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몇 시간 동안 몰입해서 청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유리창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아빠는 밖으로 나가서 깨끗하게 청소된 2층 우리 집 유리샷시를 멀리서 시뮬레이션하듯 조망하고 들어오셨다.


깨끗해진 유리처럼 아빠의 표정도 밝아졌다. 덩달아 집안의 텁텁한 분위기도 투명하고 뽀드득한 유리처럼 맑아졌다. 손님맞이 준비를 끝냈다는 아빠의 개운함과 뿌듯함 뒤에는, 엄마의 투정 섞인 인정의 말이 이어졌다. 시기가 문제였다. 엄마도 베란다 물청소를 취미로 삼으실 만큼 깔끔한 분이셨다.

"깨끗해서 좋긴 하지. 그래도 다음엔 명절 직전에 말고 미리미리 합시다."

"그래도 나는 유리창 청소 안 하고 싶어."

누그러진 분위기를 틈타 내 본심을 말했지만, 다음 해에도 유리창 청소는 이어졌다.


이제는 내가 그 시절의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고집스럽던 유리창 청소도 아빠가 팔팔하던 40대, 50대였기에 가능했다. 아빠가 한동안 추석 유리창 물청소를 지속한 뒤에 점차 안 하게 된 것은, 힘쓰는 일이 몸에 버겁고, 마음조차 어느덧 늙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올해는 추석 다음 날인 7일 날 엄마, 아빠가 잠들어 계시는 납골당 '용인 평온의 숲'에 갔다. 이번에는 아이들 빼고, 동생부부와 우리 부부, 넷이서만 시간약속을 잡아 방문했다. 동생이 사 온 꽃 2개와 내가 사 온 꽃 2개를 나란히 붙이니 작은 유리문이 꽉 찼다. 유리문 안쪽에 나란히 있는 엄마, 아빠의 유골함. 그 안에서 추석이라고 찾아온 두 딸과 사위들을 지켜보셨겠지? 나는 납골당에 갈 때마다 휴지와 물티슈로 유리문을 닦았다. 닿을 수 없는 엄마, 아빠에 닿고 싶어서.


책임감 강한 장남이자 맏며느리로 30년을 넘게 명절 손님맞이에 분주했던 우리 엄마, 아빠의 추석.

부모님은 이제 이렇게 납골당 작은 유리문에 붙은 네 개의 작은 꽃다발로 추석을 맞이하신다. 올해부터는 오빠네서 지내던 차례도 없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어떤 추석을 보내고 계실까?

"우리 딸 송편은 먹었나?"

"손주들 용돈 줘야 하는데."

"부산 가는데 차는 안 막히나?"

엄마, 아빠 두 분만이 주고받으실 대화들을 상상해 보면, 두 분이 눈앞에 계신 듯 너무나 생생하다.


오랜만에 떠올린 유리창 청소의 추억은 빛이 바래지도, 희미해지지도 않는다. 유리창 청소를 마치고 나서야 긴장이 풀어졌던 그때,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투명하게 보이던 그 하늘이 생각난다. 푸르렀던 하늘처럼 젊고 건강하셨던 엄마, 아빠가 지금은 안 계시지만, 하늘이 여전하듯이 내 마음속에 추억도 지속된다. 삶이란 이렇게 문득문득 들이치는 추억 속에 마음을 담그며 흘러간다는 것을, 한해 한해 지나면서야 나는 알아가고 있다.


2025년 추석 용인 평온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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